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분단 과정을 다룬 단원에서 북한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읽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해당 대목을 샅샅이 뒤져보자고 했다. 본문이든 삽화든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연합뉴스
내친김에, 정부가 국정교과서 추진의 이유라며 사례로 제시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 전쟁, 그리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다룬 교과서 내용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사실 이번 일이 없었다면 거기까지 진도를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교과서의 맨 뒷부분인 데다 대개 빠듯한 수업시수 탓에 아이들이 교과서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배우게 되는 내용이다.
참고로, 우리 학교에서 채택한 한국사 교과서는 대표 저자가 여당 대표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고 있을 만큼 정부에 의해 낙인찍힌 대표적인 '좌편향' 교과서다. 우선, 광복 후 분단 과정을 다룬 단원에서 북한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읽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해당 대목을 샅샅이 뒤져보자고 했다. 본문이든 삽화든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이들이 '억지 춘향'식으로 찾아낸 게 고작 '잘 생긴 김일성 사진이 실렸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는 'UN 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문구가 뚜렷한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며 말을 끊어 버렸다. 정통성과 관련된 정부의 발표 내용을 인용했더니, 되레 '정부' 수립과 '국가' 수립의 차이를 묻는 아이가 많았다. 교사인 나조차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6.25 전쟁의 책임에 대한 발표는 하나같이 "어이없다"고 했다. "학생들을 아예 바보로 아는 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라고 못 박았다. 김일성이 선전 포고도 없이 기습 남침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950년이라는 발발연도는 물론, 새벽 4시라는 정확한 남침 시각까지 다들 알고 있었다.
학생들은 '북한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정부의 발표는 논리도 근거도 없는 한낱 말장난이라 일축했다. 외려 교과서가 당시 전쟁의 원인을 북한과 국제 정세에만 두고 있어 설명이 부족하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닌 게 아니라, 교과서에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전쟁 준비와 한반도와 타이완을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을 전쟁의 배경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한 아이는 "'북한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왜 그릇된 것이냐"며 되레 발끈하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저러다 잡혀갈지 모른다'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했다. 비록 장난스러운 행동일지언정,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종북 좌파'라는 낙인은 시나브로 아이들에게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된 듯하다.
"대통령이 한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두고 '이거다'라고 규정하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건가요? 그런 역사가 어디 있어요. 두 손뼉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전쟁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끼리 싸움이 일어나도 한쪽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진 않잖아요. 대통령의 말씀대로라면, '잔말 말고 역사 교과서에 나온 대로 무조건 외우라'는 것밖에 안 되죠. 이러려고 이태 전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 아닐까요?"김일성 주체사상을 다룬 부분을 읽고는 아이들이 대놓고 '불만'을 제기했다. 내용이 지나치게 소략하다는 거다. 중국과 소련의 국경 분쟁 중 독자적 노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사상의 주체, 경제의 자립, 정치의 자주, 국방의 자위를 표방한 이론이라는 내용이 전부다. 이게 여당이 시내 곳곳에 이른바 '주체사상 현수막'을 비장하게 내건 이유라고 하니 아이들조차 어처구니없다는 눈치다.
학생들은 주체사상이 당최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으니 더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나조차 딱히 아는 바가 없어 교사용 지도서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정부가 교과서보다 훨씬 더 '좌편향'된 상태라고 낙인찍은 책이다. 어렵사리 구해다 본 몇 권의 교사용 지도서에는 '안타깝게도' 주체사상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보충자료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우상화에 관해 소개돼 있었다.
수능 출제한다고 제대로 된 교과서로 받아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