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상태인 듯" 이큐900, 한국산 명차의 조건

[오마이뷰] 연말 자동차 시장 뜨거운 감자, 제네시스 EQ900을 타보니

등록 2015.12.23 10:25수정 2015.12.2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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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이큐900. ⓒ 제네시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춘천 간 고속도로. 차의 속도계는 시속 100km를 향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기자의 눈앞에 '구간 단속'이라는 노란색 푯말이 들어왔다. 어차피 이 구간에선 속도를 높일수도 없다.

운전대의 오른쪽 위쪽 버튼을 눌렀다. 웬만한 고급차에 들어있는 어댑티드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다. 일정한 속도를 정해놓으면,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알아서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움직인다. 하지만 기자가 탄 차는 좀 더 달랐다.

기자는 속도를 시속 100km로 맞췄다. 그리고 서서히 오른발을 가속페달에서 뗐다. 이젠 운전대에서 손을 떼는 일만 남았다. '차가 차선 넘어서 가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다. 제네시스는 크루즈 컨트롤 기능에 차선이탈 경고장치까지 한데 묶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이다.

기자의 손과 발이 자유로워졌다. 차는 차선을 따라 시속 100km로 그대로 움직였다. 앞 유리창 너머로 완만한 곡선도로가 들어선다. 자동차는 곡선 차선을 따라 말 그대로 혼자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삐리링~삐리링' 경고음이 들려왔다. 속도와 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15초가 지나면 경고음이 울린다(속도 역시 시속 150km에서도 HDA 기능은 유지된다). 기자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제네시스 이큐900에는 크루즈 컨트롤 기능에 차선이탈 경고장치까지 한데 묶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이다. ⓒ 제네시스


시속 100km 속도로 '나홀로' 움직이는 자동차

현대차가 내놓은 고급 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차인 이큐900(EQ900). 올해 말 국내 자동차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차다. 특히 현대차는 국내 시장에서 새 차를 내놓을 때마다 항상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비판적인 시선도 여전하지만 예전과 사뭇 달라지는 분위기도 보인다. 현대차 스스로 소비자와 적극적인 소통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물론 이 역시 진정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많다)과 함께, 제품으로서 달라진 자동차를 내놓고 있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신형 쏘나타에 이어 아반떼가 그랬다. 그리고 여기 제네시스 이큐900이 있다. 이큐 900은 아예 현대차 이름을 쓰지도 않는다. '제네시스'라는 독자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를 갖는다. 지난달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양웅철 현대차 부회장은 기자에게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정말'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쓰면서 "정말 고객을 위한 차를 만들려고 했다"고 했다.

독일 베엠베(BMW)에서 고성능차 개발을 담당했던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 한국에 온 지 8개월 만에 그는 이큐900을 보고 자못 놀라는 눈치였다. 비어만 부사장은 "고급차를 찾는 소비자들은 탄탄한 주행성능과 편안한 승차감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큐 900은 독일 고급차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특히 그는 "한국처럼 과속방지턱이 많은 나라는 처음"이라며 "평생 동안 만나볼 방지턱을 한국에선 한 달여 만에 경험할 정도"라고 했다. 그의 임무는 한국의 험난한 골목길과 엄청난 방지턱을 넘나들면서 우수한 승차감을 유지하는 것. 그의 평가는 '만족'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어만 부사장의 평가는 기자에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이미 앞선 신형 쏘나타와 아반떼도 방지턱을 넘어설 때 승차감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큐900의 경쟁차라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에스클래스(S-CLASS)나 BMW의 7시리즈에선 보다 다른 차원의 승차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큐 900은 어땠을까. 비어만 부사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고 나선 그 방지턱을 잘 넘어섰을까.

BMW 고성능차 개발자가 한국 과속방지턱에 고개 흔든 이유

답은 '그렇다'였다. 아니, 솔직히 놀라웠다. 벤츠 에스클래스는 별도의 실내 공간에서 따로 플라스틱용 방지턱을 놓고 시승을 했었다. 시속 30km를 유지하면서도 별다른 충격 없이 그대로 넘어섰다.

이큐900은 실제 서울 강남 한복판 아파트 주변 도로의 콘크리트 방지턱을 계속 넘었다. 일부 구간에선 시속 60km 넘게 달리기도 했다. 차 바퀴가 방지턱을 맞닿았을 때의 충격은 차체가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차 안에 있던 기자에게 전달된 충격은 앞선 경험과 전혀 달랐다.

이큐 900에 적용된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GACS) ⓒ 제네시스


무엇이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바로 서스펜션(현가장치)의 발전이다. 서스펜션은 자동차에서 엔진과 변속기에 이어 '좋은 차'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차가 달리거나 회전하거나 멈출 때, 차에게 전달되는 충격을 잘 흡수해서 운전자나 탑승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고속으로 달릴 때, 곡선 구간을 돌아 나갈 때, 과속방지턱을 넘어설 때 등을 따져보면, '왜 고급차인가'를 금세 느낄 수 있다.

