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아이들은 맨발로 자란다

[사진과 시로 만나는 세계의 도시 13] 캄보디아 포이펫

등록 2015.12.23 10:03수정 2015.12.2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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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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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국경을 맞댄 캄보디아의 포이펫. 그곳엔 휘황한 카지노의 불빛과는 전혀 다른 삶을 이어기는 이들이 숱하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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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소읍 포이펫의 아이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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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오토바이에 한꺼번에 4명이나 올라타고, 비 내리는 거리를 달려 어디론가 가는 포이펫의 10대 소년들. ⓒ 구창웅 제공


국경의 아이들은 맨발로 자란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취해있었다
공장도 가게도 없는 국경의 오지
엄마는 밥을 구하는 게 전쟁이었다
먹기보다 굶기에 익숙해지며 자란 우리
오빠들은 열다섯이면 방콕으로 떠났다
몇몇은 칼을 휘두르는 건달이 됐다하고
몇몇은 레스토랑에서 먹고 자는 웨이터로

앙코르와트로 가는 길이 뚫리며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휘황한 네온사인의 카지노가 들어서고
중국인 부자들이 언니의 종아리를 힐끔거렸다
열한 살 내 친구들은 껌과 담배를 팔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마셨고
누구도 얼굴 검은 주정뱅이를 반기지 않았다

배수시설이 없는 거리는
쏟아지는 스콜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때마다 물이 넘쳤고
그때마다 여섯 살 동생은 비를 맞으며 춤을 췄다
저 멀리서 열두 시간을 비행기 타고 온 백인들
그들은 웃으며 1유로 동전을 던졌다

나와 동생은 일생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샌들을 사온다던 오빠는
썩어가는 과일냄새 지독한 거리에서 칼에 맞았고
그 소식 들은 날 엄마는 구걸을 나가지 않았다
국경에 사는 우리는 맨발로 자란다.
#포이펫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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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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