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궁 정문 신풍루 현판글씨는 누가 썼을까?

등록 2015.11.13 18:43수정 2015.11.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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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의 묘미 중 하나가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현판의 멋스러움을 감상하고, 그 내력을 알아보는 것이다. 궁궐 건축물, 불교 건축물, 고 건축물에는 그 건물을 대표할 수 있는 이름표와도 같은 현판이 걸려있다. 고려왕의 글씨부터 조선왕의 글씨, 유명한 학자와 유명한 서예가의 현판이 망라해 있어 역사성은 물론이며 예술적 가치가 높은 현판이 많다. 특히 서예사적인 가치가 높은 보물급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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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이 쓴 어필현판 화성행궁 ⓒ 한정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답사하다보면 많은 현판을 만나게 된다. 건물을 상징하는 현판에서 어떤 역사를 읽고,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아야 할 것인가. 우선 누가 쓴 것인지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글씨의 조형성을 보면서 미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글씨의 크기와 서체와 건물과의 조화가 맞는지,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그림으로 봤을 때 아름다운게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고 보면 맞는 것이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의 현판을 보면, 수원화성 건축물에는 4대문인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동장대, 화성장대, 화양루 등 9곳에 현판이 걸려있고, 화성행궁에는 4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동북포루와 영화정에도 현판이 걸려 있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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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 조윤형이 썼다. ⓒ 한정규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정조대왕이 직접 쓴게 화성장대, 화성행궁, 장남헌, 장락당, 득중정, 복내당 이고, 조윤형이 쓴게 신풍루, 낙남헌, 봉수당, 장안문, 팔달문, 방화수류정이고, 서유방이 쓴게 중약문, 유사모가 쓴게 유여택, 정동준이 쓴게 좌익문, 채제공이 쓴게 노래당, 화서문, 조종현이 쓴게 경룡관, 유한지가 쓴게 화홍문, 유언호가 쓴게 창룡문, 조심태가 쓴게 진남루, 영화정 이란 기록이 있다. 이중 7개인 화성장대, 화성행궁, 장남헌, 장락당, 득중정, 낙남헌, 봉수당 현판은 그 원본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

현재 건물에 걸려있는 대부분 현판의 이력은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부서진 상태에서 새로 지은 것이라 건물에 단 현판은, 원본이 있는 경우는 복제품과 집자한 글씨로 재현했고, 원본이 없는 경우는 현대 서예가들이 새롭게 쓴 것이다. 화홍문은 여러 차례 홍수로 무너졌지만 건설당시에 걸렸던 유한지의 예서글씨가 맞고, 장안문, 창룡문, 연무대의 글씨는 그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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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북문인 장안문 ⓒ 한정규


장안문과 창룡문은 완전히 부서진 상태에서 복원하였기 때문에 현판도 새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측했는데, 놀랍게도 장안문 현판글씨는 1970년대 후반 수원화성이 복원될 때 김종필씨가 썼다는 증언이 나왔다.


중앙일보 2015년 8월 14일자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광복 70주년 JP 특별회고' 편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에는 장안문이 있는데 화성을 복원할 당시 이병희 의원이 권유해 장안문(長安門) 현판을 내가 써서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원지역 향토사가들은 당시 수원시에 근무하던 서예가 양근웅씨(작고)의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양씨는 일제강점기 학생신분으로서 전일본 서예대회(조선 일본 만주)에서 큰 상을 탔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글씨는 조윤형이 썼으며, 현재까지도 조윤형의 글씨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조윤형이 쓴 현판은 신풍루, 낙남헌, 봉수당, 방화수류정, 장안문, 팔달문이었는데, 팔달문 현판은 원래대로 붙어있었고 1910년대 팔달문 사진과 비교해봐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낙남헌, 봉수당 현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어 복원 되었지만, 장안문, 방화수류정, 신풍루는 원본이 없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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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에 있는 현판 ⓒ 한정규


화성행궁이 일제에 짓밟히고 허물어지기 전인 1923년 노베르트 베버의 빛바랜 사진 속에서 신풍루 글씨의 이력을 찾을 수 있었다. 흐릿한 흑백사진 속 신풍루 글씨는 분명히 조윤형의 글씨가 맞지만 현재의 글씨는 조윤형의 글씨가 아니다. 현재 걸려있는 신풍루 글씨가 잘 썼다 못 썼다를 따지는 게 아니고 그 정확한 이력이 기록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신풍루, 연무대, 창룡문의 현판글씨를 누가 썼는지 그 이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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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북수문인 화홍문, 유한지가 썼다. ⓒ 한정규


방화수류정에서 동장대로 가다보면 동북포루가 있는데, 이곳에 각건대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영화정에도 당시 화성유수였던 조심태가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현재는 없어진 상태지만 건물에 이름이 있다면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집자를 해도 좋고 수원의 유명 서예가가 새로 써서 달아도 좋을 것이다.

문화재답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관심이 있으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답사하면서 머리를 들어 현판글씨에 관심을 갖다 보면, 현판글씨의 멋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원화성 #화성행궁 #신풍루 #장안문 #화홍무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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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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