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존자 두번 죽인 '기사', 꼭 이래야 했나

[단원고 특별전형 논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일상적인 것은 일상적으로 내버려두라

등록 2015.12.26 12:55수정 2015.12.2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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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않은 생생한 국화가 책상마다 놓여 있는 2학년 4반 교실. 학부모님들이 매번 찾아와 꽃을 두고 청소도 하고 갑니다.(2014년 10월 17일) ⓒ 이희훈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기사 하나가 공유됐다. 말머리에 '단독'을 단 <머니투데이>의 기사였다. 어떤 놀라운 폭로를 담고 있기에? 얼마나 위급한 일이기에? 제목을 읽었다. "단원고 학생 4명 특별전형으로 연세대·고려대 합격." 뭐라고? 다시 읽어도 제목은 그대로였다. 이게 왜 단독이야? 아니, 이게 기삿거리가 돼?

기사는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88명 중 4명이 연세대·고려대에 합격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를 둘러싸고 '특혜' 논란이 있지만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교육 당국과 대학 측의 입장을 담았다.

이 기사에 어떤 댓글이 쏟아졌는지는 따로 인용하지 않겠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이틀 뒤 칼럼에서 이 같은 반응들을 전하며 "당부컨대 단원고 학생들을 비난하는 이들을 원망하기보다는, 관련 기사가 모두 사라지길 바라기보다는,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과 효용성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적었다. 논란을 빚은 기사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좋은 자세이지만, 이미 온갖 반응들이 쏟아진 뒤다. 기자가 생존학생들에게 전한 '당부'의 내용이 그리 적절해 보이지도 않지만 그 얘기는 일단 미뤄두자.

누가 기회를 박탈 당하고 역차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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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7월 15일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두 생존자 친구가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다. ⓒ 이희훈


'단원고 특별전형'을 둘러싼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논란은 발생했다.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에 가지는 않으므로 입학전형을 통해 보상하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더 보편적인 보상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부터,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사고를 겪은 모든 고등학생들이 특별전형 기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특혜시비까지. 그 사이사이를 갖가지 논란들이 채웠다.

당연히 특별전형이 정답은 아니다. 정부 정책은 보편적인 측면에서 추진되는 것이 옳다. 이미 지적된 것처럼 모든 고등학생이 대학에 가지는 않는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입 특별전형을 통한 보상이 추진되고 정책화된 것은 결국 대학에 가고 졸업장을 따야만 '사람처럼' 대우해주는 학벌 사회의 산물이다.

더 이상 더 나은 학벌을 가진다고 더 나은 삶을 사는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학벌이라도 획득하지 못하면 최소한의 삶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이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사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대학진학률은 80%를 웃돌고 있다. 이런 현실적 상황 속에서 단원고 특별전형이라는 보상정책이 이뤄졌다.


여러 가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단원고 특별전형은 추진됐다. 올해 9월 본격적인 수시철이 시작되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박탈감', '역차별' 같은 말들이 논란의 핵심을 이뤘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허구인가?

특별전형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이미 충분히 정리돼 있다(관련 글: 딴지일보: '10문 10답으로 풀어보는 단원고 특별전형 논란).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들을 알고 있는가. 특별전형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개설했고, 이와 같은 특별전형은 2011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실시된 바 있고, 단원고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생존학생은 88명뿐이며, 대학에서는 정원의 1% 내외로 '정원 외'로 선발하고, 그마저도 대학 내부 기준에 미달하면 불합격할 수 있다. 이런 사실관계 속에 도대체 누가 기회를 박탈당하고 누가 역차별 받는가.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자잘한 사실관계들을 바로 아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왜 우리는 잠시라도 생존학생들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가? 얼마 전 누군가와 단원고 특별전형을 두고 논쟁한 적 있다. 왜 특별전형이 부당하지 않은지 이야기하기 위해 '생존학생들의 상황'을 말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상적인 사실을 특수하게 다루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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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앞 삭발식하는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4월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 앞에서 당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기억'이라는 주제를 깊게 연구한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이라는 학자는 "트라우마는 몸에 직접 각인되어 그 경험을 언어적으로 작업하여 해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트라우마의 경험은 서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생존학생들의 상황은 증언될 수 없고 재현할 수 없기에 끔찍한 트라우마다. 다만 가만히 상상해보라. 2014년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생존학생들이 마주해야 했을 광경들을. 참사 당일의 기억만도 견디기 어려운데, 사건 이후에 벌어진 그 모든 것들을 견뎌야 했을 이들의 고통을.

특별전형의 대가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트라우마와 고통이라면, 당신은 받겠는가? 올해 4월, 1주기를 앞두고 정부가 배·보상안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들이댔을 때 고 임세희양의 아빠 임종호씨는 이렇게 말했다.

"보상금이 부러우십니까, 부러우시면 유가족 되시면 됩니다. 바라건대 저희처럼 또 다른 유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들, 먼저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처럼 되는 사람들이 더 없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저희는 앞으로 계속해서 가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단원고 특별전형'이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존학생들의 상황에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특별전형에 대해 가장 올바르게 말하는 방법은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맨 처음 언급한 기사를 쓴 기자는 '좋은 의도로' 썼다고 말하지만, 기사화한다는 자체가 특별전형을 아주 특수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수하게 다뤄짐으로써 트라우마는 되살아나고 상처는 벌어진다. 그저 조금 특별한 사연을 가진 고등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문제일 뿐이다. 이게 기삿거린가? '단독'을 달고 나올 만한 이야기인가? 그들이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과 효용성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일상적인 것은 일상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일상적인 것이 된다. SNS 상에서는 후배의 출신고교와 출신지역을 묻지 말자는 제안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려 깊은 제안이지만 불필요한 제안이다. 당신의 후배 또는 동기가 단원고 출신이며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당신이 취해야 할 특별한 반응은 아무것도 없다. 그건 그저 아주 일상적인 사실에 불과하니까.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런가 보다.'
#단원고 특별전형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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