▲프랑스 생폴드방스 도미니코 수녀원, 담장 밖에서 바라본 풍경
송주민
그런 생각을 하니, 여기 서 있는 기분이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여긴 현실 속이다. 여기는 현실이 아니다. 몽환적인 감정에 몽롱해지다가도 잔뜩 깨어있게 된다. 머나먼 땅이라 그럴까. 익숙한 우리땅에서의 수도원에서라면 이런 차원을 넘어온 기분은 아니었을까.
계단을 오르다가 옆으로 이어진 복도를 엿본다. 일렬로 방문들이 나 있다. 아마도 수녀님들이 머무는 독방들일 것이다. 그 앞에는 편지가 하나둘씩 놓여 있다. 나도 저 편지와 같이 바깥세상에서 먼지처럼 떠돌다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여기로 전해져 들어온 것은 아닐까. 나는 뭐라고 적힌 전령의 뜻을 가지고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걸까.
지금으로써는 '컴퓨터 수리'다. 수녀님을 따라 방문 하나를 열고 들어간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학 시절 한 여대 학생회실에 조심스럽게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그 어색하고 묘한 기분이 불현듯 스친다.
"조금 정리가 안 돼 있어도 양해해주세요."'원장' 방이지만, 소박할 뿐이다. 책상에는 그녀가 양해를 구한 것처럼 약간 어지러이 서류와 종이들이 늘어져 있다. 여대 학생회실도 예상 밖으로 너저분했었지. 그 순간이 겹치며, 괜스레 혼자 웃는다. 수녀원, 그것도 이 깊숙한 독방 안까지. 전혀 예고 없는 방문이다. 치장 없는 민낯 그 자체의 삶터이자 수도처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책상 뒤에는 허름한 침대가 놓여 있다. 그 앞에도 허름한 무언가, 손씻기와 세수 정도만 할법한 세면대가 있다. 별다른 치장 거리는 없다. 테레사 수녀는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고 말했다지. 딱 그런 '여인숙'이 연상되는 누추할 정도로 소박한 방이다.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같이 살다 갈 곳, 무엇을 그리 싸 짊어들고 붙들어 매려고 애를 쓰는가. 방 분위기 자체가 사방에서 그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프랑스 신부가 전한, 개미와 같이 살고 따르는 삶불어 키보드에 불어 윈도라 낯설다. 같은 프로그램도 언어가 다르고 생소하니 다루기 힘들구나. 제어판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별로 손도 못 보고 '컴퓨터 수리'는 끝.
"괜찮아요. 내려갑시다." 수녀님은 먼저 내려가고 나는 자리에 조금 더 머무른다. 잠시 눈을 감는다. 도대체 나는 여기에 왜 있는가.
성당은, 종교는 그저 집안 어른이 다니는, 그리하여 단지 '문화'적으로만 친숙한, '예의상' 세례를 받은 정도로 살아왔다. 지난해 여행까지만 해도 수도원은커녕 성당도 그리 유심히 들르는 곳이 아니었다. 미술관에서도 종교를 주제로 한 작품은 휙휙 지나가곤 했다. 그러던 내가 이 어지간히 '신심' 깊은 신자들마저도 들어와 보기 쉽지 않은 수녀원 독방에 들어와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