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 결국 일왕 옹립 친위쿠데타?

[소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비극 'Another Holocaust' 26화

등록 2015.11.19 10:15수정 2015.11.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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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에서 이어집니다)

다케우치 기조실장과 다나카 단장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전체 회의 전 주요 사안에 대해 다케우치가 다나카에게 사전 브리핑을 하는 것이다.


"북조선 움직임은 확인됐습니다. 8월 15일 오전 일찍, 정확히 해뜨는 시각에 인공위성용이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예정입니다. 그들의 '조국해방의 날'을 맞아 우리와 미국에 경고를 한다는 뜻이랍니다. 북한 내 김정은 측근이 알려왔습니다. 그가 독일에 있을 때 포섭했는데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자라서 아주 유용합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순간이 바로 우리 계획의 1단계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그러면, 추후 재일 한국인들의 '소개(疏開) 계획'은 어떻게 이뤄지지?"

"1단계가 'Go Home' 작전입니다. 우선 재일 한국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우므로 각자 국적에 따라 한국이나 북조선으로 돌아가라고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이죠. 2단계는 '준계엄 선포'입니다. 일본 내 재일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통행과 거주를 제한하는 내용입니다. 1단계 작전과 함께 한국 대사의 소환과 주한 일본인 철수가 계획대로 이뤄진 다음 시행할 계획입니다."

"그래도 미국은 물론 외국들의 눈이 있는데, 쉽게 진행될 수 있겠어?"

"지금 미국은 대통령 선거 후유증과 전국에서 벌어지는 흑인 폭동,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하는 격렬한 시위 등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다른 나라 일에 간여할 여유가 없다는 얘기죠. 그리고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미국을 향해 마구 쏘고, 한국 내 반일 정서가 거의 단교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미국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이 같은 조치를 당연히 여길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유럽에서도 올 겨울을 앞두고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 러시아 위협과 우크라이나 합병 문제, 게다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세력의 폭동과 테러로 극동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 코가 석자이니까요.

중국도 비슷합니다. 최근 홍콩과 동북 3성, 그리고 신장위구르 자치구 내에서 민주화 요구는 물론 자치권 확대 및 독립 요구 시위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더욱이 베트남과 국경 분쟁 문제도 또다시 불거지고 있어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우리 일본 정부는 비밀공작의 일환으로 벌써 수년 전부터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정보와 자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미얀마에도 대대적인 원조를 바탕으로 국경선에서 약하게나마 긴장을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의 중국 공격 역량이나 긴장 유발 정도를 우리 힘으로 조절할 수 있을 정도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특히 베트남에는 항공방어시스템은 물론 해상방어력 강화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고, 추후에 미사일방어시스템 제공이라는 미끼를 던져 놓은 만큼 지금이 최적의 시기입니다."

"좋아. 그리고 그 극비 프로젝트는 성과가 좀 있나?"

"네, 가시적으로 전국에서 5000여 명의 재일 한국인 폭력배, 외국인 중 중죄를 저질러 3년 이상 장기형을 언도 받고 복역하는 자, 그리고 오키나와 주민을 포함해서 최근 국가안전보장법령 위반자들이 동북부를 중심으로 전국 5개 보호소에서 감호 처분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후쿠시마현 원전사고 지역을 중심으로 복구 인력으로 보낼 계획입니다."

"그래, 국가안전보장법령에 대한 일부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아네만, 그 상황은 현재 어떤가? 다른 움직임은 없는 것인가?"

"야당과 일부 NGO들의 반발은 예상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국가보안 사항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애국법'이니 뭐니 하면서 여러 가지 법이나 조직을 통해 은밀하게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구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익 단체들을 통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최근 과거 극좌 세력들이 세력을 모으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돼 관련 인물들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 이외에 특이 사항은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야당이 무력화된 현 상황에서 추후에 법 개정을 통해 더욱 강화하고 명문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케이, 일단 방위성에 연락해서 경계를 강화하도록 하게."

