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8번 출구 농성장에 상주하는 반올림. 매일 오전·오후 농성장 바로 옆 삼성전자 빌딩을 돌며 직업병 피해자들과 함께 피켓 시위를 한다.
반올림
농성장에 두툼한 침낭을 깔고, 하늘을 이불 삼아 눕는다. 한밤 강남 한복판의 소음에 온 귀를 집중시킨다. 막차를 향해 달리는 하이힐의 또각 거리는 소리, 일주일의 고단함을 적셔 준 술에 취해 흔들거리는 삶의 소리, 한밤의 나들이에 신난 운동화의 경쾌한 소리.
갈 길이 바빠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와 깜빡이는 불빛들.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고, 가장 분주해 보이는 강남 한복판의 밤이 깊어간다. 하루를 바삐 살아온 이들의 정겨운 소음 속에서 슬며시 잠을 청한다. 우리의 발걸음이 강남역 8번 출구에서 멈춰진 지 13일. 이제 한밤의 소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한 노래처럼 들린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의 눈물로 만든 농성장8년이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했던 딸의 죽음이 직업병이라는 의혹을 품은 한 아버지 황상기씨의 고단히 싸운 세월이. 8년의 시간 동안 삼성은 모질게도 직업병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개인의 질병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한 지 몇 년, 진실을 은폐하고 돈으로 회유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황상기씨의 싸움에 세상이 눈을 돌려 영화로, 책으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삼성은 그때야 사과를 했다.
진정성 있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속초의 택시기사가 거대한 기업 삼성을 이겼다는 환호성도 잠시. 삼성은 온갖 꼼수를 동원해 사과를 무효로, 직업병 문제의 해결을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결국 거리의 삶을 선택하게 하였다.
삼성은 사회적 합의기구인 조정위의 권고안을 무시한 채 보상위원회를 꾸렸고, 직업병 문제를 개인적 보상으로만 해결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보상·사과·재발 방지 대책을 함께 논의하자는 외침을 외면한 채, 8년 전으로 모든 상황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아버지에 이어 (기업의) 새로운 경영자로 군림하는 이재용 역시, 직업병 문제를 등지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