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독일의 선례... 국정교과서 반대론

[주장] '국정 교과서'는 과연 우리에게 '긍적적인 역사관'을 가져다줄까

등록 2015.09.22 10:03수정 2015.09.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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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책 <긍정의 배신>은 무조건적인 긍정적 사고를 경계한다. 지나친 긍정은 위기 시에 눈을 감게 만들어 닥칠 위험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말처럼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우리의 발등을 찍는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인식 또한 다르지 않다. 역사를 바라보는 지나친 긍정적 시선은 과거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이를 통한 타산지석의 태도를 무용하게 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긍정적 역사관'을 내걸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현 검/인정 체제가 우리 역사의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있으니,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과서 체제와 긍/부정적 역사적 인식에 대한 유의미한 연결고리는 보이지 않는다. 김무성 대표의 말은 마치 현 검/인정 체제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비관하고,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역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교과서 체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됐다. 우리 역사는 말 그대로 '통한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가 '국부(國父)'로 모시자고 주장하는 이승만 정권 시기도 그다지 긍정적이진 못했다. 각종 부정선거와 언론탄압이 판을 쳤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수도 서울 사수"를 외치더니 다리를 끊고 도망쳤다. 돌아와서는, 북한군이 무서워 그들이 시키는 대로 노역을 한 '버려진 국민들'의 머리에 총부리를 겨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런 역사였다.

그가 추구하는 '긍정적인 역사관'이란 정부에서 나눠주는 천편일률적인 교과서 몇 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통렬하게 반성한 후에,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독일의 뉘른베르크시가 좋은 예다. 뉘른베르크는 한때 '히틀러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나치 정당의 상징이었던 도시이기도 하다. 나치 전당대회가 이 도시에서 열렸고, 홀로코스트의 주요 근거가 된 법안의 이름 또한 '뉘른베르크 법'이었다. 그랬던 도시가 2001년에는 유네스코 인권상을 받았다. 과거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도시의 노력 덕분이었다. 자부심 있고 긍정적인 역사관이란 이렇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글자 몇 줄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그렇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한때 우리도 국정교과서 체제를 채택한 전례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다. 교과서의 내용은 한없이 긍정적이기만 했다. 당시 교과서는 5.16 군사 쿠데타를 이렇게 정의했다. '4·19 혁명 이후,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자국의 공산화를 막은 구국의 결단.' 전혀 긍정적이지 못한 역사를 억지로 긍정적으로 기술하려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역사 기술이 아닌 역사 미화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역사 미화가 우리에게 긍정적 역사 인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그 시절 정권에 편향된 잘못된 역사를 가르친 부끄러운 과거만 안겨줬을 뿐이다.

현 검/인정 체제가 완벽하다고 말할 순 없다. 다양한 역사 교과서 때문에, 수험생들의 공부에 불편함이 생기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존 체제를 뒤집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수학능력 시험이 문제라면, 교과서 별 차이가 있는 부분은 출제를 안 하면 될 일이다. 충분히 현 검/인정 체제에서 보완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부분들이다.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까지 태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제안된 대안이 '국정교과서 체제'라는 최악의 수라면 더욱 그러하다.
#국정교과서 #김무성 #역사교과서 #역사 #긍정적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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