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가르쳐 준 도구, 하루쯤 청소기를 쉬게 하자

[로또 교실 ③] '구타 도구' 된 빗자루, 대접 받을 자격이 있다

등록 2016.01.04 14:52수정 2020.01.0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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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새해 연휴가 끝났다. 학교로부터 잠시 떨어져 쉬는 동안에 '이천 고교생 빗자루 폭행' 사건을 접했다. 영상에서 선생님을 빗자루로 때리고, '십 원짜리 욕'을 하며 조롱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



페이스북에 등록된 교육계 친구들은 영상을 공유하며 분노했다. "이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고, 국회에서 교원지위향상법이 통과되어 다행이라 하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글쎄. 갓난쟁이를 길거리에 버리고, 남편이 아내를 토막 내는 세상이다. 나는 교권침해보다도 빗자루가 안쓰러웠다. 빗자루는 그럴 대접을 받을 도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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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 쥔 손은 아름답다. ⓒ 이준수

 






나는 연필만큼이나 빗자루를 자주 잡는다. 학교에서는 교사로, 집에서는 아빠로 살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청소한다. 단정하고 깨끗한 사람에게 호감이 가듯 정돈된 교실과 집은 머무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 빗자루질은 단순하지만 위대한 일이다. 빗자루는 제 몸을 사용하는 자에게 세 가지 가르침을 준다.



겸손 가르쳐 준 빗자루, 쓸어야 할 것은 낮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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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을 위하여 쓰는 사람도 몸을 작게 한다. ⓒ 이준수

 





첫째, 몸을 아래로 낮출 줄 아는 겸손이다. 쓸어야 할 것들은 낮은 곳에 있다. 낙엽과 먼지와 작은 쓰레기들. 더는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진 줄 알았던 존재들을 사람들이 허리 굽혀 대한다. 책상 뒤, 피아노 밑을 청소하려면 무릎까지 꿇어야 한다. 행여 놓치는 것들이 있을까 봐 손끝에 신경을 집중하여 세심하게 비질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갈색으로 변해버린 낙엽도 한때는 싱그럽게 빛나던 새순이었다. 바닥에 뒹굴 거리는 초콜릿 포장지는 뜯기기 전까지 진열대에서 손님의 뜨거운 눈길을 받았다. 우리도 인생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사라져야 한다.



지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인간의 흔적들을 쓸고 있는가? 가끔 우쭐해지는 날이면 바닥을 쓸어보자. 장기적으로 보면 쓰레받기에 담긴 지우개 가루나 쓸고 있는 나 자신이나 같은 운명공동체이다. 십 분쯤 지나면 들떴던 마음이 자연스레 진정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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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해도 되었는데 주변 사람들 어루만지며 살아야겠다. ⓒ pixabay

 





둘째, 따뜻하게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사랑이다. 2016년은 원숭이해다.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관찰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수시로 동료들 털을 손질한다. 어미가 새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우두머리 원숭이의 등을 긁어주는 추종자들의 손이 바쁘다.



애정표현과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조금 더 복잡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시한다. 스킨십은 직접적인 감정표현이다.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도 있는데 청소도 그중 하나이다.



학교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근무하는데 누가 학생들을 잘 챙기시는 분인지 알고 싶다면 교실에 들어가 보면 된다. 시간 차이를 두고 불쑥 방문했는데 항상 깔끔하게 유지되는 교실을 발견했다면 그 반 담임은 대부분 좋은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청소는 완벽하지 않다. 반짝이는 교실은 선생님이 다시 쓸고 닦으며 제자들을 사랑했다는 증거이다. 청소는 인간의 방식으로 하는 '털고르기'다.



하루쯤은 청소기를 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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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에게 가끔씩 휴가를 주자. ⓒ 이준수

 





셋째,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능동성이다.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10명 이상 외우는 사람이 있는가? 스마트폰이 친절하게 기억해주고 있겠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감각은 무뎌진다. 손으로, 발로 해야 하는 게 싫어서 기계를 발명한 사람들이 이제는 돈을 지불하고 손맛을 찾는다.



굳이 커피를 수동으로 갈아 내려 마시고, 잡고 풀어줄 물고기를 낚싯대로 잡는다. 몸의 감각이 살아나면 인생은 맛있어진다. 괜히 고가의 요리교실과 체험형 관광 상품에 사람들이 몰리는 게 아니다. 하루쯤은 청소기를 쉬게 하고 빗자루를 쥐자. 팔뚝과 팔목의 근육을 사용하여 구석구석 케케묵은 장소들을 털어내자. 땀이 살짝 날만큼 비질하다 보면 온몸의 짜릿한 기운이 살아날 것이다.



빗자루를 사람 때리는 도구로 사용한 이천 고교생이 안타깝다. 그는 손에 훌륭한 스승을 모셔두고 온 천하에 욕보일 짓을 하였다. 그래도 속죄할 기회는 있다. 빗자루 선생은 마음이 넓으니 겸허히 비질하며 잘못을 뉘우치기 바란다.
 
#빗자루 폭행 #이천 고교생 #교권침해 #학교폭력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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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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