이큐 900에 적용된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GACS)은 분명 전보다 한 단계 진일보했다. 고속으로 달릴 때 사륜구동시스템과 GACS가 함께 움직이면서 차를 거의 완벽하게 잡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고속으로 달리더라도 운전자나 탑승객이 그만큼의 속도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양웅철 부회장은 "연구소 주행시험장에서 시속 240km로 달렸는데도 거의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곡선 구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80km 이상의 속도에서도 쏠림현상 없이 도로를 잡아채듯 빠져나갔다. 기대 이상이다.

이뿐 아니다. 이 같은 주행 성능의 바탕에는 향상된 엔진과 변속기술도 있다. 기자가 탄 3.3리터급 터보엔진은 이큐900에 처음으로 적용됐다. 직렬 6기통에 가솔린직분사(GDi) 터보엔진은 370마력에 토크가 52.0kgm 수준이다. 변속기는 8단 자동변속이 들어갔다.

시속 100km로 달리더라도 엔진 회전수는 1500 알피엠(rpm)을 유지하면서 편안한 승차감을 유지하게 해준다. 하지만 터보엔진임을 감안할 때 출발 초기에 치고 나가는 맛은 다소 아쉽다.

"마치 진공상태에 있는 듯..." 한 차원 다른 차 이큐900이 남긴것

이큐 900에 적용된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GACS)은 분명 한 단계 진일보했다. 고속으로 달릴 때 사륜구동시스템과 GACS가 함께 움직이면서 차를 거의 완벽하게 잡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고속으로 달리더라도 운전자나 탑승객이 그만큼의 속도감을 느끼지 못했다. ⓒ 제네시스


차의 정숙성은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벤츠 에스클래스를 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로 위, 주행 시 바람 소리 등 각종 소음은 막을 수 있을 데까지 막은 듯했다. 오죽했으면 황정렬 현대차 전무는 "마치 진공 상태의 느낌이 들 정도"라고 했을까.

실제로 현대차는 이큐900에 쓰인 유리 전체를 차음 유리로 적용했다. 또 차량의 문과 창문, 각종 환기통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구간에 걸쳐 소음, 진동과의 전쟁을 벌인 셈이다.

기자가 탄 차는 3.3리터급 터보-지디아이(GDI) 프레스티지 모델이다. 게다가 뒷좌석은 브이아이피(VIP) 시트까지 적용됐다. 차 값만 1억1100만 원이다. VIP 시트 값이 3000만 원이니 1억1400만 원 짜리다. 국산 고급차 치곤 그리 녹록지 않은 값이다. 하지만 벤츠 S클래스와 BMW 7 시리즈의 비슷한 사양의 차값이 2억 원에 가까운 것을 생각하면, 얼추 경쟁력도 충분하다.

자. 이큐 900 초기 시장 반응은 좋다. 폭발적이라고 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소비자들의 분위기도 전과는 다르다. 자동차 전문가들 평가 역시 그리 나쁘진 않다. 디자인부터, 성능, 편의 장치에 이르기까지... 물론 세세한 부문에서 전혀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큐 900은 현대차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예전과는 다른 성능을 보여줬다. 또 다른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분명 한 차원은 다른 차를 내놓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과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제네시스 브랜드에 대한 확고한 철학, '왜 지금 제네시스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하다. 많이 좁혀지긴 했지만,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등의 독일 명차와의 미세한 '기술 격차'는 여전히 넘어야 할 '턱'이다. 각종 부품의 내구 품질 수준도 좀더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협력업체와의 동반 성장은 필수조건이다.

150여 년의 자동차 기술과 역사를 50년 만에 따라잡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현대차는 계속 도전해왔다. 그리고 세계 5위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어느 자동차 전문가도 현대차의 이 같은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현대차가 이제 '제네시스'를 띄웠다. '인간을 위한 진보'라는 이야기로 '한국산 명차'를 만들겠다는 것.

'명차'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술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지게 마련이다. 여하튼 이큐900(해외에선 G90)이 첫 단추를 끼웠다. 후속모델인 지70(G70) 등도 이어진다고 한다. '명차'가 될지, 그냥 또 하나의 '값비싼 차'가 될지, 이큐900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이큐900은 직렬 6기통에 가솔린직분사(GDi) 터보엔진을 달았다. 370마력에 토크가 52.0kgm 수준이다. 변속기는 8단 자동변속이 들어갔다 ⓒ 제네시스



○ 편집ㅣ홍현진 기자

#제네시스 #EQ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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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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