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도 더 외우자!지금 고3 교실은 수능 마무리로 그 열기가 뜨겁기만 하다.
김환희
월요일 3교시 영어 시간. 지난 9월 수시모집 두 군데 지원해 수능 최저 학력이 있는 대학은 떨어지고 수능 최저학력이 없는 대학에 최종 합격한 한 여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 수시모집에 최종합격했는데 굳이 수능시험을 볼 필요가 있을까요?"
며칠 전, 이 학생은 서울 소재 모 대학 수시 모집에 최종 합격해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부러움과 축하를 사기도 했다. 사실 수시 모집에 다 떨어지면 수능을 잘 봐서 정시모집에 지원할 요량으로 서울 명문대학 두 군데를 상향해 원서를 낸 아이였다. 무엇보다 평소 모의고사 성적이 워낙 좋아 수능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여학생이기도 했다.
현 입시제도에서는 수시모집에 단 한 군데라도 합격(전문대 포함)한 사람은 정시모집에 지원할 수 없기에 수시 모집에 최종 합격한 이 아이에게 있어 대학 수능시험은 대입전형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잠시 뒤, 그 아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질문 하나를 더했다.
"선생님, 수능 시험을 보지 않으면 수능 응시료를 돌려받을 수 있나요?"그 아이는 이미 수능시험을 보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힌 듯 목소리가 진지했다. 그리고 수능을 보라고 권유도 해보았지만 그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 상황에서 수능 시험을 보라고 할 수도 없고,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교사의 입장에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수능을 보게 하려고 무슨 말을 한들 그 아이에겐 궁색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아이는 응시료를 환불받을 수 있는 대상자(천재지변, 질병, 수시모집 최종합격, 군입대, 사망 등)에 해당하기에 납부한 응시수수료의 60%를 환불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잘못된 현행 입시제도로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혼선만 부추기는 것 같아 교사로서 속상하기까지 했다.
수시모집에 최종 합격한 학생들의 경우, 이제 수능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수능 시험을 보는 거 자체에 큰 의미를 둘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이 아이들이 수능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수업에 집중했던 그 아이가 수시모집 최종 합격 이후, 행동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수능 이전에 최종합격자를 발표하다 보니 지금까지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공부해 온 일부 학생들은 허탈감에 빠져 일탈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엎드려 자는 등 기존에 전혀 볼 수 없었던 행동까지 일삼아 막바지 수능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수능일(11월 12일)을 며칠 앞두고 수시모집 합격자를 발표하는 일부 대학의 처사는 수험생과 수험생이 있는 학부모에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조금은 수험생의 입장을 고려하여 합격자 발표를 수능 이후로 미뤄 수험생이 후유증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수능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대학 측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는 며칠 남지 않은 수능을 위해 아이들이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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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 안 본다는 고3, 아무 말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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