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착취와 지배의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것"

[주장] 억압의 사슬을 두른 부채 인간, 독립적 경제 주체로 거듭나야

등록 2015.09.23 11:52수정 2015.10.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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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오는 2016년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1%(645조2000억 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재정 건전성의 한계선으로 설정해왔던 40%를 넘는 수치다. 지난해 말 공공기관 부채 520조5000억 원을 포함하면 국가부채 규모는 1100조 원을 넘어선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조치로 가파른 상승 폭을 보였던 가계부채도 올해 2분기 기준 1130조5000억 원을 기록했다.

부채가 줄어들 수 없는 이유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지금의 막대한 국가채무는 재정 건전성까지도 고려했어야 할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역시 "빚내서 소비하라"는 정부의 부채 주도 성장전략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채 주도 성장전략의 한계는 유효수요를 부채로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향상해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 폭에 맞게 임금 상승이 이뤄져야 한다. 임금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창출해내는 원천이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기업이 만들어내는 물건을 살 여력이 감소해 경제 성장의 정체를 불러온다.

그러나 부채 주도 성장전략은 실질임금 상승이 자리해야 할 곳을 부채로 대체한다. 소비의 기반을 소득이 아니라 부채로 설정하는 것이다. 부채 규모가 증가할수록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즉, 임금을 올리지 않더라도 적정 수준의 유효수요를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부채가 증가하고 저축이 감소하다 보면 추가 대출 여력과 상환 능력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채 규모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자산시장의 붕괴로 인한 장기 침체를 각오해야 한다.

이러한 지적과 우려 속에서도 부채 주도 성장전략이 꾸준히 채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전략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는 다름 아닌 '빚'이다.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 '빚'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금융기관의 예금과 대출을 거쳐 창조된다. A라는 사람이 한 은행에 1만 원을 넣었다고 가정하자. 은행은 이 돈의 통상 10% 정도를 제외(지급준비율)한 나머지 금액을 대출한다. 은행이 B라는 사람에게 나머지 금액의 전부인 9000원을 빌려주면 B의 통장에는 9000원이 찍힌다. 물론 A의 통장에도 그대로 1만 원이 적혀 있다.

결국, 은행은 A의 돈을 B에게 빌려준 것이 아니라 A가 맡긴 돈의 90%만큼 새로운 돈을 창조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방식으로 끊임없이 돈을 창조하고 성장해왔다. 빚과 빚지는 사람. 이것이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다.

이탈리아 출신 사회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자신의 저서 <부채인간>(메디치, 2012)에서 지금의 경제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기업가나 미디어, 정치인 및 전문가들은 현 상황의 원인을 막대한 양의 부를 가장 부유한 자들 및 기업에 이전함으로써 적자를 키워 온 통화 및 금융 정책에서도, 오늘날 이를 '시스템의' 위기라 부르며 국민들의 어마어마한 부를 강탈함으로써 반복되는 금융 위기에서도 찾지 않는다." - <부채인간> 본문 중에서

국제사회는 실질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 폭과 보조를 맞추는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부채가 자리할 곳을 소득이 대신함으로써 부채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부채는 이미 우리 삶의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 라자라토는 부채를 착취와 지배의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본래 억압의 사슬을 두른 부채 인간이 아니라 독립적인 경제 주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서울시 광진구 지역신문 <광진투데이>에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가채무 #가계부채 #국가부채 #부채인간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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