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농장'이 아니라 '마을'이다

[불행사회, 한국-사회/농촌 ①] '생활복지공동체'로 나아가야

등록 2016.01.18 13:54수정 2016.01.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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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농촌도 농업 못지않게 병이 깊다. 지원 정책은 많지만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이른바 '마을 만들기' 등 마을공동체사업을 책임져야하는 3대 주체는 행정, 주민, 전문가다. 개중 행정과 주민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돈'을 받고 대신 해결해줘야 할 '전문가'의 역할이 가장 크다. 하지만 마을공동체가 벌어지는 전국의 지역과 사업 현장마다 평판이나 성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행정과 주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욱이 2004년 최대 100억 원 규모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행된 이후, 일반 사기업을 중심으로 농촌지역개발관련 전문기관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면서 전문가의 역량과 성과가 저하되고, 관련 컨설팅시장의 공정거래 질서마저 교란되는 부작용마저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 업체 선정 과정에서 최저가 경쟁 입찰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일을 잘 할 수 있는 업체보다 입찰경쟁에서 이기는 기술과 방법론이 뛰어난 부적합 비전문 업체들이 득세하는 지경이다.

문제점을 느낀 농림부가 컨설팅업체 등록제, 국가공인 농어촌개발컨설턴트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도 없고 시장 진입 문턱도 여전히 낮다. 컨설팅업체의 역량 강화 유도와 시장 공정질서 확립 효과는 미미한 것이다. 기관 인증제, 인증기관 3진아웃제 등 전문컨설팅 시장의 정도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보다 강력한 정책과 제도가 요구된다.

근본적으로, 농업도 그렇고 농촌 일도 아무나 뛰어들면 안 된다. 농촌마을 공동체의 미래와 희망을 기획하고 설계하고 개발하는 일의 속성 자체가 근본적으로 농업과 농촌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어야 수행할 수 있는 고난이도 업무다. 생태, 환경, 조경, 관광, 건축, 도시계획, 농학, 임학, 식품공학, 농경제학, 농업경영학 등의 지식과 역량이 조화롭고 깊이 있게 통섭되어야 한다. 물론 학교 안에서의 전공, 학점과 학위보다 학교 밖에서의 현장 경력이 더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중간지원조직이 마을을 책임져야 한다

 완주군 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 융합 중간지원조직 '완주공동체지원센터'
완주군 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 융합 중간지원조직 '완주공동체지원센터' 정기석

농림부도 관련 법 제정을 통해 "지자체에 마을만들기를 담당하는 전담조직을 설치하거나 민간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위촉"하려는 고민과 검토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주민과 행정 사이에서 전문적인 지원 및 소통 업무를 담당하는 중간지원조직체계 구축"도 병행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각 지자체마다 공무원의 순환보직에 따른 전문성․지속성·진정성 저하 문제가 심각했다.

이번 기회에 민간컨설팅기관의 전문적 역량 한계의 문제와 구조적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 각 지자체의 중간지원조직이 해당지역의 마을공동체 관련 사업을 총괄 전담하는 방식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진안군의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완주군의 공동체지원센터 등의 선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농촌마을을 볼모로 삼아 수지타산을 맞추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사로운 용역업체 등 상업적 민간컨설팅업체가 주도해 출혈경쟁 양상을 보이는 파행적인 컨설팅시장의 공정한 질서 확립과 수행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익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지역별 중간지원조직'이 컨설팅 업무를 전담할 수 있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때 기존의 민간컨설팅기관은 지역별 중간지원조직과 협업조건에 한해 참여 통로를 열어주면 된다.

구체적으로 민관협력 거버넌스 형태의 중간지원조직으로 시·군 단위 기초지자체별로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는 마을만들기를 비롯해 귀농·귀촌, 사회적 경제 등 마을 및 지역사회공동체 활성화 관련 지원사업을 총괄하는 위상이다.


이때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려면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에 의존하는 기존의 수동적 조직운영구조를 탈피하는 게 관건이다. 자체적으로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수지구조를 확보, 독립기관으로서 자생구조와 자립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정형화된 정책사업 지원 업무 외에 지역의 마을공동체 사업 관련 컨설팅, 교육, 연구개발, 각종 위탁연구과제 등 자체 수익사업을 창조적으로 개발·병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독자적 수익모델 정립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런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려면 농촌 지역 특유의 현장감과 전문성을 확보한 지역현장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공동체에 뿌리를 둔 전문가 조직으로서 걸맞은 정체성과 위상을 갖출 수 있다.

