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잘 보내는 교사, 그의 강연이 씁쓸했던 이유

[주장] 과도한 진학 실적 경쟁, 고등학교를 '입시 학원'으로 만들 셈인가

등록 2015.12.23 08:05수정 2015.12.2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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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연합뉴스

학교생활기록부(아래 생기부) 작성이 끝나야 고등학교의 1년 농사가 마무리된다. 수시모집이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 생기부는 수능 성적보다 더 중요한 대학 입시 전형 자료다. 고3은 물론 1, 2학년 때의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생기부가 당락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는 이젠 더 이상 새삼스럽지도 않다. 기말시험이 끝난 요즘, 학교마다 생기부 작성 요령에 대한 연수가 한창인 것도 그래서다.

뽑는 대학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적성과 잠재력을 파악할 수 있는 건 생기부가 사실상 유일하다. 꽤나 오래된 이야기지만,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뽑은 정시모집의 경우보다 수시모집을 통해 선발된 아이가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와 학교생활 만족도가 훨씬 더 높다는 통계도 있으니, 생기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등학교 현직 교사가 내가 있는 학교에 강사로 초청됐다.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진학 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진학 실적이란, 당해 연도의 서울대와 연고대, 이른바 '인(IN)-서울' 대학에 합격시킨 학생 수를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생 수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더 많은데다 아이들과 학부모들 입에서조차 '지잡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의대나 교대가 아니라면 지방대는 끼지 못한다.

생활기록부도 '전략적으로' 써야 한다?

 생활기록부도 '대학 입시'에 맞춰서 써야 할까?
생활기록부도 '대학 입시'에 맞춰서 써야 할까?sxc

하긴 30년 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다. 대학이 많지 않아 어느 곳이든 진학이 쉽지 않은 때였는데도, 진학 실적으로 내세우려면 요즘 말로 'SKY'는 포함되어야 했다. 강산은 세 번이나 변했는데도 고등학교와 교사에 대한 평가 기준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외려 대학이 커피전문점 수만큼 많다는 지금 'SKY' 등 명문대에 대한 고등학교의 실적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과거에 비해 굳이 나아진 게 있다면, 실적이 수당이라는 이름의 현찰로 거래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땐 서울대에 한 명 진학시키는 데 담임교사가 얼마씩 받는다는 소문이 아이들 입에서조차 공공연히 나돌 만큼 어처구니없는 시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좋은 대학에, 더 많이 보낼 수 있는지가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공통된 교육목표이자, 유일한 존재 이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그의 진학 실적은 화려했다. 스스로도 뿌듯했는지,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띄운 서울대 수시 합격자 수를 보고도 선생님들이 무덤덤한 표정을 짓자 '별로 놀라지 않는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서울대 진학률이 시나브로 저조해지고 있는 지역 고등학교들의 현실에 견줘 단연 최고일 거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대신했다. 이어 그만의 '비법'이 소개됐다.


교사로서 그의 열정과 노력은 본받을 만했다. 몇 년 앞을 내다보고 대학 입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며, 유수 대학의 인재상과 입시 요강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학교의 프로파일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에 맞춰 아이들의 생활이 빠짐없이 생기부에 기록될 수 있도록 깊이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상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학 등을 이용해 서울대 등을 직접 방문하여 학교를 홍보하고, 명문대에 진학한 졸업생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후배들의 진학을 돕도록 '관리'한다고도 했다. 그들의 대학생활이 고등학교의 이미지 제고에 큰 영향을 주고, 결국 후배들의 진학에 보탬이 되는 선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느덧 웬만한 대학에선 그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이름 정도는 대개 알고 있단다.


더욱 놀라운 건 그 교사가 있는 학교에선, 고3 담임교사들이 대학 입시에 최적화되도록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과나 생활지도 등에 관한 업무 나눔이 아니라, 서울대와 연고대, 교대나 의대 등 명문대와 특수목적 대학별로 담당자가 지정돼 있다고 말했다. 대학과 학과마다 입시 전형이 천차만별이니 개별 담임교사가 그걸 모두 숙지하기 어려워 세분화했다는 거다.

