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김치유통 일이 좋았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사업장에서 같이 일했다.
매거진군산 진정석
학교 수업이 끝난 군산 중앙중학교 교문 앞에는 학원 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연희 아버지의 봉고차도 있었다. 아버지는 연희에게 "배달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고 말한다. 연희는 봉고차 앞자리에 앉는다. 차 뒷자리에는 납품할 김치가 실려 있다. 어느 식당 앞에 차를 세운 아버지가 김치를 가지고 들어가면, 연희는 영수증을 챙겨서 뒤따라간다.
"아빠 일은 내가 물려받을 거야. 그러니까 오빠는 오빠 일 찾아서 가." 고등학생 연희는 의대 다니는 오빠에게 늘 다짐을 받았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마냥 좋아보였다. 반에서는 1등, 수행평가만. 시험성적은 열심히 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연희가 스무 살 되자마자 "나중에 배추장사라도 하려면 트럭 몰고 다녀야 하니까 스틱으로 면허 따라"고 했다. 연희는 그대로 따랐다.
연희는 성적에 맞춰서 지방에 있는 한 대학 대체의학과에 진학했다. 아로마테라피, 척추교정, 운동치료. 컬러 테라피, 요가, 경락 등 수술하지 않고 의학을 대체할 수 있는 분야를 배웠다. 1년 등록금은 약 800만 원. 한 학기라도 일찍 졸업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대체의학은 국가에서 인정 해주는 국시(국가자격시험)가 없다. 학교 졸업하면 갈 데가 없다. 어떤 사람은 추나 요법이나 척추 교정하는 센터를 차리기도 한다. 합법적으로 사람 몸을 만지기 위해 국시인 피부관리사 자격증이라도 딴다. 지도교수가 추천해주는 병원에 치료보조 자격으로 취업한다. 월급은 많아 봐야 100만 원 선, 미래는 암울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김치 대리점으로 출근 "연희야. 네가 아빠 사무실(김치 대리점)에 와 있기만 해도 좋겠다. 아빠가 밖으로 뛰니까, 네가 가게에서 손님 응대도 하고, 전화도 받고." 20여 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가 약간 불편한 아버지는 딸과 일하고 싶어 했다. 연희씨는 7학기 만에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아버지 사무실에 출근했다. 매일 김치를 배달하는 학교 20여 곳. 주문전화 오는 레스토랑, 장례식장, 일반식당 70여 곳. 연희씨 아버지는 물건이 오고 간 것을 장부에 적었다. 영수증을 받았다. 그게 없으면 돈을 못 받았다. 구멍가게 같았다.
연희씨는 영수증을 쓸 줄 몰랐다. 관리할 줄도 몰랐다. 거래명세서, 계산서, 일반영수증이 뭔지도 몰랐다. 어떤 거래처에는 영수증이 가고, 어떤 거래처에는 납품서가 가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아버지는 연희씨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그런 거 하나도 몰라?" 화만 냈다. 우주에서 가장 친하던 부녀 관계는 일터에서 틀어졌다.
"아빠! 나는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한 번도 안 해봤잖아. 아빠는 처음부터 잘 했어? 알려주지도 않고 나한테 왜 이러냐고요?""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뭘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