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어깨 걸고 최선을 다해 노동개악에 맞서자

등록 2015.12.22 13:50수정 2015.12.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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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동원된 숫자가 저리 많으냐고 놀랄 것 없다. 한 30년 줄기차게 선동하고 조직하다 보면 그만한 숫자는 너끈히 채우고도 남는다. … 문제는 전업(專業) '운동꾼'들이 각 분야에 들어가 단단한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있는 현실이다. … 통진당 해산으로 그들 중 가장 독한 분자들은 걷어냈다. 그러나 … 여전히 야당가(街)와 운동권의 큰손으로 건재하다."
(<조선일보> 2015. 12.15 류근일 칼럼)

12월 19일은 3차 총궐기이자, 통합진보당이 해산된지 1년된 날이었다. 1년 전 그 날은 결코 일부 정치경향의 동지들만이 기억하고 돌아볼 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에 가해진 중대한 공격으로, 저항운동이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오류와 패배, 그에 대한 교훈으로 기억돼야 한다.

하지만 위의 류근일 칼럼은, 저들이 결코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저항운동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저들은 3차까지 이어지는 총궐기를 보면서'죽였다고 생각했는데 1년만에 다시 더 크게 부활한 유령'을 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특히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이석기 의원에 이어서 박근혜 정권과 우파의 증오를 한 몸에 받게 된 사람은 바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다. 아마 박근혜는 12월 10일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한 기자회견을 보면서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날 한상균 위원장은 당장 박근혜를 집어삼킬듯한 눈빛과 결기를 보이며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범죄,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해고 노동자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해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습니다.아이들은 꿈을 포기해야 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파탄 났습니다. 불나방처럼 떠돌다 때로는 생과 사의 결단을 강요받고 실제 생을 포기한 동료가 많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살인 물 대포에 69세 백남기 농민이 병원에 사경을 헤매고 누워 계신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까? … 껍데기뿐이었던 민주주의마저 죽어가고 있는데 왜 아무도, 어떤 언론도 말하지 않습니까?

"민주노총은 노동재앙, 국민대재앙을 불러 올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이천만 노동자의 생존을 걸고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총파업에 나설 것입니다. … 승리할 수 있고 승리 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투쟁입니다."


물론, 민주노총 파업을 앞두고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하게 된 것은 우리 편에게 매우 쓰라린 손실이었다. 이에 대해 가장 먼저 비난받아야 할 것은 폭력침탈 시도와 광기어린 마녀사냥을 벌인 자들이다. 이들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인간으로서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물리적,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

조계종은 '자비와 화쟁'은커녕 위선과 굴복만 보여 줬고, 새민련은 공개적으로 '자진출두'를 압박했다. '진보' 정치인들마저 당장 달려 와 몸으로 막진 않고 먼 산 불구경하듯 했다. 이 속에서 '숨어든 주제에 약속까지 어기고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이는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사람의 가슴은 얼마나 숯덩이가 됐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실 '노동개악을 막겠다는 새민련의 약속을 믿고 자진출두하는 모양이 돼선 안 된다'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상균 위원장 자신이 "제가 손을 놓는 것은 싸우는 장수가 백기를 드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분노와 결기로 가득 한상균 위원장의 기자회견은 '백기투항'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일보>도 "포효하듯 정부를 규탄하고 … 주먹을 쥐어 보이거나 구호를 함께 외치는 등 마치 출정식을 치르는 장군처럼 행동했다"며 혀를 찼다. 따라서 '이제 투쟁 위축과 전선 교란, 노조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가 이어질 것'이라는 일부의 평가는 너무 나아간 것처럼 보였다. 어떤 전술이 더 나았을지는 앞으로 공동 투쟁 속에서 입증, 평가하며 책임질 문제일 것이다.

사실, 한상균 위원장이 말할 기회도 못 얻고 강제로 끌려나오거나, 스스로 나오는 대신 투쟁 호소할 기회를 얻거나 라는 외통수로 몰리게 된 데는 근본적 제약이 있었다. 민주노총 침탈시 수만 명의 조합원이 몰려올 것이라는, 위원장 연행 시 즉각 강력한 파업이 벌어질 것이라는 믿음만 있었다면 조계사로 피해갈 이유도, 자진출두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민주노총 선거 때 '현장은 분노 속에 싸울 준비가 돼 있고, 좌파 지도부 건설과 그 지도부의 총파업 호소가 해법'이라는 주장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지금 민주노총의 난점이 단지 지도부 교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실제로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물론, 한상균 지도부는 아쉬운 점과 한계도 보였지만, 적어도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피하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국, 핵심은 아무리 좌파적·전투적인 지도부라도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줄어든 투쟁의 동력을 '지도부의 소명'만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좌파적·전투적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 힘'이 뒷받침돼지 않는 이상, 좌파적·전투적 지도부는 허수아비일 수 있으며 투쟁 회피적 노조 지도자들의 목소리도 제어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금 모든 전술은, 이런 기층의 힘과 압력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느냐, 방해가 되느냐를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

사실 민주노총의 부족한 동력과 사회적 고립을 볼 때 이 투쟁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1, 2차 총궐기 등을 거치면서 상황은 약간 달라져 있다. 오랜만에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정파적 차이를 넘어서 단결하고, 차근차근 기층에서 운동을 건설하려고 한 노력이 성과를 보였다.

민주노총의 3차 파업은 2차 파업보다 규모와 위력이 커지는 변화를 보였다. 비록 4시간에 그쳤지만 완성차 3사가 7년만에 정치파업에 나서는 변화도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지난 한 달 이 나라는 완전히 멈춰 서지는 않았지만 '한상균'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여전히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가진 난점들은 여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지난해 진보당 해산처럼 패배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패배하느냐도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고 단결을 유지하며 교훈을 배우는 패배이냐,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고 분열로 이어지는 패배이냐는.

결과가 무엇이든, 지금 우리의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는 이런 제약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계속 돌아보면서, 힘을 모으고 투쟁을 건설하며 함께 이런 제약을 벗어나가자.
#한상균 #총궐기 #박근혜 #노동개악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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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행동하길 원하며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실행위원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여기서 봐 주세요. http://anotherworld.kr/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74673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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