미우라 전 총리가 미야자와 회장이 규슈에 갔을 때 들려준 얘기가 맞다. 일본에서 총리는 상징일 뿐이다. 총리라야 명할 수 있는 국방 관련 업무도 다나카 단장이 직접 시킨다. 그만큼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상징과 실세는 따로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 공식적인 내각과 내각을 대표하는 총리가 있지만, 국가의 주요 현안이나 미래에 대한 기획은 자민당 간사장에 불과한 다나카 단장이 이끄는 최고의사결정연구단이 장막 뒤에서 실질적으로 맡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일본이라는 한 국가의 파행도 거기서 유래되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하이라이트입니다. 천황폐하 어심(御心)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일입니다. 우리 대일본의 만세일계(萬世一系)를 다시 정상화한다는 내용입니다. 추후에 이를 뒷받침 하는 헌법 재개정에 대한 로드맵은 우리가 준비해 동시에 발표한다는 계획입니다. 만방에 천황폐하를 다시 우리 대일본의 실질적 지도자로 선포한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결국은 일왕을 실질적으로 옹립하는 보수우익 친위 쿠데타가 이들의 종착역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일본의 실질적 수반인 총리에서 상징적 대표자인 일왕으로 그 형태만 바뀔 뿐 변하지 않는다. 군국주의와 그를 통한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에서 패권을 잡겠다는 일본 보수들의 질긴 꿈인 것이다.

일본 극우 보수 군국주의 쿠데타는 역사가 깊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가 가장 대표적이다. 극우 군국주의는 1932년 우익테러단인 '혈맹단' 사건, 이후 총리를 살해한 '5.15 사건', 그 다음으로 1936년 청년장교들의 일왕 옹립 군사정권 수립 쿠데타가 연달아 일어났다. 당시 이 쿠데타들은 실패로 끝났지만 결과적으로 군국주의화, 그에 따른 군비확충과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무서운 것은 이와 같은 일이 1945년 일본 패망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10년 전쯤이다. 미국에서 기밀해제 된 중앙정보국(CIA)의 자료를 인용, 1952년 일본 극우파에 의한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쿠데타 기도세력은 일본군국주의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극우세력들로 주모자는 타쿠시로 하토리였다.

그 자는 1948년 일급전범으로 체포되어 처형된 도조 히데키의 비서 출신이다. 그는 당시 요시다 시게루 총리를 수반으로 한 일본의 친미 정권을 무너뜨릴 계획을 짰다. 요시다를 암살한 다음 극우 매파인 하토야마 이치로를 총리로 옹립하여 일본의 재무장을 꾀하려했다는 것이다.

이 쿠데타 음모는 유야무야됐으나, 비밀해제 문건에 따르면 타쿠시로를 따르는 세력이 일본 전역에 무려 50만명에 달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재밌는 점은 보수 우익이 처단하려 했던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외손자가 요즘 보수 우익의 대표인물 중 하나인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라는 것이다.

1970년에 들어와서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명망 있는 소설가가 일으킨 사건이다.

1956년 발표한 <금각사>로 소설가로서 일가를 이룬 그는 1960년대 들어와 보수 우익에 빠졌고, 일왕제를 옹호하는 행동가로서 일왕을 보위하자는 뜻으로 '방패의 모임'을 결성했다. 그는 이 모임 회원 몇 명과 함께 도쿄 이치가야에 있는 육상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에 들어가 총감 등을 붙잡아 인질극을 벌였다.

그러던 중 모여든 기자들을 향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헌법 개정, 이를 위한 자위대의 쿠데타 촉구를 내용으로 하는 '이치가야 연설'을 한 뒤 약 5분 후 할복자살했다. 일왕의 복귀, 자위대가 아닌 군대 재창설 등을 요구한 그는 국수주의라는 어리석고, 자기 파괴적인 덫에 빠져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 한 것이었다.

사실 국외자 입장에서는 객관적으로 보면 맹랑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일본 보수 극우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거룩한 사건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부 극우 보수 인물들은 1972년 미시마를 기리는 뜻으로 '잇수이카이(一水會)'를 만들어 최근에도 반미 극우 보수단체로, 유럽 극우정당들과 교류를 하면서 세력을 키우는 등 국제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은 사람 소원을 들어줬다. 일본은 힘 있는 일본군을 갖게 되고, 일왕 중심으로 회귀하는 발걸음을 떼는 등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 뜻이 현실에서 하나씩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천황폐하의 진정한 어심입니다."

"무슨 소리야?"

"궁내청 시종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요."

"뜸들이지 말고 얘기 하게."

"폐하께서 평화만을 자꾸 강조하신다고 합니다."

"좋은 얘기 아닌가?"

"좋은 말씀이신데요.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못마땅해 하신다고 해서요."

"흐음."

다나카는 눈을 감으며, 인상을 찌푸린다.

"어심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심을 헤아려 어떤 내용으로 정해야 할지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 못하고 있습니다."

"알았네. 그 건은 일단 보류시켜. 내가 다른 분들과 상의해 보겠네. 자, 그러면 전체 회의 시간 다 되지 않았나? 가 보세."

