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생겼다, 마흔 넘은 나이에

[초보 학부모 이야기 시즌 2 ⑪] 녹록지 않은 현실

등록 2015.11.07 18:12수정 2015.11.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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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5주차래."


셋째 초음파 사진 우리 셋째 초음파 사진입니다. ⓒ 김승한

10월 마지막 주, 아내는 몸이 안 좋아 일찍 퇴근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전 아내에게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임신이랍니다. 셋째를 가졌답니다. 전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아내 나이가 마흔 하나, 제 나이가 마흔 넷입니다. 아이를 낳기엔 좀 늦은 나이에 셋째가 생겼습니다.

나직이 말하는 아내의 말에 긴장되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전화기 너머 아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40대 중반, 아직도 지하 셋방을 전전하는 우리 가정을 생각하면 돈이 먼저 떠오릅니다. 몇 개월 후면 아내는 회사도 그만둬야 하니 생활비 걱정을 안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 부부는 첫째 아들이 9살, 둘째 아들이 7살입니다. 둘째는 만날 형한테 얻어맞고 울면서 엄마에게 안기지만, 2분도 안되어 형이랑 딱지치기 한다고 다시 뛰어갑니다. 둘 다 아들이니 좀 시끄러워도 좋은 면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맘 한편에는 하나 더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면 눈앞에 닥친 현실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초음파 사진을 보며 온 가족이 이야기꽃을


"서동아, 효동아! 이게 너희 동생이야. 너희 새끼손가락보다 작지?"
"네, 아빠 신기해요."
"아빠, 얘가 지금 엄마 뱃속에 있는 거예요?"
"응, 지금은 땅콩만한데 좀 지나면 점점 너희들 모습을 닮아갈 거야."
"요즘 엄마 배가 계속 나오는 게 아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내랑 저는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하지만 보는 눈도 있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며 살고 있네요.

"그래, 그랬나 봐"
"근데 왜 아빠는 배가 자꾸 나와요?"

둘째가 저의 배를 쳐다보며 물어봅니다. 저는 애써 외면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글쎄다. 아빠도 아기가 생겼나? 어쨌든 막내 나오면 너희들이 엄마도 많이 도와주고 아기도 잘 봐줘야 돼. 알았지?"
"네, 기저귀만 아빠가 갈아주세요. 그럼 나머지는 우리가 다 할게요."
"근데 엄마! 우리 동생, 남자예요 여자예요?"
"아직은 몰라. 여자든 남자든 너희들이 잘 챙겨줘야 해."
"우린 남자가 좋은데, 그래도 예쁜 여자아이면 우리가 봐 줄게요."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아내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두런두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도 새로운 동생이 생길 거라는 기대감에 들뜬 모양입니다. 두 아들만 키운 지 9년입니다. 우리 집 남녀 성비 구성으로 봐서 여자아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게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셋째의 기쁨도 잠시, 당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에게 셋째가 생긴 것을 알게 된 주위 사람들이 많은 축하를 해줬습니다. 아들 둘만 있는 집에 예쁜 공주님을 선물해주시는 것 아니냐며 때 이른 기대감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떤가요? 남자와 여자, 두 명의 부부가 만나서 둘을 낳으면 기본이니, 셋 이상은 낳아야 한다는 혼자만의 개똥철학을 읊어대던 저입니다. 나중에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할 때면 서로 기대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갈 피붙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몸소 느꼈던 바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한편으론 현실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입니다.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월급입니다. 세입자로 산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내 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매달 받는 월급으로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냥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셋째를 가졌으니 제가 살고 있는 울산 남구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다자녀 혜택에 대해 좀 알아보았습니다. 다자녀 혜택은 시도별로 다르고, 한 도시 내에서도 해당 구별로 천차만별입니다.

