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이 자동차 안, 왜 그런가 살펴봤더니

[광운대 청소노동자 체험기⑩] 새해 첫 운영위원회가 열리다

등록 2016.01.08 15:51수정 2016.01.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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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단체협약에 따라 본 협약체결 후 최대한 조속히 임시로 사용할 조합 사무공간과 이에 필요한 사무집기 및 용품을 제공한다. - 2015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학교분회 사업장 보충협약 합의서 제3조 제1항


광운대 참빛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갔다. 세미나실의 문을 여니, 불이 밝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의자를 정리한다. 광운대 학생은 아니었다.

새해 첫 회의가 개회되다

오늘(1월 5일)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서경지부 광운대분회)의 운영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다. 세미나실에 조금 일찍 도착한 변선영 선배는 회의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나는 선영 선배 옆으로 가서 일을 거들었다.

광운대분회 임원진들은 올해부터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다. 최수연 분회장은 지난 11월에 열린 선거에서 조합원들의 열렬한 지지로 연임됐다. 박순옥 선배도 부분회장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사무장 자리는 새로운 얼굴로 채워졌다. 바로 선영 선배다.

"사무장 임기를 시작한 지 5일째 됐네요. 지난 12월에는 신입 간부교육도 받았는데, 아직 배울 게 많아요. 빠른 시일 안으로 사무장 직무에 적응하는 것이 현재 저의 최우선 과제예요. 전임 사무장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계속 물어봐야겠어요. 아직 부족하고 서툰 부분이 많지만, 최수연 분회장님을 도와서 열심히 광운대분회를 이끌어나가겠습니다."


선영 선배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질 듯하다. 마침 임효선 선배가 문을 열고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효선 선배는 불과 며칠 전까지 사무장 직책을 수행했다. 지난 2년 동안 분회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온 것이다. 옆에서 봐왔지만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이제는 선영 선배에게 분회 살림살이를 모두 맡기고 조합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2015년 하반기 회계감사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번 감사까지는 자신이 마무리한단다. 아직 무거운 짐이 효선 선배의 어깨에 들려 있는 것 같다.


"시원섭섭하네요. 그런데 아직 마무리할 부분이 있어요. 얼마 남지 않은 회계감사를 끝내야 하거든요. 사무장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는 하반기 회계감사 이후에 진행될 것 같아요. 물론 총무 업무 전반에 대한 설명은 모두 마쳤고요. 기술적인 부분만 남았어요. 1월 말 안에는 모두 끝날 거예요. 이제는 일반 조합원 신분으로 돌아가네요. 그래도 노조 활동에는 적극 참여할 겁니다."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차게 식어 있던 회의장은 금방 따뜻하게 데워졌다. 곧이어 운영위원들이 하나둘 세미나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선배들의 얼굴에는 새벽청소의 피곤이 짙게 깔려 있다. 피곤을 잊으려는 듯 믹스커피를 마시는 선배들도 눈에 띈다. 짐작건대, 선배들은 새벽부터 정신없이 청소를 했을 것이다. 제시간에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추운 날씨인데도 얼굴에 구슬땀이 흐르는 선배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 선배들은 허리 펴는 것조차 힘든 새벽이지 않았을까.

청소노동자들의 회의에 학생이 불쑥 들어온 이유는 뭘까

 지난 1월 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의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지난 1월 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광운대분회의 운영위원회가 열렸다.김동수

이제 광운대분회 운영위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최수연 분회장의 사회로 회의가 시작됐다. 오늘은 광운대분회의 새해 첫 회의다.

"2016년도 새날이 밝았지요. 분회가 만들어지고 벌써 세 번째 새해를 맞이하네요. 운영위원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올해도 서로 소통하고, 함께 공감하고, 똘똘 뭉쳐서 발전하는 광운대분회를 만들어주세요. 2016년 광운대분회 첫 운영위원회를 박수로 시작하겠습니다."

힘찬 박수소리로 운영위원회가 개회됐다. 새해 첫 회의인 만큼, 최다혜 서경지부 조직차장도 함께했다. 운영위원들에게 새해 인사와 함께 발언을 이어갔다. 언제 체결될 지 모를 집단교섭에 대한 이야기였다.

"1월부터 집단교섭이 재개됩니다. 이제는 매주 교섭을 진행하고요. 내일 4차 집단교섭은 광운대에서 이뤄집니다. 내일은 특히나 중요한 교섭일입니다. 보충협약 교섭안을 회사에 전달하는 날이기 때문이거든요. 얼마 전까지 위원님들께서 수렴해주신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두 정리해서 회사 측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2시 반부터 교섭이 진행되니, 시간이 가능하신 간부님들은 참관을 부탁드립니다."

뒤이어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런데 회의 중에 갑자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에 운영위원들의 시선은 모두 문 쪽으로 고정됐다. 한 남학생이 수줍은 듯 조심스레 들어왔다.

"혹시 여기 사용하시려고 들어오신 건가요?"

최 분회장의 물음이었다. 나도 학생이 세미나실을 사용하려는 줄 알고 비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미나실 선반 위에 올려둔 물건을 다시 가져가려고 잠시 들른 것이었다. "죄송하다"라는 인사를 남긴 채 밖으로 떠나갔다. 운영위원회는 그사이를 틈타 잠깐 휴회됐다.

