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은 단 한 번뿐, 희미하게 또렷하다

[디카시로 여는 세상 65] <병신원단>

등록 2016.01.12 09:27수정 2016.03.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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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
산길이상옥

길은 희미하게
또렷하다
- 이상옥의 디카시 <병신원단>


요즘 산을 자주 찾는다. 새해에는 최소한 한 두 번은 꼭 산을 오르려고 한다. 나이가 드니, 건강에 자신이 없어서다. 시골집에서 자동차로 10분 못 가서 옥천사가 나온다. 옥천사를 두른 연화산에는 가볍게 등산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옥천사 주차장에서 오른 편으로 난 등산로가 내가 자주 이용하는 코스이다. 

새해 첫날, 이 코스를 올랐다. 소로라 낙엽이 쌓여 멀리서 보면 길이 없는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희미하지만 길이 또렷하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옥천사 인근 등산로 초입에는 테크길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옥천사 인근 등산로 초입에는 테크길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이상옥

희미하지만 분명한 것이 산길만이 아니다. 사람의 길도 뒤엉키고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궁극에는 '죽음'에 이른다. 산길은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하산하고 또 오를 수 있지만, 인생길은 단 한 번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땀 흘리며 산길을 걷는 것은 생에 있어 즐거움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해에는 자주 산을 찾기로 다짐한 터, 지난 10일엔 마금산에 올랐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있는 마금산은 마금산 온천지역 뒤쪽 우측 방향으로 해발 280미터이다. 수 년 전 자주 찾은 등산코스여서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새롭게 정비돼 있어 더욱 정겹다.

 마금산 정상 해발 280미터. 높지가 않아 가볍게 등산하기 좋다.
마금산 정상 해발 280미터. 높지가 않아 가볍게 등산하기 좋다.이상옥

마금산을 오르고 나서 온천욕을 하는 것은 금상첨화다. 산과 온천의 환상적인 궁합이 아닌가. 젊은 때는 몰랐는데, 사우나를 하는 게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산길을 오르며 사유하는 것이나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그고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산을 오르며 사우나를 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희미하지만 또렷한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실존이다. 따지고 보면 역설적이지만 죽음만큼 생을 생답게 하는 건 없다. 죽음이 있어 생이 더 가치 있다는 건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제시한 테제다.

병신년 새해, 이 테제를 가슴에 품고 즐겨 산을 오르고 사우나를 하면서 생의 의미를 더욱 천착할 수 있으면 역시 금상첨화.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디카시 #옥천사 #마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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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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