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중가요, 400년 후에도 남아있을까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이채훈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록 2015.10.12 09:53수정 2015.10.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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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를 적에는 힘든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한테는 힘든 일이 한 가지도 없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힘겨움을 살며시 털어내 주기 때문입니다. 군대 같은 곳에서 군인한테 억지스레 노래를 부르도록 시킵니다. 힘들어 죽을 마당에 노래까지 시키니 더욱 죽을 노릇이지만, 새삼스레 죽을 힘을 뽑아내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조금은 힘이 붙어서 한걸음을 더 떼어낼 만하기도 합니다.

예부터 들에서는 누구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들노래입니다. 들노래는 들일을 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들일은 땡볕을 고스란히 쬐면서 하는 일이거나 비를 쫄딱 맞으면서 하는 일입니다. 무더위에 지치기도 할 테고, 자꾸 퍼붓는 비에 고단하기도 할 텐데, 이렇게 지치거나 고단할 무렵 슬금슬금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며 땡볕이나 비를 잊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새로운 힘이 솟습니다.


"모든 클래식은 당대 청중의 노래"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어머니도 아기를 달래고 재우고 입히고 먹이고 씻기면서 으레 노래를 불러요.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도록 일이 많거나 벅차다지만, 아기를 바라보면 새로운 사랑이 솟아서 노래가 흘러나오지요. 아기한테 들려주는 노래는 언제나 어머니 스스로 누리는 새 노래가 됩니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 (이채훈 지음 / 호미 펴냄 / 2015.06. / 1만5000원)
<클래식 400년의 산책,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이채훈 지음 / 호미 펴냄 / 2015.06. / 1만5000원)호미
"모든 클래식 음악은 당대의 청중이 향유하던, 그 시대의 '현대음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작곡가들은 언제나 새로운 음악 언러를 모색했고 창조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본문 17쪽 중에서

"코렐리의 <라 폴리아> 변주곡은 아득한 그리움을 노래합니다. 저는 첫사랑에게 이 곡을 녹음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들으면 첫사랑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 본문 39쪽 중에서

이채훈 님이 쓴 <클래식 400년의 산책,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밝히듯이 '클래식 400년'을 가볍게 돌아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책입니다. 글을 쓴 이채훈 님은 이녁이 알려주는 클래식마다 유투브에서 이 노래를 찾아서 듣기 좋도록 열쇳말을 함께 밝힙니다. 글로만 읽기보다 노래를 함께 들으면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클래식이 어떤 노래인가 하는 대목을 한결 즐거이 누릴 만하다고 해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선율이 참 따뜻합니다. 모든 파트가 피치카토로 반주하는데, 이 소리는 창 밖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되고, 화로 속에서 나무가 불타는 소리라 해도 좋습니다. 아늑한 난롯가 풍경입니다. 멜로디가 쉽고 단순해서 휘파람으로 불기 안성맞춤입니다." - 본문 63쪽 중에서


"바흐는 바로크 시대 음악의 모든 자양분을 흡수하여 거대한 음악 세계를 이룬 '바다'와 같습니다." - 본문 79쪽 중에서

'클래식(classic)'이라고도 하고, '고전음악(古典音樂)'이라고도 하는 노래는 모두 맨 처음에는 '현대음악'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바라보기로는 사백 해도 되었고 이백 해도 된 노래라 하지만, 막상 이 모든 노래는 맨 처음에 '가장 새로운 노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노래는 그저 노래입니다. 늘 부르는 노래가 있고, 언제까지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한때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노래가 있고, 두고두고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고전음악'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하지만, 이 노래는 두고두고 듣거나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느 한때에 반짝이는 노래가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요즈음 노래'라고 할 대중노래는 목숨이 길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다시 부르기(리메이크)'로 나오는 '철이 지나간 노래'도 있습니다만, 방송을 가득 메우는 대중노래는 목숨줄이 아주 짧아요. 앞으로 백 해쯤 뒤에도 부르거나 들을 만한 노래가 있을는지 알 길이 없고, 사백 해나 천 해 뒤에도 부르거나 들을 만한 노래가 있을는지 알 길도 없습니다.

