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선배까지 모여 "머리 박아", 음대야 군대야?

[내부고발 인터뷰 ①]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군대식 기합 문화

등록 2015.11.18 11:51수정 2015.11.18 11:51
6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의 '군대식 기합 문화'를 고발한 A씨를 17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속 노트북과 휴대폰은 기자의 것이다. ⓒ 소중한


"5.18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인 전남대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MT라는 명목으로 군대식 기합을 주고, 신체적 고통을 반강제적으로 강요합니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학과 행사 등에서 제외시킨다고 협박합니다."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가 일명 'MT를 주는' 군대식 문화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2일 페이스북 페이지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에 올라온 글을 통해 처음 제기된 이 문제는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며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로 올해 한 음악학과 학생이 기합을 받다가 발목을 다쳐 1주일 가량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몇 차례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전남대 학생처가 진상 조사에 나서는 등 문제는 순차적으로 해결되는 듯했다.

그러던 중 기자는 자신을 전남대 음악학과 학생이자, 이번 사건의 최초 제보자라고 소개한 A씨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A씨는 지난 16일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음악학과도, 예술대학도, 전남대 학생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A씨는 문제 제기 후 열흘이 지나서야 나온(12일) 문현옥 예술대학장의 공고문을 거론하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A씨가 보내온 공고문 사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규 수업 이외의 허가되지 않은 모든 학생 자치 활동 금지, 향후 MT, 오리엔테이션 등 학생활동 금지."

지난 17일 전남대 인근에서 A씨를 만났다. A씨가 전남대 음악학과 학생이 맞다면, 그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만 떠돌던 증언을 피해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전날 "전남대로 찾아가겠다"라는 기자의 제안에 "안 된다. 전남대 밖에서 보자"고 답한 A씨는 이날 오후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나타났다. 전남대 인근 구석진 카페에 자리를 잡은 뒤, A씨는 "기사에 이름, 성별, 세부 전공이 안 나갔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10년 위 선배까지 모여 "머리 박아!" 신고식

A씨는 기자를 만나 학생증과 함께, 페이스북 익명 아이디(*** ***n)로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 측에 보낸 개인 쪽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쪽지를 받아, 쪽지 내용을 익명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 A씨가 내보인 쪽지 내용은 이번 사건의 시발점이 된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 글과 똑같았다. 사진은 휴대폰 기종 때문에 침해될 수 있는 익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자의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에 로그인 해 캡쳐한 것이다. ⓒ 제보자


A씨를 만나 정말 전남대 음악학과 학생이 맞는지,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에 최초로 제보한 사람이 맞는지 물었다. A씨는 학생증과 함께, 페이스북 익명 아이디(******n)로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 측에 보낸 개인 쪽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쪽지를 받아, 쪽지 내용을 익명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A씨가 보여준 쪽지 내용은 이번 사건의 시발점이 된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 글과 똑같았다.

먼저 A씨는 "전남대 음악학과에만 있는 악습"이라며 '코카MT'를 소개했다.

"코카MT라는 게 있어요. 무등산 증심사 올라가는 길에 코카산장이라는 음식점이 있거든요. 제가 듣기론 꽤 오래전부터 그곳에서 대면식을 진행했다고 해요. 신입생 위로 10년 선배까지 이 자리에 참석해요. 음악하는 선배들을 만나는 자리니 그 의도는 좋죠. 문제는 과정에 있어요.

코카MT는 대략 오후 7시쯤 시작해요. 하지만 점심 먹은 직후, 신입생부터 고학년까지 학교에 모두 모여요. 이때 신고식을 준비하죠. 먼저 'MT를 잡히는 자세'를 배워요. 그러니까, 군기 잡힌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모습? 뭐 그런 거죠. 차렷 자세, 경례 자세 등을 고학번 선배들이 알려줘요. 그 다음은 신고 방법을 가르칩니다. 내용은 이래요.

단결, 신고합니다! ○○(○)전공 ○○○는 201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5년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 ○○(○)전공 1학년에 입학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에 신고합니다! 단결!"

페이스북 페이지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에 올라온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군대식 기합 문화의 증거. ⓒ 페이스북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


예비군 6년 차인 기자가 "군대에서 했던 신고와 똑같네요"라고 말하자 A씨는 쓴웃음을 내보였다. A씨는 "이걸 코카MT가 시작(오후 7시)하기 한 시간 전까지 강제로 연습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후 코카산장으로 이동하죠. 영화에 나오는 조폭들 회식 자리 아시죠? 부하들이 허리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는…. 우리도 그렇게 산장에서 대기합니다. 그러면 졸업생들이 한 명씩 들어와요. 이때 "안녕하십니까!"를 큰소리로 외칩니다. 물론 일부 선배들은 '편히 앉아 있어'라고 말하죠. 근데 그 분위기에서 그게 되나요. 그리고 신고식이 시작됩니다.

신입생들은 무작위로 달려 나와 "단결!"을 외치며 신고를 시작합니다. 버벅거리거나, 적극적으로 뛰어나오지 않거나, 목소리가 작거나, 경례·차렷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머리를 땅에 박습니다. 그러면 선배들은 '시X', '×새X'와 같은 욕과 함께 '군기가 빠졌네', '똑바로 정신차려라',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라고 폭언을 내뱉죠.

정신이 없고, 휴대폰도 못 보게 해서 얼마나 기합을 받은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7시 정도에 시작해 대략 1~2시간 정도 기합을 받는 거 같아요. 이후에 밥 먹고 버스 끊기기 직전인 오후 11시쯤 헤어집니다. 종합하면 이날은 신고식 연습을 시작한 점심시간 직후부터 오후 11시까지 시달리는 거죠."

"야, 달려!" 한마디에 1km 달려 '차렷 대기'

페이스북 페이지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에 올라온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군대식 기합 문화의 증거. ⓒ 페이스북 '전남대 대신 전해드려요'


A씨는 "이러한 군대식 기합은 코카MT에서만 받는 게 아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가 올해 기억을 시간 순으로 더듬으며 떠올린 사례를 하나하나 받아 적었다. A씨는 올해 2~10월까지 약 6~7차례 기합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기자가 "기합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A씨는 "그냥 선배들이 생각하기에 군기가 빠졌다 싶으면 집합시킨다"며 말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신입생들은 연습실이나 학과실 청소를 1주일에 한 번씩 해야 하는데 청소를 제대로 안 했다고 머리 박고, 청소 시간에 지각했다고 머리 박고, 이런 식입니다. 최근 축제 때 주막을 운영하면서도 기합이 있었죠. 주막에는 남학생 전원이 강제로 동원됩니다. 엄난 노동력 착취가 이뤄집니다. 이틀 동안 오후 7시 정도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일했어요. 페이(급여)도, 쉬는 시간도 안 줘요. 그런데 기합까지 주죠.

고학년 선배가 '야, 달려!'라고 말하면 1, 2학년 전부가 (주막이 있는) 대운동장에서 예술대 합주실까지 1km 가까운 거리를 전력으로 뛰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차렷 자세로 선배들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도착한 선배들은 '너희들 일을 왜 이딴 식으로 하냐', '선배들이 움직이는데 너희는 왜 멍 때리고 있냐', '선배들이 친구처럼 보이냐'라고 똥폼을 잡은 뒤, 머리를 박으라고 합니다. 엎드려 있는데 행동이 느리다며 발로 밀어 넘어뜨리기도 하죠."

*[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 #군도 #기합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