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해지는 남자와 실망한 여자의 연애사

[리뷰] 영화 <선샤인 러브>,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등록 2015.09.18 10:45수정 2015.09.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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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판타지는 희망이었다

햇살이 비치는 것 같은 사랑. 영화를 만든 감독은 제목에 담긴 비화를 밝혔다. 본디 제목은 '고양이가 잔다'였으나 촬영하는 동안 고양이를 통제할 수가 없어 그 비중을 줄였단다. 비중을 줄이니 영화와 고양이는 관계가 없어졌고 결국 낯간지러운 제목, <선샤인 러브>를 채택했다. 배우 오정세는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듯, 사랑은 그를 비춰주는 따뜻한 햇빛 같은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설명처럼 영화는 간지럽고 따뜻하다. 풋풋했던 20대 초반, 정숙과 길호는 대학교 선후배로 만난다. 당시 정숙은 내성적이고 못생긴 후배로 길호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길호는 "가서 정수기나 팔아!"라며 정숙이를 박대하고 다른 여자들만 찾아다닌다.

그렇게 인연이 끊어진 지 수년 후. 정숙의 절친한 친구가 임신하게 된다. 분노한 정숙은 그녀를 임신시킨 남자를 찾아 따귀를 날리지만, 아뿔싸! 당사자인 남자의 친구를 때렸다. 그런데 맞은 남자가 반색한다. 알고 보니 그는 길호였던 것.

이를 인연으로 정숙과 길호는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험난하다. 만년 고시생이었던 길호는 대기업 정수기 회사 과장인 정숙 앞에 점점 작아만 졌기 때문이다. <선샤인 러브>는 이처럼 작아지는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실망을 거듭하는 여자의 연애사를 그린 영화다.

<은하철도 999> 오마주, 7포 세대의 사랑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로만 봐선 곤란하다. 이 영화는 무려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간중간 삽입된 <은하철도999>, 특히 '희망이라는 이름의 별' 편에 대한 오마주는 영화의 장르를 판타지로 밀어 올린다. 여기까진 영화의 예고편, 팸플릿에 소개된 장르에 대한 설명이다.


영화의 진정한 판타지는 <은하철도999> 오마주가 아닌 결말에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길호는 평소 본인이 관심 있었던 판타지 무협소설 <나는 공무원이다>를 출간시킨다. 조그만 출판사에서 출판한 싸구려 소설이지만, 이 소설은 그에게 있어 최초의 성과다.

그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자신에게 지쳐 멀어져 버린 정숙에게 간다. 고장 난 오토바이를 탈탈탈 끌면서. 아직 길호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한 정숙은 대기업 맞선남을 걷어차고 길호와 손을 맞잡는다. 감독은 그 장면을 이 둘이 은하철도에 오르는 것으로 묘사했다. '사랑'이 티켓이 되어 은하철도에 오르는 가난한 연인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여운 3포 세대, 아니 이젠 7포 세대에게 있어서 '대기업 커리어우먼'과 '무능력한 만년 고시생'이 사랑으로 이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은하철도에 오르기만 하면 의식주가 해결된다. 감독은 은하철도에 오르는 티켓을 사랑이라 말했지만, 현실에서 사랑은 은하철도999의 티켓이긴커녕, 올랐던 은하철도에서도 내려야 하는 빨간 딱지나 다름없다.

<은하철도999>에서 철이와 메텔은 헤어졌다. 메텔은 철이에게 먼저 가 있으라 말한 이후 다른 기차를 탔다. 결국 철이는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메텔은 그런 철이를 눈물로 보낸다. 그토록 염원하던 은하철도의 승객조차 현실에 의한 이별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랑을 티켓으로 결혼에 골인한 메텔과 철이, 정숙이와 길호 친구 커플. 사랑을 티켓으로 은하철도에 탑승한 정숙이와 길호. 이들은 이별을 피할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은 진정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걸까. 영화의 답을 현실 속에서 구해야 하는 상황. 관객에게 주어진 물음이다.
#선샤인 러브 #조은성 #조은지 #오정세 #7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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