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가 골백번 넘어져 깨달은 진실, 너도 알게 되겠지

[사춘기 아이에게 보내는 그림책 편지①] <마녀 위니>

등록 2015.10.20 15:09수정 2015.10.2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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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억하니? 검은 집에서 검은 고양이와 살았던 마녀 위니 말이야. 검은 고양이 때문에 위니는 걸핏하면 넘어졌단다. 위니의 매부리코는 빨갛게 짓물렀고, 머리는 폭탄 맞은 것 같았다. 다섯 살 아이 마냥 넘어지는 바람에 마녀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마녀도 넘어져!" 입이 터질 듯 웃었던 네 얼굴이 떠오르는구나. 우당탕탕 넘어지는 위니의 놀란 표정에서 동병상련의 동지애를 느꼈는지, 넌 무척이나 좋아했단다.

위니는 고양이의 색깔을 바꿔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검은 고양이와 함께 살려면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위니의 요술지팡이가 고양이를 주무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주문만 외무면 고양이를 다른 스타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위니의 마음대로 고양이를 변하게 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산책을 나간 위니는 풀밭에서 다시 넘어졌다. 연두색 고양이에 걸려 우당탕탕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검은 집에서는 연두색이 눈에 확 띄지만, 풀밭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위니는 고양이에게 어떤 색깔의 옷을 입힐지 고민스러웠다.

고양이 때문에 넘어지는 창피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어느 곳에 있더라도 눈에 확 띄려면, 한 가지 색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위니의 요술지팡이에서 빨강, 노랑, 보라가 쏟아졌다. 검은 고양이는 한 눈에 들어오는 알록달록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검은 고양이의 완벽한 변신 앞에 모든 문제는 사라지는 듯 했다.

위니의 예상대로 고양이에게 걸려 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위니 곁에 머무르지 않았다. 고양이는 높은 나무 꼭대기 위로 달아나버렸다. 고양이가 없는 빈집은 쓸쓸했다. 혼자 마시는 차 맛은 별로였다. 위니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가 다시 돌아올까.

위니는 넘어져 짓무른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나 고양이가 사라진 이유를 헤아렸다. 나무 꼭대기 위에 어떤 답이 있을 것 같았다. 위니의 요술 지팡이는 항상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요술지팡이는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한 편리한 도구라고만 여겼다. 요술 지팡이가 두려운 검은 고양이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요술 지팡이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위니의 요술 지팡이가 큰 원을 돌며 움직였다. 고양이는 원래의 검은 고양이가 되었다. 검은 고양이는 나무 꼭대기에서 내려왔다. 요술 지팡이가 위니의 검은 집을 향해 꿈틀거렸다. 아름다운 무지개 빛이 검은 집을 향해 날아들었다. 위니의 집은 우중충한 검은 집이 아니었다. 빨간 지붕에 노란 색 벽을 두른 산뜻한 집이었다. 그 집에서 검은 고양이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발코니에 앉아 신문을 읽는 위니 곁에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다.


위니에게 검은 고양이는 낯선 타자(나와 다른 존재)이다. 인간은 낯선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검은 고양이에 걸려 넘어지는 예상치 못한 문제와 마주할 때가 있다. 갈등과 불안의 순간, 우리는 검은 고양이를 원망한다. 하필이면 고양이가 왜 검정 색인지, 그게 불만스럽다. 검은 고양이와 같은 색으로 칠해진 자신의 집이 문제였다고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넘어지고 자빠지는 황당한 상황에서 요술지팡이의 힘이라도 빌려 상대를 변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들아, 문제는 검은 고양이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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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위니 <마녀 위니> 코키 폴 그림, 밸러리 토머스 글, 김중철 옮김, 비룡소 ⓒ 비룡소

삶의 문제는 검은 고양이에게 있지 않다. 문제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는 내 안에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빛깔의 고양이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고양이의 색깔이 아니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검은 고양이가 나를 넘어뜨린 것이 아니다. 내가 검은 고양이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나의 시야를 변화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타인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면 그 결과는 뻔하다. 제멋대로인 지팡이가 두려워 아무도 그 곁에 머물지 않는다. 모든 고양이를 꼭대기로 몰아낼 의도가 아니라면, 지팡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인간의 다른 별명은 건축가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고양이를 위해 자신의 집을 새롭게 단장하는 건축가 말이다. 녹슨 집을 고치려고 팔 걷어 부치는 부지런한 건축가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주저 없이 망치질을 하고 과감하게 낡은 담장을 부숴버리는 건강한 알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검은 고양이와의 행복을 위해 지붕을 새롭게 칠하고 창틀을 수선한다. 구석진 작은 방을 허물어버린다. 조금씩 허물고 고치는 그 과정 속에 비로소 인간다움이 완성된다. 낯선 타자로 둘러싸인 자신을 향해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집을 변화시키는 그 수고로움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높은 미덕이다.

지금 네 주변은 낯선 타자로 어수선하다. 힘들기만 한 산에 가자고 조르는 아빠,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 눈치 빠른 동생 때문에 괴롭겠다. 이 모두가 검은 고양이가 되어 너를 넘어뜨리는구나. 검은 고양이의 발톱에 긁혀 생채기가 돋아난 건 아닌지 걱정이구나. 마녀 위니처럼 검은 고양이만 쫓는 건 아닌지, 너의 웅크림을 지켜보는 중이다.

너의 인식 세계에 처음 포착된 검은 고양이를 어떻게 할지 지켜볼 수밖에.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입이 아프도록 주문을 외우고 있겠구나. 검은 고양이에 몰두하느라 정작 어떤 집에 사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렸겠지. 이때 아니면 언제 그래보겠니! 너를 향해 달려오는 검은 고양이를 몰아내기 위해 마음 속은 엉망진창이다. 몰래 그러느라 방문을 잠가두는 거니? 지팡이를 지키려고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 거니? 그런 지팡이에 눈독들일 사람 아무도 없는데.... 어떤 지팡이인지 보여줘도 괜찮은데...

그럴 때마다 네 마음 속을 바라보렴. 왜 검은 고양이 때문에 괴로운지... 괴로움의 주범이 검은 고양이인지, 아니면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는 네 마음인지... 네 마음을 두드리는 검은 고양이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검은 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지팡이를 내세운다면, 네 옆을 서성이는 어떤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마법사도 쩔쩔맸던 검은 고양이인데, 사춘기 소년이 감당하기가 쉬울까. 네 마음도 코끝이 짓무른 위니의 얼굴을 닮아 있겠구나. 검은 고양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위니처럼 곰곰이 생각한다면, 너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나타날 거야. 방문 활짝 열고 너만의 마술을 선보일 그날을 기대할게.

으스스한 숲속 한 가운데 빨간 지붕에 노란 벽을 두른 집을 발견하면 말이야. 검은 고양이를 무진장 사랑했던 마녀가 살았던 집이란다. 검은 고양이를 위해, 자신이 살았던 집을 바꿔버린 용감무쌍한 마녀가 살았던 집이다. 검은 고양이를 검은 고양이로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던 마녀가 있었단다. 요술지팡이가 있어도 검은 고양이를 어쩔 수는 없었단다. 검은 고양이는 원래부터 검은 고양이었다. 마녀 위니가 골백번도 더 넘어지고서야 깨달은 진실이었다.

마녀 위니

밸러리 토머스 글, 김중철 옮김, 코키 폴 브릭스 그림,
비룡소, 1996


#마녀 위니 #우상숙 #그림책 편지 #청소년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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