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겉표지
나무그늘
필립 말로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뛰어다닌다. 그에게는 혼자서 살고 있는 집과 역시 혼자서 근무하는 작은 사무실이 전부다. 비서도 없고 동료도 없다.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경찰들도 없다.
작품 속에서 경찰들은 필립 말로우를 삐딱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말로우는 경찰에게 두들겨 맞기도 하고 강제로 구치소에 갇히기도 한다. 그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범죄자들을 상대하고, 돌아서서는 경찰조직에게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일을 반복한다.
<깊은 잠>에서 말로우는 33세의 노총각으로 등장한다. 손님에게 사건을 의뢰받고 그 수고비로 먹고사는 전형적인 사립탐정이다. 하루일당은 25달러고 여기에 각종 경비가 추가된다. 하루 25달러는 결코 많은 비용이 아니다. 자신의 사무실과 집을 유지하고, 담배와 위스키를 구입하다보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 사건이 잘 해결되면 특별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크게 기대할 만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말로우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끊이지 않는다. 말로우는 자신의 원칙을 잃지 않는다. 그 원칙은 바로 '정직한 일만 한다', '의뢰인을 보호한다'라는 것이다. 사건을 위해 거리를 뛰어다니고 때로는 얻어터지면서도 말로우는 이 두 가지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우가 가는 길은 항상 험한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의뢰인이 가져오는 사건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사소해 보이는 일이다. 소식이 끊긴 가족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의뢰인, 도둑맞은 금화 한닢을 되찾으려는 노파, 범죄자와의 만남에 동행을 원하는 손님 등. 말로우를 찾아오는 고객들은 모두 사연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는 사건을 가지고 경찰에게 찾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널려있는 만큼 말로우의 일이 유지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