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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갤'의 일부 세력은 '남성'이라는 젠더 전체를 '적'으로 파악해 그것만 파괴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혹은 최소한 기존의 견해를 전복 시킬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분노에도 여러 방향이 있다. 분노 이후 차분히 가라앉아 감정을 초탈한 '현자 타임'을 한동안 즐길 수도 있고, 더욱 많은 분노를 재생산하는 데에 쓸 수도 있다. '여혐'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기치로 모여든 것이 '메갤'이라면, '여혐' 논란의 최전선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점검해봐야 한다.
혐오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일시적 충격 효과로써는 탁월하지만, 이내 그 효과는 사그라지고 모두에게 '불쾌'가 남는다. '메갤' 유저 중 남성에 대한 "반발적 자아인식"을 기존에 강하게 가지고 있던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메갤'에서 보이는 발화에는 "반발적 자아인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너무도 신속한 '여혐' 낙인("너도 여혐이네"), 그리고 그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몰아가기'.
최근 '메갤'이 보여주는 반발적 활동이 우려스러운 것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데서 그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메갤'이 '미러링'을 시도하기 시작한 시점 이래로, 줄곧 '남성'의 언어습관과 사고를 통째로 빌려왔으므로 그것을 반사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사유방식, 즉 '비하' '무시' 혹은 '차별'이라는 기제가 사용자들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될 수 있다. '메갤'이 계속해서 '미러링'만을 구사하는 이상, 그들은 본질적으로 대외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미러링' 거울 속 이미지도 '나'다'미러링'이 정말로 '미러링'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발화 뒤에 "이것은 이러한 현상 혹은 태도에 대한 '거울반사'다"라고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칫 또 다른 단순한 혐오발화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걸 굳이 부연해야 알아듣니?"라는 목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것이다. 그 목소리는 배제의 논리를 자체 내에 포함하므로, 그래서 폭력적일 수 있으므로.
잘못된 발언에 대해 "너희(라는 단어 역시 모호한 일반화를 포함하지만)가 한 것과 똑같이 했을 뿐인데?"라고 말하는 것은 기존에 존재한 잘못 그 자체를 시정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잘못을 재생산함으로써 '잘못' 바이러스를 더욱더 증식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발언의 당사자가 반성하거나 성찰하는지의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어떤 운동이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은, 기존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열띤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오지 않았거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외부의" 사람들에게까지 문제의식이 확산될 때다. '메갤' 사용자들이 '너희는 아직도 우리의 전략을 이해를 못 하겠지'라는 우월감으로 가득해 보이는 건 나만의 걱정일까. 잘못은 언제나 '(선한) 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있지 않았나.
거울 속 이미지가 어떤 변형도 왜곡도 없이 동일하게 보이는 까닭은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기 때문이다. 단지 좌우가 바뀌어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우리 눈에서 나온 빛을 정말로 우리 눈에서 나왔다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은 이러한 '착각'이 '메갤'에서 나타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여초' 커뮤니티 내부에서 오가는 것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그리고 온라인상의 운동을 오프라인과 연결 지어 실천했다는 점에서 '메갤'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여성혐오 이슈들은 '메갤'이라는 후원군이 없었다면 어쩌면 공론화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비로소 여성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지고 있고, 이에 '메갤'이 결정적인 지지자로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폭로'는 단발적인 충격으로 작용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통쾌하게 하거나, 놀라게 하거나, 분노하게 한다. 잘못, 부도덕, 범죄를 폭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도덕적이다. '메갤'은 최초로 '미러링'을 시도해 나름대로 큰 규모의 '충격과 공포'를 랜선 속 세상에 퍼뜨렸다. 그러나 '폭로'가 영원토록 이루어질 수는 없다. '폭로' 이후가 중요해지고 있다. "너희도 당해봐라"만을 끊임없이 '시전'하는 집단은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깊이 혐오한 대상과 자신이 닮은 것 같아 보일 때, 우리는 얼마나 뼈저린 수치심을 느끼는가. 과격하게 굴지 말라는 게 아니다. 더 나은 전략이 필요하지 않은지 고려해보라는 말이다. 분별력을 가지는 것과 나이브한 것은 다르다.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 균열을 내기 위해선, 거울 앞에서 자신과 동일해 보이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패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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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패야 한다'는 페미니스트, 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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