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싫은 학교 왜 다녀야 해" 아이가 물었다

[사춘기 아이에게 보내는 그림책 편지⑨]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등록 2015.12.18 17:51수정 2015.12.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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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숲속 조용한 강가에 평화로운 긍정의 메아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검피 아저씨의 뱃머리에서는 유쾌한 질문과 대답이 물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배를 타고 싶은 아이들과 숲속 동물들에게 검피 아저씨는 신기한 조건들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조건들이 저마다 다 달랐다.

배 안에서 아이들은 싸우면 안 된다. 토끼는 껑충거리면 안 된다. 고양이는 토끼를 쫓아다녀선 안 된다.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은데 아이들과 숲속 동물들은 무조건 고개부터 끄덕거렸다. 배를 타는 즐거움에 푹 빠져 신나게 외치는 긍정의 대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싸움을 하지 않기란 아이들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선천적인 토끼의 껑충거림을 억제하려면 한순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무언가를 쫓아다니는 고양이의 습성은 당장 고쳐질 순 없었다. 검피 아저씨의 배가 출렁거리는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잘 나아갈지 불안불안 했다.

"토끼는 껑충거리지 말고, 고양이는 토끼를 쫓아다녀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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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겉표지. ⓒ 우상숙

배를 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검피 아저씨의 제안들은 배 안에선 결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네가 부담스러워하는 일상적인 규칙들이 바로 그러했다. 불편함을 참으면서 왜 배를 타야 하는지 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유롭게 맨몸으로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뛰어노는 시간이 훨씬 좋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를 타고 멀리 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너의 마음속엔  배를 타기 위한 불편함을 흔쾌히 참아낼 의지가 없었다. 억지로 그 조건들을 따라하기가 싫었다. 왜 네에겐 배를 타고 싶은 설레는 마음이 없는 것일까. 배를 타봤자지, 하는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세상에 대해 'NO'라고 외치는 차가운 네 눈빛 속에 어두운 강물만이 술렁거렸다.

엄마는 너에게 말했다. 삶은 작은 나룻배를 저어가는 것이라고. 어떤 준비도 없이 맨살로 부딪혀볼 만큼 세상의 강물은 만만하지 않았다. 물론 그 나이는 세상의 강물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짐작하지 못할 때였다. 빠른 물살에 휩쓸려 버릴 아찔한 순간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조차 못했다.


하기 싫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가기 싫은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 너는 습관적으로 투덜거렸다. 그런 네 불만에 대해 엄마는 왜 배를 타는 즐거움을 모르느냐고 비난만 늘어놓았다. 강물 한 가운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말했다. 강물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어제와는 차원이 다를 텐데. 배를 타는 즐거움에 젖어들 만큼 세상은 평화롭지 않음을 네가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배를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데? 가면 뭐가 달라져? 하면 된다고 떠들썩하게 말하는데, 정말 하면 뭐든지 다 되는 세상이야?"


파도처럼 덮쳐버린 너의 말들이 엄마의 마음속에서 거칠게 부서졌다. 사실 네 말이 별로 틀리진 않았다. 저 불안한 강물 위를 떠다니는 작은 배가 언제 뒤집힐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언제 뒤집힐지 모를 배의 운명에 슬퍼하지 않는 사람

얼마 못가 검피 아저씨의 배가 뒤집혔던 것처럼. 결국엔 모두가 풍덩 강물 속으로 빠져 버렸지만, 이 그림 책 속의 결말은 그리 절망적이지 않았다. 강둑으로 올라와 따사로운 햇살에 온몸을 말리면서 검피 아저씨는 말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자. 차 마실 시간이다."

숲 속의 작은 오솔길을 지나 다다른 검피 아저씨의 집에서 그들은 오붓하게 따뜻한 차를 마셨다. 둥그런 탁자 주위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몸의 한기를 녹여줄 찻잔을 두 손 가득 잡고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환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모두가 돌아갈 시간, 검피 아저씨는 대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 가거라.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배의 운명을 슬퍼하기보다 언제든 배를 탈 내일의 희망에 대해 검피 아저씨는 힘차게 외쳤다. 강물 속에 빠져 콧구멍으로 물만 연신 들이켰지만, 기약할 다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언제 강물 속으로 첨벙 빠져들지 모르지만, 함께 배를 타는 것은 다시 꼭 해보고 싶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즐거운 뱃놀이는 불안함을 수반한다. 불안함은 인생의 항로에 다가오는 '물살'이다. 그 물살을 거슬러 오르지 않으면,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불안한 감정 가까이 머물러 있다면, 지금 당장 노를 저어야할 때이다. 깊은 밤,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이렇게 외칠 것만 같다.

"불편하다고 뱃놀이의 즐거움을 포기할 거야?"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실려 보낼까. 아직 네 나이는 이런 불편함이 당연하지 않겠지. 오히려 불편함을 강요받는 기분에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검피 아저씨처럼 지켜야 할 규칙들을 말할 때,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어른은 찾을 수가 없다. 못 알아먹을 이야기를 하면서 딱딱한 표정까지 덤으로 얹어준다. 뭘 좀 안다고 가르치려드는 나쁜 권위를 벗어던지고 싶은데, 엄마도 그게 잘 안 되네.

그동안 엄마는 "배 안에선 움직이지 마"라고만 소리쳤던 것 같다. 검피 아저씨처럼 저마다 다른 본능을 어떻게 참아야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준 적은 없었다. 사실 엄마도 엄마의 엄마로부터 그런 말밖에 듣지 못했다는 나약한 변명은 잘 통하지 않겠지만.

다가오는 삶의 물살을 맞이해야 할 우리 앞에 놓여진 작은 배 한 척. 그 작은 배를 온전하기 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첨벙거림이 필요할까. 즐거운 뱃놀이를 위해선 어쩌면 강물 속으로 빠지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강물로 곤두박질치지 않고서는 뱃놀이의 행복에 젖어들 수 없다. 홀딱 배가 뒤집혀 생쥐처럼 우스꽝스러워져도 마냥 슬퍼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겐 온몸의 한기를 몰아낼 따뜻한 차 한 잔과 다시 배를 타러 갈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존 버닝햄 그림/글, 이주령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8500원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존 버닝햄 지음, 이주령 옮김,
시공주니어, 1996


#사춘기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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