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록부도 '대학 입시'에 맞춰서 써야 할까?
sxc
하긴 30년 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다. 대학이 많지 않아 어느 곳이든 진학이 쉽지 않은 때였는데도, 진학 실적으로 내세우려면 요즘 말로 'SKY'는 포함되어야 했다. 강산은 세 번이나 변했는데도 고등학교와 교사에 대한 평가 기준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외려 대학이 커피전문점 수만큼 많다는 지금 'SKY' 등 명문대에 대한 고등학교의 실적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과거에 비해 굳이 나아진 게 있다면, 실적이 수당이라는 이름의 현찰로 거래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땐 서울대에 한 명 진학시키는 데 담임교사가 얼마씩 받는다는 소문이 아이들 입에서조차 공공연히 나돌 만큼 어처구니없는 시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좋은 대학에, 더 많이 보낼 수 있는지가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공통된 교육목표이자, 유일한 존재 이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그의 진학 실적은 화려했다. 스스로도 뿌듯했는지,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띄운 서울대 수시 합격자 수를 보고도 선생님들이 무덤덤한 표정을 짓자 '별로 놀라지 않는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서울대 진학률이 시나브로 저조해지고 있는 지역 고등학교들의 현실에 견줘 단연 최고일 거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대신했다. 이어 그만의 '비법'이 소개됐다.
교사로서 그의 열정과 노력은 본받을 만했다. 몇 년 앞을 내다보고 대학 입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며, 유수 대학의 인재상과 입시 요강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학교의 프로파일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에 맞춰 아이들의 생활이 빠짐없이 생기부에 기록될 수 있도록 깊이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상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학 등을 이용해 서울대 등을 직접 방문하여 학교를 홍보하고, 명문대에 진학한 졸업생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후배들의 진학을 돕도록 '관리'한다고도 했다. 그들의 대학생활이 고등학교의 이미지 제고에 큰 영향을 주고, 결국 후배들의 진학에 보탬이 되는 선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느덧 웬만한 대학에선 그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이름 정도는 대개 알고 있단다.
더욱 놀라운 건 그 교사가 있는 학교에선, 고3 담임교사들이 대학 입시에 최적화되도록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과나 생활지도 등에 관한 업무 나눔이 아니라, 서울대와 연고대, 교대나 의대 등 명문대와 특수목적 대학별로 담당자가 지정돼 있다고 말했다. 대학과 학과마다 입시 전형이 천차만별이니 개별 담임교사가 그걸 모두 숙지하기 어려워 세분화했다는 거다.
만약 자신은 의대 담당인데 학급에 교대를 지망하는 아이가 있다면 교대 담당 담임교사에게 진학 상담을 의뢰하는 식이다. 사실상 담임 업무조차 대학 입시에 종속되는 시스템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딸이 고3이라면, 자신 있게 자기 학교 고3 담임교사들에게 입시 지도를 맡기겠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요컨대, 무릇 고등학교 교사라면 최고의 입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연수가 진행된 곳은 학교였고 강사 또한 현직 교사였지만, 마치 여느 입시 학원의 명문대 대입 설명회에라도 온 듯했다. 교육은 곧 입시 지도이고, 교육의 효과는 곧 진학 실적이라는 걸, 강사와 강의를 듣는 많은 교사들이 공유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그의 노력에 때론 공감도 되고 배울 점 또한 많았음에도 그 자리가 많이 불편했던 이유다.
생기부를 사실대로 상세히 기록하는 건 교사로서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그것이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 대학별 입시 요강에 맞춰 그때그때 달라져야 한다고 여기는 순간, 고등학교 교육과정 전체가 대학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학이 고등학교의 생기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과 고등학교, '갑을 관계'가 되어선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