만약 자신은 의대 담당인데 학급에 교대를 지망하는 아이가 있다면 교대 담당 담임교사에게 진학 상담을 의뢰하는 식이다. 사실상 담임 업무조차 대학 입시에 종속되는 시스템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딸이 고3이라면, 자신 있게 자기 학교 고3 담임교사들에게 입시 지도를 맡기겠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요컨대, 무릇 고등학교 교사라면 최고의 입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연수가 진행된 곳은 학교였고 강사 또한 현직 교사였지만, 마치 여느 입시 학원의 명문대 대입 설명회에라도 온 듯했다. 교육은 곧 입시 지도이고, 교육의 효과는 곧 진학 실적이라는 걸, 강사와 강의를 듣는 많은 교사들이 공유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그의 노력에 때론 공감도 되고 배울 점 또한 많았음에도 그 자리가 많이 불편했던 이유다.

생기부를 사실대로 상세히 기록하는 건 교사로서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그것이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 대학별 입시 요강에 맞춰 그때그때 달라져야 한다고 여기는 순간, 고등학교 교육과정 전체가 대학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학이 고등학교의 생기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과 고등학교, '갑을 관계'가 되어선 안 돼

 지난해 12월 전남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 걸린 '특정학교 합격 현수막'이다. 현수막에는 "서울대 5명!! 일반고 전남최다 합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해 12월 전남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 걸린 '특정학교 합격 현수막'이다. 현수막에는 "서울대 5명!! 일반고 전남최다 합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중한

고등학교는 배움의 연속 선상일 뿐,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 학원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거나 대학에 안 가는 아이들도 있다. 대학 입시가 고등학교 교육의 전부라면 그들을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겠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더욱이 고등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인 학벌구조를 깨는 것은 최근 국정교과서 추진을 막는 것보다 몇 갑절은 더 중요한 문제다. 교사가 오로지 진학 실적으로 보람을 얻고 자존감을 높이려는 건 되레 학벌구조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처사다.

단언컨대, 대학과 고등학교가 '갑을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난 지금껏 우리 교육의 '수준'의 문제라면 대학이 가장 심각하다고 확신해왔다. 언젠가 미적분도 못 푸는 아이들이 개나 소나 대학에 진학한다며 손가락질해댔던 대학 교수들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는 경쟁할 엄두도 못 내면서 애꿎은 고등학교만 탓하는 그 '찌질함'이란.

우리나라 대학, 특히 'SKY'를 비롯한 명문대일수록 '손 안 대고 코 푸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그 엄청난 등록금을 들고라도 서로 들어오겠다는 아이들이 전국에 줄을 섰으니 말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시키지 않아도 전국 방방곡곡의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 교문마다 '자발적인' 대학 홍보 현수막이 내걸리니 이런 꽃놀이패가 또 있을까.

언젠가 조카가 외국에서 유학 중에 놀란 게 있다며 전해준 바다.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우리나라에 견줘 그리 높지 않다는 거야 삼척동자도 아는 거지만, 그들의 대학 선택 기준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고 했다. 그들은 대학의 '이름'을 보기보다 부러 교수들의 학문적 성취를 먼저 살펴본다는 것이었다. 교수의 질이 대학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는 믿음에서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에서 자기가 지원하는 대학 학과의 교수 이름을 알고 가는 경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입시 전문가입네 하는 교사들조차 입시 요강만 달달 외울 뿐 정작 중요한 그 대학의 교수 충원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우리 대학의 학문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뉴스에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그런 대학에 많이 진학시켰다고 우쭐대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릇 대학은 대학다워야 하고,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다워야 한다. 기업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 '지상 과업'이 된 대학과, 그런 대학에 한 명이라도 더 진학시키기 위해 안달 난 고등학교의 무한 경쟁이 우리 교육의 민낯이다. 선행학습이 판치고, 사교육비 부담에 가계가 휘청거리며 아이들의 지적 성장에 부합하도록 설계된 교육과정마저 무용지물이 돼버린 마당에,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한 '화려한' 생기부가 다 무슨 소용인가.


○ 편집ㅣ박정훈 기자

#학교생활기록부 #대학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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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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