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인(왼쪽부터 일본인 미무라 환일본해경제연구소주임, 기자(본인), 유병호 다롄대학교 교수. 다롄의 한 밥집에서)
박도
또 다른 젊은이는 몇 해 전에 중국 다롄에서 만난 일본 청년이었다. 그때 나는 안중근 최후의 행적을 더듬는 답사길로 마침 다롄대학 유병호 교수의 안내를 받던 중이었다. 그날 유 교수는 한 일본 젊은이와 점심 약속이 돼 있다고 하면서 합석을 권했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점심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한·중·일 삼국의 과거사와 현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나눈 적이 있었다.
그날 미무라(三寸)라는 청년은 대단히 예의 바르고, 자기네들의 과거사를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반성하며 사과했다. 나는 그 밖에도 여러 차례 일본 방문을 한바, 그때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스미마셍'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대단히 예의 바르고, 매우 친절했다.
과거 일본과 독일의 광풍, 국가주의의 폐단 그런 독일인과 일본인들인데, 한 세기 전 그들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가 어찌 6백만 유대인을 학살하고 한국인과 중국인을 능욕하고 집단 학살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 독일이나 일본의 국가주의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가의 집단 집체 교육은 그만큼 사람을 무섭게 변모 시키기도 한다. 그런 과거사나 교육의 위험성을 모르는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처럼 들릴 것이다.
무엇이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괴물로 만들었을까?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 군국주의 광풍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국가주의로, 이는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이나 사생활보다 더 우선시하는 사상원리로 이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이념으로 국민을 교육한 결과 그 집단, 또는 국민 모두가 죄의식 없이 광풍에 휩싸여 괴물과 같은 광란을 저지르게 되었음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나는 이번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보고, 왜 굳이 역사의 시계 바늘을 되돌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허용되며, 다양한 사고의 소유자들이 자기의 양심에 따라 생각을 표출하여 난상토론 끝에, 더 나은 문화로 발전케 하는 커다란 이점으로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197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양같이 온순한 학생들이 대학을 입학하면 머리에 띠를 두른 운동권으로 변모해 몹시 의아한 경우가 많았다.
간혹 그들을 만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보면 한결같이 이제까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대학생이 된 후 보고 배운 현실과는 매우 다르고, 중고교에서 지난 역사를 잘못 배웠기 때문이라고 조목조목 예를 드는데, 내 답변이 궁색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학생 가운데는 심지어 여권 지지자 부모를 둔 학생도 없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다양하게 가르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