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서 강제동원으로 죽은 중국인 많아, 위령탑 세워야"

광복 70주년 <일제 강점기 여수를 말한다> 북 콘서트... 주철희 박사의 제안

등록 2015.09.17 16:41수정 2015.09.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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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순사건 전문가 주철희 박사가 여수에 남겨진 일제의 군사기지를 탐사한 책 <일제감점기 여수를 말한다> 북 콘서트를 열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순사건 전문가 주철희 박사가 여수에 남겨진 일제의 군사기지를 탐사한 책 <일제감점기 여수를 말한다> 북 콘서트를 열었다.심명남

[기사 수정 : 17일 오후 8시 10분]

올해 TV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뽑으라면 단연 '광복 70주년'일 듯하다. 지난 12일 <무한도전>은 군함도(하시마섬)를 찾아 '배달의 무도' 마지막 편을 방영했다.


그 당시 하시마섬 군함도 탄광은 감옥이나 다름 없었다. 강제 징용된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어간 '생지옥'이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이 묻힌 그곳은 제대로 정비조차 되지 않았다. 제작진이 공양탑 깊숙한 곳에 제삿밥을 배달해주는 광경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나라를 되찾은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다시금 새겼으리라.

조국을 빼앗겼지만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웠던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야말로 광복 70주년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일제의 만행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이유다.

광복 70주년...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여수신문 창간 21주년을 맞아 일제감점기 여수를 말한다 북 콘서트에 2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여수신문 창간 21주년을 맞아 일제감점기 여수를 말한다 북 콘서트에 2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심명남

지난 15일 북 콘서트가 열렸다. 지역신문인 <여수신문> 창간 21주년을 맞아 열린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의 저자 주철희 박사와의 리얼 토크였다. 그는 일제가 여수에 남긴 군사기지 탐사에 대해 생생한 자료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강제 동원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사회를 맡은 오병종 전 여수MBC PD는 "방송프로듀서로서 취재하다가 만나게 된 인연을 통해 이 자리에 서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라면서 "이 책의 저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말을 실천하는 역사가"라고 소개했다.


연단에 선 주철희 박사는 "보통 역사를 지난 과거로만 생각하고 있는 탓에 많은 학생들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서 "청년 일자리까지 겹치다 보니 역사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닌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역사인식의 가벼움을 지적했다.

주 박사는 "박종철 고문사건, 이한열 열사, 세월호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라면서 "부모들이 한결같이 내가 조금 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았더라면 너희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부모인 내가 이 사회와 역사에 무관심해 너희들이 죽었다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식이 죽은 후에야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의 자산인 역사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쓴 저서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는 비록 지역은 여수에 국한돼 있지만 책속에 일제 침략의 치밀한 베일을 벗겨낸다. 수년간 조사를 통해 남해안의 중심도시 여수지역 곳곳에 숨겨진 군사기지를 발굴해 기록했다.

특히 강제 동원된 국내 노동자는 물론 중국인 노동자 '꾸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빗돌 위령탑'을 세워 이들의 넋을 위로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북 콘서트는 사회자가 자연스레 질문을 주고 받으며 토크가 진행됐다. 아래는 사회자가 저자와 나눈 이야기 내용이다.

'여수 와서 돈자랑 하지 말라'의 어원

 북콘서 나선 주철희 박사는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는 1945년 8월 25일 정오 일황이 히로히토 항복문서에서 시작되었다고 강조했다.
북콘서 나선 주철희 박사는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는 1945년 8월 25일 정오 일황이 히로히토 항복문서에서 시작되었다고 강조했다.심명남

- 오병종(아래 오PD) : 저자를 소개해 달라.
"여순사건을 조명한 <불량국민들>을 펴낸후 이번에 또 책을 출간하게 됐다. 현재 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여순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 오PD : 여순연구센터는 어떤 곳인가.
"여순사건은 우리지역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데 실제 연구자들의 연구는 굉장히 많이 진보해 있다. 다만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연구는 두 가지다. 여순사건을 통한 국가폭력과 지리산과 관련된 빨치산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전남동부지역의 근현대사가 집중 관심분야다."

- 오PD: 이 책도 광복70주년에 맞췄을 텐데 약간 늦었다.
"일찍 내려고 했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다."

- 오PD: 책 속에 여수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여수라는 지명은 한때 사라졌다 등장했다.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이다. 현재 여수시민의 날(10월 15일)은 여수면이 여수읍으로 승격된 날이다. 여수시민의 날을 바꾸자는 의견이 많은데 여수라는 지명이 없어졌다 다시 복원된 1897년 5월 16일을 여수시민의 날로 바꿨으면 좋겠다. 이 날은 잃어버린 여수를 찾은 날이라 훨씬 의미가 크다."

- 오PD: 여수 와서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원이 뭔가.
"순천 가서는 인물 자랑, 벌교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여수서 돈 자랑 말라 하면 1970년대 밀수가 연상되는데 실제 여수에서 돈 자랑 말라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생겨난 말이다.

