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희재야, '나쁜 나라'란 이런 거야

영화 <나쁜 나라>를 보고 쓴 편지

등록 2015.12.29 10:29수정 2015.12.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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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희재야. 우리가 한솥밥 먹은 지도 이제 반년쯤 되는 구나. 막내 직원으로 들어와서 윗사람들 눈치 보랴, 일 배우랴, 그동안 힘들었지? 소주 몇 잔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네가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매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송년회를 바꿔보고자 준비했던 '문화송년회'는 어땠니? 2박 3일의 시간동안 영화 두 편과 연극 두 편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왔다갔다 하느라 몸은 좀 고됐지만, 우리 모두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줬지. 혹시 관람했던 영화와 연극 중에서 지난 18일에 본 <나쁜 나라>라는 영화 기억나니?

구미 근로자문화센터 시청각실에서 상영된 <나쁜 나라>의 포스터 ⓒ 이정혁


<나쁜 나라>. 조금은 낯설고 부정적인 제목의 영화에 막둥이 네가 살짝 놀란 눈치더구나. 그런 마음 이해한다. 너의 선배들 모두 그랬으니까. 그중에는 왜 그런 영화를 봐야 하는지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천안함 프로젝트>나 <다이빙벨>같은 영화를 보고나서, 가려졌던 진실을 알고 난 후론 다들 눈빛이 변하더구나.

그렇다고 직원들을 억지로 영화관에 끌고 갈 만큼 내가 강압적인 사람은 아니란다. 자율을 사랑하고, 개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편이지. 그래서, 이번에도 여러 편의 영화와 연극을 선정하며 <나쁜 나라>를 자연스럽게 끼워넣었던 거야. 그 어떤 거부감없이 함께 보고, 함께 느껴줘서 모두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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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 한장면 ⓒ 시네마달


이제 영화 <나쁜 나라>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 영화 시작 전, "왜 제목이 <나쁜 나라>예요?"라고 네가 물었지. 나의 대답은 "영화를 보면 안다"였다. 그래, 이제 좀 알 것 같니? 한 달에 두 권씩 의무적으로 책을 읽히고, 개봉관이 없어 볼 수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꼬박꼬박 챙겨서 보여주는 이상한 원장의 마음을.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진 않았다.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을 훔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어서, 내용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거든. 두 아이를 둔 아빠로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너무도 쉽게 감정이입이 되는 터에 잠시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 좀 안정이 돼 그때 너의 질문에 너무도 성의 없이 대답했던 내 자신을 떠올리며 이 편지를 쓴다.


왜 <나쁜 나라>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이제는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영화 속 내용을 토대로 하는 것이니 다른 친구들에게 영화를 추천하고 설명할 때는 스포일러에 대한 주의를 해야겠지? 우리나라를 '나쁜 나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 나라가 왜 '나쁜 나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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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주기였던 지난 4월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첫째, 소통이 없는 나라. 도대체 듣지도 않고 들을 생각도 안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회와 청와대와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을 하고,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해도 정부와 국회는 귀를 닫고 자기들이 하고픈 말만 해대지.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조차 유가족들의 절규에 콧방귀도 안 뀌는 나라. 애당초 들을 마음도 없었지만 여론 무마용으로 유가족들을 회의에 참석시키고 바로 뒤통수 치는 그런 나라는 나쁜 나라가 아닐까?

둘째, 책임이 없는 나라. 300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났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나서는 이가 없어. 아니, 책임을 물어도 떠넘기기 급급하거나 쉬쉬하며 넘어가려고만 하지. 대형 선박이 가라앉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묘연한 나라, 해경만 해체 시키면 다 해결 될 거라 믿는 속편한 나라, 선장만 사형 시키면 모든 책임이 끝나는 거라 생각하는 정부와 관료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다.

셋째, 언론이 입 닫은 나라. 침몰 당시 현장에서 진실을 내보낸 공중파 방송은 없었어. 그저 정부가 내려준 '찌라시'를 앵무새처럼 되읽기 급급했지. 2년 가까이 지나 열린 세월호 청문회도 방송하지 않으면서 TV수신료는 꼬박꼬박 챙겨가는 나라, 유가족들의 지옥과도 같은 삶을 단 한 줄의 뉴스로도 내보내지 않는 이상한 나라, 오죽하면 유가족들이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표현하겠니. 이것이 바로 눈물겹게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국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기억을 강탈당하는 나라. 유가족들의 바람이 있다면, 진상 규명이 이뤄질 때까지만이라도 부디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란다. 국가가 버리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마저 등 돌린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실을 밝혀내는 유일한 힘은 국민들의 기억과 관심이라는 것이지.

나쁜 나라, 누구 탓일까

그런데 이 나라는 300여 명이 수장된 대형 참사마저도 몇 가지 사건·사고로 손쉽게 덮어버리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 생각하며, 각종 사건·사고들로 국민의 기억을 빼앗으려 하지. 국민들을 기억력이 짧은 바보인 줄 알고 우롱하는 그런 나라가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곳이란다.

조목조목 따지다 보면, 몇날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랄 일이야. 아직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너이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하련다.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이에 대한 평가는 이제 너의 몫이다. 이번에 <나쁜 나라>를 보고 무언가 와 닿는 것이 있었다면, 물음에 대한 나머지 답은 스스로 찾아보길 바란다.

희재야, 그동안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지? 아마 20년 가까운 나이 차에서 오는 세대 간격을 넘어서기 쉽지 않아서였겠지. 이제 조금 더 서로 마음을 열어볼까? 네가 앞으로 직장과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이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어. 늘 의문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

음, 이 정도면 영화 제목이 왜 '나쁜 나라'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답변은 된 것 같아. 끝으로 내가 질문 하나 할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렴.

우리나라가 이렇게 나쁜 나라가 된 건 과연 누구의 탓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너의 성장이 함께 이뤄지길.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며 커나가는 자랑스러운 직원이 되길 바란다. 그럼, 이만.
                                
- 아직은 세상에 진실을 바라는 이가 더 많다고 믿는 원장으로부터.

직원들과 함께 한 <나쁜 나라> 지난 18일, 근무를 일찍 마치고, 시간보다 빨리 구미 근로자문화센터 상영관을 찾았다. 150석 규모의 시청각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꽉 채워졌다. ⓒ 이정혁


#나쁜 나라 #세월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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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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