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가의 만찬베로네세, '레위가의 만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관습적인 도상을 따르지 않았다 하여 종교재판에 회부된 베로네세의 대표작으로 가로 13미터가 넘는 대작입니다.
박용은
얼핏 보기에도 기존에 봐왔던 다른 '최후의 만찬'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다빈치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기를란다요의 작품과 비교해 봐도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죠. 세계 각국에서 모인 듯, 갖가지 전통 의복을 입고 있는 등장인물도 너무 많습니다.
그뿐입니까? 코피를 흘리는 하인, 어릿광대, 난쟁이, 강아지, 고양이, 원숭이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림만 보면,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베네치아의 한 귀족 집안에 벌어지는 잔치같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자신들의 풍습대로 묘사하는 것이 이 시기의 작품 경향이라 하더라도 분명 베로네세의 이 그림은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에서 벗어난 묘사도 그렇지만, 도미니크회에서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예수 주위에 있는 독일인들입니다. 당시 북유럽을 휩쓸고 있던 루터교의 신자들을 묘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었죠. 베로네세는 결국 신성모독과 불경죄라는 명목으로 종교 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베로네세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창작자의 자유 의지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비로 작품을 수정하라는 명령도 거부하고, 제목만 '레위가의 만찬'으로 바꿔버리죠.
르네상스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베로네세. 귀족 취향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그의 화풍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로 엄숙주의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던 그 시기,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한 그의 정신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이제 작품을 좀더 찬찬히 봅니다. 고전 건축에 적용된 투시원근법, 베네치아 화파 특유의 화려하고 자연스러운 색채 감각 등 곳곳에 베로네세의 솜씨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번 이탈리아 미술 기행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작품의 '크기'가 가진 의미입니다. 물론, 화집이나 모니터를 통해서 작품을 보는 것과 실물 크기로 작품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20여 일 가까이 작품들을 만나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 크기가 다른 작품들이 많더군요. 어떤 것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고, 또 어떤 것은 한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그런데 그 실제 작품의 크기가 작품들 하나하나에 꼭 맞는 옷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생각보다 작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나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그리고 브뤼헬의 세밀화들도 그렇고, 반대로 이 작품, '레위가의 만찬'이나 앞서의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작품들처럼 생각보다 훨씬 컸던 작품들도 모두 지금 현재의 그 '크기'가 가장 적당한 크기로 보였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동안 구도나 색채, 주제 등에 비해 아예 관심 밖에 밀려나 있었던 '작품의 크기'도 사실은 매우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작가들이 그 크기를 선택한 이유를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진품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그림 속에 있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