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레리 숙소의 아침. 땔감을 이용해 차를 준비하는 모습.
박혜경
뜻밖의 인연이었다. 어제 로지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있는데 익숙한 말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아이구 한국분들이세요? 하하하하하하."코끝이 까맣게 그을리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고 있는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서글서글한 얼굴로 호탕하게 웃었다. 검게 탄 얼굴과 그 얼굴을 덮은 수염이 산에서 보낸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다.
"저녁들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고."2천 미터 산 속에서 만난 한국인이 반가웠는지 아저씨는 자신의 가이드에게 한국에서 챙겨온 라면을 끓여오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 만났는데 같이 먹어야지.""근데 여기서도 음식을 팔아서... 얘기는 해볼게요...""우리 라면 끓이는 대신, 맥주 팔아주면 되잖아. 밥 먹으나 술 먹으나 그 가격이 그 가격이잖아. 가게에서 맥주 가져와. 내 이름 밑에 달고. 여기 자네 단골이니까 그렇게 해도 되지?" 한국인 만큼이나 한국말을 잘하는 가이드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말해보겠다며 일어서서 식당 밖으로 나갔다.
라면 얘기에 침은 꼴깍 넘어가는데 상황이 영 불편하다. 말 그대로 좌불안석. 포터와 가이드는 자신이 데려온 트레커들이 로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대가로 숙식비를 할인 받는다. 숙박비가 매우 싼 로지는 사실상 식사 제공을 통해 이윤을 남긴다. 그런데 우리가 말 그대로 '밥값'을 못하게 된 것이다. 당장 한 끼 때문에 아저씨가 불이익을 받진 않았겠지만, 단골 로지에서 면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면 반 개 정도가 담긴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우리 앞으로 배달됐다. 맥주도 콸콸콸 거품을 내며 유리잔에 담겼다. 따뜻한 라면에 맥주까지... 산행 후 이보다 구미 당기는 메뉴도 없지만, 지금은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자자 어서들 먹자구." 못이기는 척 포크로 라면을 찍어 넘기는데, 면발인지 고무줄인지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한다. 식당 뒤쪽에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우리 포터 아저씨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저씨 밥 먹었어요?"아직 식사 전이라는 아저씨에게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지만, "괜찮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호의가 불편함을 만든 이상한 상황. 우리 셋은 괜히 식당을 서성이다 피자를 주문했다. 배는 더이상 고프지 않았지만, 왠지 그가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못한 게 우리 탓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이윽고 피자 두 판이 테이블 위로 배달됐고, 포터 아저씨에게 함께 먹자고 권했지만, 그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가슴 저 아래가 얹힌 듯 답답했다(아저씨는 이후 다른 포터, 가이드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하이, 헬로, 나마스테' 처음 본 사람들과 주고 받는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