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최고는 무엇?" 호색가에게 물었더니...

[서평]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등록 2015.12.04 11:53수정 2015.12.0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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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상상에도 부류가 있고 색깔이 있습니다. 남녀가 만나는 장면은 연분홍빛이고, 이산가족이 만나는 광경은 눈물바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남 중에는 어색한 만남도 있고, 피하고 싶은 만남도 있고, 기대감이 넘치는 상상도 있습니다.

여기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해지고 기대감을 갖게 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띨지가 궁금하고, 만나는 동안 분위기는 어땠을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주고받은 이야기도 궁금하고, 만남에서 얻은 게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노 철학자와 스님과의 만남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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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지은이 헤리슨 J, 펨버턴 / 옮긴이 추미란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11월 300일 / 값 13,000원> ⓒ 불광출판사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지은이 헤리슨 J, 펨버턴, 옮긴이 추미란, 펴낸곳 불광출판사)에서는 서양철학과 불교, 소크라테스와 붓다, 데카르트와 붓다, 니체와 붓다가 서양철학을 전공한 노 철학자와 불교지도자의 만남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붓다, 데카르트와 붓다, 니체와 붓다가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유훈처럼 남긴 철학을 평생 연구한 노(老) 철학자 해리슨 J, 펨버턴 교수와 붓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도의 젊은 스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저자인  해리슨 J, 펨버턴 교수는 샤마르 린포체의 초청으로 인도 칼림퐁에서 카르마 카규파의 영적지도자인 카르마파에게 서양철학을 강의하게 됩니다. 동서의 만남은 시공을 초월해야 가능하고, 불교와 서양철학의 만남은 보편적 가치쯤은 초월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몸에 익숙하지 않으면 불편해 하거나 피하게 되는 게 인간입니다. 저자는 서양에서 서양 가치로 생각하고, 서양 방식으로 교수 생활을 하던 사람입니다. 반면 학생입장에 있는 스님들은 동양(인도)에서 인도 가치로 생각하고 인도 방식으로 생활을 하고 있던 학승들입니다.


이들은 강의를 대하는 방식과 가치조차 달랐습니다. 교수는 좀 더 개방적인 수업, 소크라테스처럼 묻고 답하는 형식의 강의를 하고자 하지만 학승들은 질문하는 것조차 결례로 생각하는 일방 통행식 수업에 익숙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첫 수업에는 상당히 많은 스님들이 참가합니다. 하지만 가치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때문인지 두 번째 수업부터는 일곱 명의 스님들만이 참석한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현실적 장벽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 문제를 해결하고, 눈앞에서 건너야 할 개울물 같은 현안들을 극복하며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황금의 손으로 유명한 마이다스 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은 호색가 중의 호색가인 실레노스를 붙잡고 인간에게 무엇이 최고인지 물었다. 호색가는 약간의 생각 끝에 말했다. "인간에게 최고는 절대로 인간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두 번째로 좋은 것은 있다. 그것은 빨리 죽는 것이다." 음란하게 놀기를 일삼는 호색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치고 기묘하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는 오직 공포, 고통, 죽음에 직면하기 위해 이 생에 던져졌다.' -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85쪽

처음에는 질문조차 어색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며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서로가 생각하는 바를 설명하는 토론형식 수업으로 변모해 갑니다.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불교에서 선으로 규정하고 있는 걸 서양철학이라고 해서 악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책은 소크라테스가 문답식 교육을 강조한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을 의무'라고 까지 강조한 내용과 붓다가 말한 '나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금세공자처럼 철저히 조사한 후에 받아들이라'는 내용으로 끝맺습니다.

'성하님이 꼽은 욕망의 영역에 속하는 주요 방해꾼들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첫째가 음식이고, 둘째가 옷이며, 셋째가 명성이었다. 명성이라고? 그렇다. 욕망에 관해서라면 폭넓게 볼 필요가 있다. 성하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음식은 육체적인 욕망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았다.' -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93쪽

결국 소크라테스를 공부한 노 철학자와 붓다를 공부하고 있는 카르마파와의 만남은 일방적인 가르침도 아니고 일방적인 배움도 아니었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 그 자체가 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자인 헤리슨 J, 펨버턴 교수가 거만한 사람이었다면 책의 내용은 딱딱한 강의노트가 돼 있었을 겁니다. 자기 주장을 드러내 강조하지 않는 유연한 교육 방식, 그런 교육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와 붓다와의 만남은 서양과 불교, 서양철학과 붓다의 가르침을 아우르게 하는 교학상장의 사다리가 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지은이 헤리슨 J, 펨버턴 / 옮긴이 추미란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11월 300일 / 값 13,000원>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 스님들과 함께한 첫 번째 철학 강의

해리슨 J. 펨버턴 지음, 추미란 옮김,
불광출판사, 2015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추미란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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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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