'마을기업'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무주군 북창리의 머루와인 직판장 '마을기업'
무주군 북창리의 머루와인 직판장 '마을기업' 정기석

그런데 기존의 마을이나 권역 단위의 농촌지역개발사업, 또는 마을공동체사업은 의사결정구조와 책임소재 자체가 불명확한 게 화근이다. 주로 이장이 겸직하는 위원장 중심의 위원회(추진 및 운영)가 주도하는 마을공동체사업은 책임주체가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책임을 지고 싶어도 책임을 질 수 없는 무책임한 구조다. 따라서 일이 잘 되든 못 되든 사전에 법적, 도의적 책임소재부터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가령 법인격을 갖춘 마을기업 등 마을공동체사업 협동경영체 설립이 가능한 마을에 한해 사업비를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단 책임주체가 명확해지는 효과가 있다. 마을기업에 출자와 참여를 결심하고 결행하는 과정에서 심기일전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부여된다. 이제 아무나, 아무런 마을이나 마을공동체사업에 함부로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특히 농촌이나 도시 할 것 없이 마을공동체와 사회적 경제가 유행인 요즘, 행정이나 현장에서는 마을공동체 사업과 사회적 경제 사업이 따로 겉돌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띈다. 마을을 기반으로, 마을사람을 중심으로 서로 연계하고 융합하면 사업의 명분도 더 강화되고 실질적인 시너지효과까지 거둘 수 있겠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자면 우선 사회적 경제의 목적을 일자리나 소득을 늘리는 단기적인 목표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사회적 경제를 마을·지역공동체 재생과 활성화를 수단이나 방법론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이때 전략적으로 '마을기업'을 사업의 출발지점과 중심에 놓으면 된다.  

즉, 마을·지역사회 공동체사업의 사전 준비, 그리고 입문단계에서부터 마을기업 등의 사회적경제 조직에게 학교로서, 실습장으로서 역할을 부여하면 된다. 그리고 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공동체사업의 관리·경영의 책임 주체로서 사회적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

결국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조직이 마을공동체(community)와 사회적경제(business)를 유기적으로 연계·융합하는 '고리'로서의 역할만 충실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소득도 창출하고 일자리도 늘리는 마을공동체사업이나 사회적 경제의 정책적 목표는 자생 동력을 어느 정도 축적한 다음 단계쯤에서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마을기업' 중심의 마을공동체 사업 모델은 완주군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완주군은 2010년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현 완주공동체지원센터)를 설립, 전국 최초로 커뮤니티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분야 중간지원조직의 모델을 제시했다.

완주군의 마을만들기 수행방식은 '마을회사' 등 커뮤니티비즈니스(C.B) 중심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실행 주체들과 행정주체, 지역사회 단체들을 지원하는 특징을 띤다. 이를 위해 당초 마을회사육성센터,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로컬푸드센터, 도농순환센터, 공감문화센터 등 5개 지원조직을 통해 완주군의 마을공동체사업을 실행했다.

특히 전담 행정조직(구 농촌활력과)를 신설하고 순환보직제가 아닌 전담공무원을 고정 배치해 정책과 예산 지원을 담당하도록 했다. 또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원, 중간지원조직 설치·운영 등을 위한 지역공동체활성화사업(커뮤니티비즈니스) 육성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아울러 2007년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 희망제작소, 2012년에는 서울시와 우호교류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마을기업'의 운영 및 관리 주체는 '마을주민'이다. 마을기업을 설립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을 능히 경영할 수 있을 만큼 농촌마을 주민들의 조직적인 자치역량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 결국 마을기업을 기반으로 한 마을공동체 사업의 성패는 마을주민의 손에 달려있다.

이때 주민 개개인의 개별 역량 뿐 아니라 마을기업이라는 사업조직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 공동 책임 사업조직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민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연대할 수 있는 토대가 더 중요하다. 마을기업 내부에 그러한 인적, 사회적 자본이 우선 충분히 축적되어야 한다. 마을공동체나 사회적경제 사업은 그 이후에 시작해야 한다.

공동체로 탈바꿈하자, 23년 만에 아이가... 로 이어집니다.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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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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