아마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시절 진주만을 습격하기 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내각은 물론 군부가 모두 모이는 전체 회의가 있었을 것이다. 1972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어빙 재니스 교수가 <집단사고의 희생자들>이라는 책을 통해 '그룹 싱크(group think)'라는 개념을 정리했다.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는 정의다.

그리고 그런 집단적 사고의 멍청한 사례로 1961년 케네디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저지른 '피그스만(彎) 침공 사건', 1964~1967년 존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쟁에서 발을 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베트남 정책, 1972년 닉슨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들었다.

만일 재니스 교수가 일본 내각과 군부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과정을 알았다면,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련  어리석은 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면, 책 개정판에서 주저하지 않고 '그룹 싱크'에 대한 대표적이고 어리석은 사례로 제시했을 것이다.

도쿄 도심 신주쿠 거리에서 김윤아가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 몇몇과 함께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저희 선생님을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전단이다. K 얼굴 사진과 인상착의. 이유 없이 열흘 넘게 실종됐다는 사실이 그 내용이다. 경찰은 경찰대로 찾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할뿐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김윤아는 K의 실종을 알렸고, 걱정하는 회원들이 하나, 둘 참여하면서 길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아니 도쿄에서 김 서방 찾기다. 들고 나온 전단지를 모두 돌리고 나니 오후가 훌쩍 지났다. 김윤아는 회원들에게 고맙다는 뜻에서 저녁을 함께하자고 권했다. 회원들 뜻에 따라 신오쿠보 거리에 있는 한식집을 찾기로 했다.

신오쿠보 거리 '코리아타운'은 예전만 못하다. 수년간 줄기차게 이어진 반한단체 '재특회(재일동포들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 시위 여파로 문을 닫은 한국인 식당이 부지기수다. 이젠 몇 군데 남지 않은 한국식당 가운데 지금 향하는 불고기집도 올해까지만 장사를 한다는 소식이다.

"이러다가 신오쿠보 거리 한인타운은 물론 다른 데 한국식당도 모두 없어지는 것 아닌지 몰라요."

중학교 사회선생 리에가 걱정한다.

"아닐 거예요. 한국 관광객도 도쿄에 오면 이 거리를 많이 찾아요. 그리고 도쿄에 사는 한국인은 물론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 아직 많으니까요. 입맛도 문화잖아요. 한 번 들으면 좋아서 계속 듣는 음악이나 한 번 보면 다시 보는 영화처럼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김윤아씨가 꼭 K선생님처럼 말하네요."

나이 든 주부 에리코가 웃으며 말한다. 그때 일행은 일단 시위대를 발견한다. 수백 명 위세가 대단하다. 군국주의로 향한 질주처럼 거침없다. 여전히 그들은 '욱일기(旭日旗)'를 앞세웠다. 과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무찌른 것처럼, 승천하는 태양처럼 일본제국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는 뜻을 가진 욱일기는 일본 보수 극우 상징이다.

"한국인을 죽여라! 한국인은 한국으로 돌아가라!"

확성기에서 살의 섞인 금속성이 귀를 찢을 만큼 크게 터져 나온다. 재특회 시위를 막았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반대'나 'No Racism(인종차별 반대)' 세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태평양전쟁 시절 군복에, 가미카제 특공대 복장에, 마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코스프레' 행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구호는 살인을 종용하거나 선동하고 있어 섬뜩하다.

"한국식당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어리석은 시위와 그 시위를 내버려두는 정부예요. 인종차별 금지법이 통과되면 뭐해요? 경찰은 저런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시위를 구경만 할 뿐 막지 않아요. 그러니 요즘 들어서는 오사카에서 한국인 학생들을 학교에 못 가게 막고, 교토에서는 폭력 사건도 일어나고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죠."

리에 선생이 냉소적으로 말한다. 시위가 휩쓸고 간 거리를 지나 예약한 식당에 도착했다. 하지만 밥은 먹지 못했다. 시위 때문에 깨진 간판과 유리문을 정리하느라 영업을 못했다. 식당 주인은 몸소 나와 예약을 못 지켜서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여 사죄했다. 일행은 발길을 돌린다.
#피그스만 사건 #미시마 유키오 #일왕 #재특회 #신오쿠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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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ella Vita! 인생은 아름답다며, 글쓰기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세계일보, 머니투데이, 한경비즈니스, 이코노미조선 등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9년 '아산문학' 공모전에서 '그는 제바닷타였을까'라는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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