울산시 출산장려금 지원 현황 울산시 사이트에서 검색해 본 출산장려금 지원 현황 ⓒ 김승한


우리가 살고 있는 울산 남구는 셋째 이상 자녀를 출산시 1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국가에서 병원 진료비 중 5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고운맘 카드' 외에 다자녀 사랑 카드를 발급받으며, 주유소라든지 공공시설, 공영주차장 등을 이용 시 할인 혜택이 있습니다. 또한 수도요금과 자동차 구입 시 취득세와 등록세 감면 혜택과 한의원 이용 시 할인 등의 지원도 있습니다. 장애아나 쌍둥이를 낳은 경우엔 조금 더 혜택이 돌아갑니다.

10여 년 전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십 가지 지원 제도가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고운맘 카드'와 출산시 지원금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와 닿는 것은 없습니다. 국가로부터 공짜로 돈도 받고 할인도 해준다는데 그것 가지고 좋으니 안 좋으니 따지는 것이 속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낸 세금에서 혜택을 돌려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양한 지원 제도가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더라도 요모조모 살펴보고 최대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다수 국민이 만족하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지도 수년이 흘렀습니다. 심각한 저출산율은 장래 국가의 노동력 부족을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얇은 노동계층으로 몇 배나 되는 노년층을 먹여 살려야 하는 기형적 현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나라에서 아무리 아기를 낳으라고 권유를 해도 그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경제적, 법률적 충분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저출산 및 고령화 극복 정책에 투입했다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을 유도하는 한국식 기업문화, 그리고 이를 묵인케 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의 정책과 실효성은 따로 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요즘 아내와 저는 퇴근 후 여러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언제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지, 아이는 몇 개월 지나서 보육원에 맡길 건지, 회사는 언제부터 출근을 할지 말입니다. 우리 부부는 고향을 떠나 지방에 살고 있는 관계로 주변엔 일가친척이 전무합니다. 하루 이틀만이라도 아이들을 대신 봐주거나 방학 때 아이들에게 점심을 해 줄 그런 분들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우리 가족끼리 해결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끼리 계획을 세운다고 다 될 일은 아닙니다. 아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어떻게 처리를 해줄지도 잘 알아봐야 하고요. 휴가 종료 후 출근 시점도 첫째와 둘째의 등하교 시간과 잘 맞춰야 합니다.

엄마의 모든 행동은 뱃속의 아이 때문이라 생각하는 아들들!

청소하는 첫째 아들 첫째 아들이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막내 동생이 생긴다니 아이들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 김승한

지난 월요일(2일). 퇴근한 아내는 몸이 안 좋아서 아이들에게 밥 대신 돈가스를 해줬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서동이(9살)가 진지하게 물어봅니다.

"엄마, 밥 안 해요?"
"응"
"왜요?"

그러자 효동이(7살)가 한 마디 거듭니다.

"형아, 엄마 아기가 밥하기 싫다잖아!"

엄마가 임신 중인 것을 알고 둘째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서동이가 자기도 안다는 듯이, "그건 나도 알아" 하더니,

"그럼 엄마, 나중에 아기 낳으면 밥해줄 거예요?"
"그래야지. 우리 아들 맛있는 밥해줘야지."
"네."

다시 돈가스 한 조각 집어먹으며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엄마, 그러면 내가 계속 공부방 다니기 싫다고 하면 엄마 스트레스 받아요?"
"당연하지. 서동이가 만날 그러면 엄마가 스트레스 많이 받아"
"네, 알았어요.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요"  .

​아내가 첫째와 둘째를 가졌을 때는 하지 않던 입덧을 합니다. 그리고 굉장히 피곤해합니다.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직장생활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다 보니 그러는 것일까요? 그래서 전 ​지난주 일요일 저는 두 아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일장연설을 했습니다.

"서동아, 효동아. 엄마가 셋째 가진 거 알지? 이제 엄마는 막내를 가지고 있어서 몸이 좀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까 엄마 말씀 잘 듣고, 숙제랑 장난감 정리 같은 거 잘 알아서 해야 해. 안 그러면 엄마가 해야 하는데 심하게 움직이면 너희 막냇동생한테도 안 좋아. 앞으로 우리 잘하자! 알았지?"

그 효과인지 아이들이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지긴 했습니다. 자기들 딴에는 엄마가 힘들지 않게 신경 쓰는 눈치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셋째 임신 #출산장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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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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