그렇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딱히 회의할 공간이 없다. 회의는 강의실이나 세미나실에서 주로 이뤄진다. 지금 운영위원들이 앉아 있는 공간도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빌린 것이다. '떠돌이 신세'다. 노조가 사용할 만한 공간이 현재까지는 학교 안에 없기 때문이다. 광운대분회가 출범한 지 2년이 넘었지만, 노조 사무실은 여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 광운대에서 일하지만, 철저히 외부인이나 다름없다. 간접 고용된 노동자의 한계일까.

"회의 하나 하기도 힘들어요. 이번처럼 학생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항상 눈치를 봐야 해요. 편하게 회의를 해 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회의 도중에 아예 자리를 비워주는 상황도 있었어요.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는 상황이었는데, 또다시 빈 강의실을 찾으러 다녀야 했죠.

당시에 시간을 꽤 허비해야 했어요. 우리가 학교 안에서 불법으로 노조 활동을 하는 게 아닌데도, 몰래몰래 자리 남은 곳을 찾아다니는 신세죠. 벌써 2년째 방랑자 생활을 해요. 분회장님은 사무실이 없어서 주로 차에서 지내세요."

 "벌써 2년째 방랑자 생활을 해요. 분회장님은 사무실이 없어서 주로 차에서 지내세요."
"벌써 2년째 방랑자 생활을 해요. 분회장님은 사무실이 없어서 주로 차에서 지내세요."김동수

조합 사무실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변선영 사무장의 목이 갑자기 메기 시작했다. 노조 활동을 하며 겪은 고충에 울컥한 듯하다. 나 역시 변선영 사무장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움직이는 청소노동자들이 공간조차 없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노조 사무실은 꼭 필요하다. 이를테면 긴급하게 임원들이 모여야 하는데도, 마땅한 장소가 없는 탓에 회의를 진행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회의를 해도 불쑥 들어오는 학생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노조 사무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노조 사무실이 없는 조합원들이 매번 겪어야 하는 애로 사항이다.

한편으로 노조 전임자인 최수연 분회장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그럼에도 자기 일을 보는 공간이 없다. 조합원들로부터 수렴한 요구사안을 정리할 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을 차에서 처리해야 한다. 조합 일을 하면서 필요한 사무집기나 용품도 다른 데서 빌려 써야 하는 입장이다. 노조 사무실이 있었다면 이런 수고도 없을 것이다. 조합 관련 문서 같은 경우도 비치할 곳이 없다. 그 결과 분회장 개인차에 사무집기나 용품, 문서 등을 쌓아둬야 한다. 사실상 차가 분회장의 노조 사무실이다.

그런데 노조 사무실 제공은 이미 노사 간에 합의한 사안이다. 지난 5월 말에 체결한 2015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학교분회 사업장 보충협약 합의서(보충협약)에는 회사 측이 "최대한 조속히 임시로 사용할 조합 사무실"의 제공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조를 조직한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복지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언제쯤 사무실을 제공받을 수 있을까

"각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소통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다시 최 분회장이 회의를 이어갔다. 그다음으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온 운영위원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새 변 사무장이 운영위원들의 의견들을 수첩에 꼼꼼히 받아 적는 게 눈에 들어온다. 회의록 작성은 변 사무장의 몫이다.

광운대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현안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보충협약에 들어갈 쟁점 사항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시간 동안 열띤 회의가 이뤄졌다.

"우리가 직접 단결해서 싸우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요. 올해도 우리 광운대분회의 힘을 보여줍시다. 박수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최 분회장의 마무리 발언으로 새해 첫 운영위원회가 종료됐다. 오늘은 노조 사무실이 없는 게 씁쓸한 하루였다. 광운대가 청소노동자를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까. 광운대의 구성원 중 하나인 교직원은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활동 공간이 없다.

"학생들의 공간을 빌려 쓰는 게 미안해요.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게 서러워요. 그동안은 협약상의 약속을 믿고 불편함을 감수했죠. 이번만은 들어주겠지 하면서요. 그런데 2년째 해준다고 말만할 뿐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이제는 약속을 이행해줘야죠. 문서에 도장까지 찍고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건 직무유기예요. 저희의 공간이 얼른 생겼으면 좋겠어요."

광운대는 간접·직접 고용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와 상관없는 계약'이라면서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길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용역업체는 민법상 도급계약을 맺은 광운대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협약도 체결이 불가능하다. 결국 광운대는 사실상 청소노동자들의 원청업체나 다름없다. 광운대가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 사무실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광운대 건물 중에는 청소노동자들이 노조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물론 있다.

노조 사무실은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건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조속히 임시로 사용할 조합 사무공간"을 제공하겠다는 협약은 무용지물이 돼 간다. 보충협약 제3조 제2항을 보면, "회사는 광운대학교의 운동장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에 분회 사무실을 제공한다"는 조항이 있다. 광운대는 이제 곧 완공될 건물에 노조 사무실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은 이 문구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
#청소노동자 #광운대 #운영위원회 #노조 사무실 #광운대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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