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흥숙 편'
MBC
사건 당시 묻혔던 물음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이를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경찰에게는, 언론에게는, 나아가 박정희 정권에게는 '느낌표'만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대중에게 이 사건을 납득시켜야 했다. 자칫 당시에 숱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강제 철거에 대한 불만을 폭발하게 만드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물음표는 도대체 어떻게 청년 한 명이 다섯 명을 상대해 그 중 네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냐는 것이었다. 우선 피해자들을 위협한 쇠파이프 사제총 이야기가 좀 더 근사해야 됐다. "산중에 외롭게 살고 있기 때문에 호신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연이 더해졌다. 원래부터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 충분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동생 박정자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생각은 180도 달라진다.
"산 속이니까, 멧돼지나 그런 것들 많았었고, 그때만 해도 늑대도 있었거든요. 실제로도 봤어요. 그 때는 늑대인 줄 몰랐는데, 꼬리가 굉장히 길고 털이 뿌옇고 치렁치렁하더라고요. 눈은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희멀떡한' 색깔? 갈색털이었는데, 내가 개인 줄 알고 다가갔더니 도망가더라고요. 그때는 그랬어요. 짐승들이 집 근처까지 막 내려오고 그랬으니까, 짐승들 쫓으려고 만든 거죠. 그렇지 않았으면, 오빠가 뭐 한다고 총을 만들었겠어요. 그냥 소리만 나는 딱총이었어요. 화약 넣어서 '빵' 소리만 나는."물론 그 소리에, 처음에는 철거반원들도 놀랐을 것이다. 사건 당시 박흥숙은 한 번의 '빵' 소리를 냈다. 놀란 철거반원들이 포박에 응하게 된 이유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딱총의 조악함을 곧 눈치채고 대항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철거반원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박흥숙은 그들을 데리고 광주 시장에게 항의하러 가려고 했다. 진짜 그렇게 되면, 박봉의 일용직인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에게도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이었다.
아마도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박흥숙의 평소 사진을 보다가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미드' <타잔>이 떠올랐을 것이다. 근육질의 몸매로 산 속을 누비는 타잔, 박흥숙은 사자를 제압할 정도로 강력한 '힘'의 소유자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에 박흥숙은 키가 작았다. 165cm의 작은 체구로 철거반원들을 혼자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소룡'이 더해져야 했다.
그래서 박흥숙은 평소 무예를 익히고 칼 던지기 등 십팔기에 능숙하며, 태권도, 유도, 기합술 등을 두루 섭렵한 무예의 고수로 소개됐다. "평소에 뒤틀린 영웅심리가 잠재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설도 빼놓지 않았다. '무등산 타잔'이라는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등산 타잔, 야만의 시대가 왜곡한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