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째 방랑자 생활을 해요. 분회장님은 사무실이 없어서 주로 차에서 지내세요."
김동수
조합 사무실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변선영 사무장의 목이 갑자기 메기 시작했다. 노조 활동을 하며 겪은 고충에 울컥한 듯하다. 나 역시 변선영 사무장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움직이는 청소노동자들이 공간조차 없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노조 사무실은 꼭 필요하다. 이를테면 긴급하게 임원들이 모여야 하는데도, 마땅한 장소가 없는 탓에 회의를 진행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회의를 해도 불쑥 들어오는 학생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노조 사무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노조 사무실이 없는 조합원들이 매번 겪어야 하는 애로 사항이다.
한편으로 노조 전임자인 최수연 분회장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그럼에도 자기 일을 보는 공간이 없다. 조합원들로부터 수렴한 요구사안을 정리할 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을 차에서 처리해야 한다. 조합 일을 하면서 필요한 사무집기나 용품도 다른 데서 빌려 써야 하는 입장이다. 노조 사무실이 있었다면 이런 수고도 없을 것이다. 조합 관련 문서 같은 경우도 비치할 곳이 없다. 그 결과 분회장 개인차에 사무집기나 용품, 문서 등을 쌓아둬야 한다. 사실상 차가 분회장의 노조 사무실이다.
그런데 노조 사무실 제공은 이미 노사 간에 합의한 사안이다. 지난 5월 말에 체결한 2015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광운대학교분회 사업장 보충협약 합의서(보충협약)에는 회사 측이 "최대한 조속히 임시로 사용할 조합 사무실"의 제공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조를 조직한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복지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언제쯤 사무실을 제공받을 수 있을까"각 건물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소통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다시 최 분회장이 회의를 이어갔다. 그다음으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온 운영위원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새 변 사무장이 운영위원들의 의견들을 수첩에 꼼꼼히 받아 적는 게 눈에 들어온다. 회의록 작성은 변 사무장의 몫이다.
광운대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현안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보충협약에 들어갈 쟁점 사항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시간 동안 열띤 회의가 이뤄졌다.
"우리가 직접 단결해서 싸우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요. 올해도 우리 광운대분회의 힘을 보여줍시다. 박수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최 분회장의 마무리 발언으로 새해 첫 운영위원회가 종료됐다. 오늘은 노조 사무실이 없는 게 씁쓸한 하루였다. 광운대가 청소노동자를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까. 광운대의 구성원 중 하나인 교직원은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활동 공간이 없다.
"학생들의 공간을 빌려 쓰는 게 미안해요.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게 서러워요. 그동안은 협약상의 약속을 믿고 불편함을 감수했죠. 이번만은 들어주겠지 하면서요. 그런데 2년째 해준다고 말만할 뿐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이제는 약속을 이행해줘야죠. 문서에 도장까지 찍고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건 직무유기예요. 저희의 공간이 얼른 생겼으면 좋겠어요."광운대는 간접·직접 고용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와 상관없는 계약'이라면서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길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용역업체는 민법상 도급계약을 맺은 광운대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협약도 체결이 불가능하다. 결국 광운대는 사실상 청소노동자들의 원청업체나 다름없다. 광운대가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 사무실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광운대 건물 중에는 청소노동자들이 노조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물론 있다.
노조 사무실은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건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조속히 임시로 사용할 조합 사무공간"을 제공하겠다는 협약은 무용지물이 돼 간다. 보충협약 제3조 제2항을 보면, "회사는 광운대학교의 운동장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에 분회 사무실을 제공한다"는 조항이 있다. 광운대는 이제 곧 완공될 건물에 노조 사무실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은 이 문구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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