이말은 원래 여수가 아닌 거문도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거문도에 관해 일본인이 쓴 책을 보면 거문도는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쓰여 있다. 거문도에 고기가 많이 나면서 돈이 많았다. 그것은 수산업인 제빙업이 발달한 탓이다.

아무리 좋은 고기를 잡아도 냉동하지 못하면 썩어버리기 때문에 제빙업이 여수까지 성행했다. 특히 1930년 여수는 전라선 열차가 개통되어 시모노세키까지 정기 연락선이 다녔다. 기후가 온화해 일본인이 굉장히 많이 이주했다."

- 오PD: 책에 다카세 농장(고뢰농장)이 등장한다.
"여수의 3지역(관기뜰, 화양뜰, 대포뜰)이 있다. 이곳은 고뢰농장에서 매입해 만들어진 농장이다. 고뢰농장은 1911년 여수에 진출했다고 기록되나 훨씬 일찍 들어왔다. 30년 전인 1881년이다.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은 12개 조항인데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 하나 있다. 일본의 침탈의도가 숨어있다. 이 조약을 체결하자말자 일본이 황해도 은율군에 부전농장을 세웠다. 이는 우리나라를 수탈하기 위해 조약을 체결한 거였다. 3년 후 여수에도 고뢰농장을 세웠다. 고뢰농장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그 기지가 여수의 다카세 농장이다."

여수에 강제 징용된 중국인 노동자 '꾸리'

 주철희 박사가 펴낸 일제 강점기 여수를 말한다 책속에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신음했던 이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억압과 강제동원된 꾸리들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주철희 박사가 펴낸 일제 강점기 여수를 말한다 책속에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신음했던 이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억압과 강제동원된 꾸리들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심명남

- 오PD: 책에서 거문도 야학 사건을 다뤘다. 야학 사건을 넣은 의도가 뭔가
"거문도 가면 영국군 묘지가 있다. 거문도는 일본·러시아 등 열강들의 군사기지 요충지였다. 거문도 군사기지를 쓰다 야학 사건을 쓴 이유는 당시 일본 면사무소가 있던 거문도 중심지에서 항일운동을 하기란 매우 힘들었음에도 원종상 형제가 야학을 통해 항일운동을 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이 아직 독립유공자로 공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도 정확한 이유도 없이 통과가 안 되고 있다."

- 오PD : 만성리 마래터널 등 강제노역으로 죽어간 중국인 '꾸리'들의 애환도 나온다.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이 말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강제징용간 큐슈탄광 숙소에 써놓은 말이다. 마찬가지다. 마래터널과 신항을 개발하는 과정에는 중국인 노동자 '꾸리'들의 희생이 컸다.

얼마전 만성리 마을회관에 조사가서 전라선 얘기를 꺼내니 한 어르신이 저기 파면 허연 뼈가 수북이 나올 거라고 하더라. 순간 여순사건의 희생지였을까 생각했는데 중국인 노동자들이 죽으면 거기에 던져진 곳이란다. 꾸리들의 희생이 컸다. 조선 징용자들이 그렇게 절규하고 썼듯 그들도 이 땅에 강제노역을 당하면서 똑같이 말했을 거다.

오동도 입구에 작은 빗돌을 하나 세워 1930~1945년까지 여수항이 개발되는 과정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이 희생됐다. '이들의 넋을 기립니다'라고 빗돌 하나 세우면 의미가 클 것 같다."

- 오PD : 김영준씨에 대해서도 다뤘다.
"김영준은 여수 출신은 아니지만 여수에서 성공한 기업가다. 특히 미평초등학교가 힘들었을 때 인수해 정상적인 학교를 세웠다. 여수뿐 아니라 이리에서도 사회공헌사업을 많이 했다. 이분의 공도 인정돼 '여수시민상'도 받았지만, 분명 과오도 있다.

당시 신문에 조선임전보국단 전남발기인으로 돼 있다. 조선임전보국단 의미는 조선청년들을 전쟁터로 나가 죽으라는 것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때 청년들과 14~15살 여학생을 근로정신대로 보냈다. 임전보국단이 앞장섰다.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또 일제침략에 동조해서 군용비행기를 헌납한 사람이다. 그는 1948년 여순사건 때 반군들에게 처형당했다."

- 오PD : 자료를 습득할 때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향토사학자인 김계유 선생의 여수여천 발전사는 정말 다른 곳은 구할 수 없는 귀한 책이다. 그분이 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이제 그만한 책을 써야 한다. 다만 역사학자가 아니다 보니 오류가 있더라. 책 속에 일제가 전라선과 여수항을 개발하게 된 궁극적인 목적은 군사기지화였다. 두 번째가 경제적인 수탈이었다. 그래서 신항을 개발했던 거다. 그런 점들이 빠져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주철희 #광복70주년 #여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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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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