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김선우 장편소설 발원1 표지.
정도길
김선우 작가의 장편소설 <발원>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원효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갓신에 이마를 대면서까지 치욕과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저 아이를 제 발로 내려오도록 설득하겠다"고 사정한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결국 아이는 '툭' 하며 떨어진다. 바람이 한 줄 불어와 낙엽 한 장을 떨어뜨리듯이.
"황룡사 중노릇 이만큼 하셨으면 알 만하지 않습니까. 가림막이란 것이 딱히 가리려는 데에만 목적이 있겠습니까. 가림막은 배후를 만들어 내기에 좋은 장치이지요. 눈을 가리면 사람들에겐 공포가 생깁니다. 공포는 백성을 유순하게 만들지요."<발원 1권, 250쪽>이 대목에선 놀라움은 극으로 치닫는다. 소녀는 주문에라도 걸린 듯, 높은 곳 불상 위에 불안전하게 미동 없이 앉아 있는데도, 추상같은 명령은 떨어진다. "가림막을 올려라!" 아이의 생명과 안전에는 애초부터 대책을 세워 놓은 것도 아니다.
일꾼들이 동요하자 채찍을 휘두르고 마지못해 가림막이 세워졌다. 백성들의 목소리가 담을 넘었지만,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꼬꾸라지고 말았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한 농민은 의식불명으로 사경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림막과 차벽, 묘한 울림을 낳는다.
자고 일어나면 갈등을 전하는 소식이 TV 화면을 꽉 채운다. 신문을 펼쳐도 마찬가지다. 층간소음으로 이웃사촌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 가족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게 일어난다. 국민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집회도 '불법시위'와 '질서유지'라는 논쟁이 계속되는 지금이다.
눈을 밖으로 돌려 세계 사정을 본다면 어떨까. 최근 발생한 IS 무장단체는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내세우지만, 결코 정당화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불자로서 개인적으로 원효가 걸어왔던 삶과 그의 사상에 짧은 이해를 한다면 과분한 자찬일까. 때맞춰 나온 김선우 작가의 장편소설 <발원>이 눈길을 끌었다. 소설은 역사에 기록된 내용과 어떤 차이가 날까 무척 궁금했다.
'요석 그리고 원효'라는 부제 속에 소설의 내용에 대해 대충 감을 잡은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출가한 스님과 왕실 공주와의 로맨스. 제목만 놓고 본다면 충분한 흥미를 끌고도 남을 터. 그럼에도 첫 장을 넘기면서 로맨스보다는 원효의 삶, 그것도 갈등과 분열을 넘는 '화쟁'의 정신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김선우 작가에게 고마움의 인사라도 전하고 싶다.
문제는 소설 속에 나타나는 각 계층 간의 갈등, 민초들 사이 끼리에서도 벌어지는 갈등,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그 중재자는 누가 나서야 하는가. 우산장수와 짚신장수의 두 아들을 위해 누구를 기도해야 옳은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