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의류 재사용 체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등록 2016.01.04 09:21수정 2016.01.0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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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은 재활용보다 우선적인 가치를 가진다. 폐기물관리 원칙에서 폐기물을 가장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재사용을 우선 활성화해야 한다고 본다. 이 원칙은 전 세계를 막론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재사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원칙일 뿐 실제로 재사용을 위한 투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중고품으로 인해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신규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위축시켜 오히려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주장까지 한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청소관리 예산에서도 재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예산배정은 거의 없다. 열악한 지자체의 청소재정으로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처리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중고품 판매를 위한 공공재활용센터 설치 및 운영은 법에서 정한 지자체의 의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키고 있는 지자체는 드물다.

순환경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재사용 산업과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재사용 산업은 전 과정이 인력에 의존해야 한다. 재사용 가능한 제품을 선별하고, 수리·수선을 하고, 제품의 성능에 맞는 가격을 매기는 것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다. 따라서 재사용 산업은 일자리, 특히 저숙련 사회적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이다. 업사이클링 개념과 결부되면 열정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재사용 산업은 민간시장에 스스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고가의 제품의 경우에는 중고품 시장이 자율적으로 형성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은 중고품 판매만으로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율적인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따라서 재사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공투자를 통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공공투자를 통해서 재사용 산업과 재사용 문화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촘촘한 재사용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고 시장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나오는 중고물품이 체계적으로 수집되어, 중고물품의 품질별로 분류된 후 가격이 매겨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쓰레기로 버리기보다는 재사용가게에 쉽게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많은 소비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고물품의 공급인프라이다. 그리고 이런 중고물품을 많이 판매할 수 있는 매장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판매인프라이다.

이러한 인프라의 토대위에 중고물품을 재사용 가게에 기부하고 중고물품을 재사용가게에서 구매하는 기부 및 소비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기부 및 소비문화 형성으로 인프라 구축이 확대되고, 인프라 확대를 통해 기부 및 소비문화가 활성화되는 선순환체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가게나 굿윌, 구세군과 같이 일정 규모 이상인 재사용 가게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재사용 가게는 자원봉사자의 헌신에 의지하여 영세한 매장에서 물품의 기부와 분류, 판매를 전담하는 체계이다. 아름다운 가게 등이 국내 재사용 산업과 문화를 견인해 온 역할이 있지만 자체적인 힘만으로는 더 이상의 확대는 힘들어 보인다. 마을공동체와 연계한 지역의 재사용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큰 대형매장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마을 단위에서 마을공동체와 연계한 동네 재사용 가게도 많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서울시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전역의 재사용 가게는 84개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가게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 1~2 사람이 10~20평 사이의 작은 매장을 운영하는 수준이다. 수도권 전역에서 아름다운 가게에 중고물품을 기부하는 가구 수는 연간 15만 가구에 미치지 못한다. (사)자원순환사회연대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재사용 가게에 중고의류를 기부하는 비율은 4.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중고물품을 재사용 가게에 기부하는 가구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5%를 넘지 않을 것이다. 95%의 가정은 사용하지 않는 물품은 그냥 쓰레기로 배출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의류의 경우 주거지 곳곳에 설치된 의류폐기물 수거함으로 쉽게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재사용 가게에 기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고, 또 재사용 가게에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나오는 중고의류는 이렇게 의류폐기물로 버려져 재사용가능한 것들은 대부분 제3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것도 재사용이 아니냐고 위안을 삼을 수 있지만 국내에서 재사용이 가능한 중고의류를 무조건 제3세계로 밀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중고물품의 선순환체계를 위해서는 공공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우선 중고물품을 전문적으로 수거해서 선별하는 지원센터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에게 중고물품을 기부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가정을 방문해서 기부물품을 수거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기부한 물품을 선별센터에서 전문적으로 선별 등의 과정을 거쳐 동네 재사용 가게에 양질의 중고물품을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 동네 재사용 가게는 중고물품의 판매매장을 운영하면서 마을 공동체와 연계하여 동네 나눔장터 운영 등 생활 속 재사용문화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동네 재사용 가게의 설치 및 운영에 대해서도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 재사용 활성화를 위한 공공인프라 투자를 하기 위해서 관련 조례의 제정이 필요하며, 투자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종량제 봉투 가격 인상 등 청소재정을 건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게 쓰레기 처리비용을 적절하게 징수하고, 재사용 등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지원해야 한다. 쓰레기 처리비용의 30%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만을 종량제 봉투판매가격으로 조달하면서 지자체 청소재정의 대부분을 쓰레기 처리에 투입하고 정작 필요한 재사용에 대한 투자여력을 상실하고 있다. 왜곡된 지자체 청소재정도 바로잡아야 한다.

#재사용 #재사용 가게 #중고의류 #의류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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