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자 자치행정국장과 이용식 광명시 홍보대사
윤한영
그렇다고 그의 입장에서 폐광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저 설득하고 또 설득하면서 폐광 개발의 의미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공무원의 한계이기도 했단다.
그렇다면 전 국장은 언제 광명동굴 개발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까?
광명동굴은 2011년 8월 22일, 내부 정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를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동굴을 찾아오는 이들은 가학산 등산을 하러 왔다가 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방문객이 5만 명을 넘었을 때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때는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거든요. 멀리서 온 관광객이 있으면 광명동굴을 방문하게 된 이유 등을 들어서 <광명소식>지에 기사화를 했어요. 이렇게 멀리서 우리 광명동굴을 찾아오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본 거죠. 그렇게 찾아오신 분들이 고맙기도 했어요." 2012년 9월, 광명동굴 개발을 전담하는 테마개발과가 신설되면서 폐광 개발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동굴을 찾는 관광객들은 점점 늘어났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동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광명동굴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한 때 광명동굴에서 일했던 광부들이 동굴해설사로 일하게 됐다. 그들에게 광명동굴은 남다른 존재이니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2013년 6월 29일, 동굴 예술의 전당이 개관하면서 광명동굴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동굴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전 국장의 말에 따르면 '폭발적인 인기'였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