"그는 12년 동안 이 곡을 연습한 끝에 스물다섯 살이 된 1901년, 드디어 공개 무대에서 연주했습니다. '학술적이고 기계적이며, 따뜻한 느낌이 없는 곡'으로 알려진 이 곡들은 카잘스의 손에서 '폭넓고 시적인 광휘로 가득 찬 곡'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 본문 131쪽 중에서

"따스한 햇살 한 줌이 마음 깊이 들어와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드시나요? 바흐 음악이 위대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위로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 본문 154쪽 중에서

 아이들이 집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새롭게 즐겁습니다.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즐겁게 치는 소리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새롭게 즐겁습니다.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즐겁게 치는 소리는 언제나 즐겁습니다.최종규

삶을 사랑으로 채우도록 북돋우는 노래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대중노래이든 고전음악이라는 노래이든 어느 한쪽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아요. 더 뛰어나거나 훌륭한 노래가 없습니다. 사랑받는 노래가 있고 사랑을 못 받는 노래가 있을 뿐입니다. 널리 알려지면서 부르는 고전음악이 있고, 한때 반짝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대중노래가 있어요. 일찌감치 사라진 고전음악이 있으며, 오래도록 사랑받으리라 여길 만한 대중노래가 있지요.

<클래식 400년의 산책>은 지난 사백 해 동안 꾸준히 사랑받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널리 사랑받으리라 보이는 노래를 이야기합니다. 뛰어난 노래이니까 사랑받을 만한 노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글쓴이 이채훈 님이 스스로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어떤 마음이 되었고, 저 노래를 들을 적에 어떤 마음이 되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하이든의 현악사중주는 모차르트에게 영감과 함께 새로운 도전의식을 주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다른 사람의 성취를 제대로 볼 줄 알았고, 그것을 자신의 풍요로운 자산으로 소화하고 흡수할 줄 알았습니다." - 본문 246쪽 중에서

한국의 클래식 '들노래', 부르는 사람이 없다

서양에서 널리 듣고 나누는 고전음악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사랑받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먼 옛날부터 함께 부르고 나누던 들노래가 있고 일노래가 있으며 놀이노래와 자장노래와 마당노래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사람이 예부터 누구나 부르거나 듣던 노래는 어느새 줄이 톡 끊어졌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들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시골에서는 콤바인 소리만 가득합니다. 봄에도 경운기와 트랙터 소리만 시끄러울 뿐, 들노래는 한 가락도 없어요. 깨나 콩을 털면서 '깨 터는 노래'나 '콩 터는 노래'를 부르는 할매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시골에는 아이들도 거의 없으니, 아이들을 달래면서 어버이가 사랑으로 들려주는 자장노래는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놀이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거의 모두 텔레비전 대중노래를 따라서 부릅니다. 텔레비전 대중노래 가락과 춤사위를 똑같이 흉내내려고만 합니다. 마을마다 다 다르던 놀이노래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고, 아이들 스스로 새로운 놀이노래를 지을 줄도 모릅니다.

바야흐로 전문가들이 노래를 짓고, 전문가들이 노래를 비평하는 사회라고 할까요. 시골마을뿐 아니라 회사나 공공기관에서도 '노래하며 일할 수 있는 터전'은 아닙니다. 신문사나 출판사 같은 데에서도 '노래하며 일하는 사람'은 없기 마련이에요. 운전 기사나 공장 일꾼은 대중노래를 흥얼거리기는 하되 '일하는 노래'를 부르지는 못합니다.

 따로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은 가락을 스스로 빚어서 부르는 하모니카는 새삼스럽게 재미있습니다. 노래란 언제나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에 입힌 가락일 테지요.
따로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은 가락을 스스로 빚어서 부르는 하모니카는 새삼스럽게 재미있습니다. 노래란 언제나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에 입힌 가락일 테지요.최종규

"원숙한 하이든은 '질풍노도' 운동과 거리를 두고, 대중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여러 방법을 구사했습니다. 평범한 청중들이 알아듣기 쉽게 배려한 탁월한 기교가 이 시절 하이든 음악에 섬세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 본문 258쪽 중에서

꼭 '한겨레 일노래'나 '한겨레 놀이노래'를 모든 사람이 불러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다만, 일하는 어른들 마음을 달래면서 어루만지는 노래가 없다는 대목은 쓸쓸한 노릇입니다. 놀이하는 아이들 사랑을 가꾸면서 북돋울 만한 노래가 없다는 대목도 씁쓸한 노릇입니다.

바람과 비와 해님이 흐르는 결을 가락으로 지어서 담기도 했다는 고전음악인데, 수수한 사람들(평범한 청중)도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지어서 펼치기도 했다는 고전음악인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래는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 궁금합니다.

노래가 있는 삶이 아름답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노래를 듣는 아이들이 착하게 자라고, 노래를 부르는 어른들이 슬기롭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덧붙이는 글 <클래식 400년의 산책,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이채훈 지음 / 호미 펴냄 / 2015.06. / 1만5000원)

이 글은 최종규 시민기자의 누리사랑방(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

이채훈 지음,
호미, 2015


#클래식 400년의 산책 #이채훈 #클래식 #인문책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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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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