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그들만의 잔치’. 소외된 문둥이와 허세 가득한 세상을 그렸다.
이현주
2장 '무력한 아침'은 쳇바퀴 같은 일상 속 무력해진 문둥이와 도시인들을 표현한다. 오보에와 목관악기의 16분 음표 동음반복 패시지가 알람소리처럼 이어진 후, 아직도 깨지 못한 꿈같은 느린 멜로디가 이어진다. 하지만, 태평소와 꽹과리, 장구 등 국악기의 시원한 가락이 울려 퍼지면서, 문둥이의 숨겨진 자아인 말뚝이가 문둥이에게 가면을 씌우고 보따리 짐을 지우면서 오늘하루를 일으켜 세운다.
3장 '그들만의 잔치'는 소외된 문둥이와 허세 가득한 그들의 세상을 그렸다. 검정 옷의 세련된 상사인 '한량'과 회사원들. 골프 치는 한량에게 서로 잘 보이려 아부하고, 약자인 문둥이에게는 반대로 올라타고 짓밟는다. 4장 'Intermezzo I'는 말뚝이의 처지와 부조리한 세상을 급격한 도약음형의 신고전풍의 어두운 선율로 표현했다.
5장 '부조리한 오후'. 장구장단 위에 볼레로풍의 3연음부와 목관악기의 꾸밈음으로 뒤틀린 욕망을 표현했다. 문둥이가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여인은 외면한다. 권력자인 한량은 그녀를 덮치고, 이에 분개한 말뚝이와 결투를 벌인다. 묵직하게 반복되는 장구장단과 현악기의 급격한 음형의 도약과 하강이 일렁대는, 처절하고 격렬한 음악이다. 그녀는 다시 한량을 유혹한다.
6장 'Intermezzo I(외로운 저녁)'는 한량이 객석 뒤쪽에서 조명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와 발칙한 춤을 춘다. 문둥이를 끌고 나와 사원들끼리 희롱한다. 고음역으로 치고 올랐다 다시 떨어지는 현악선율이 마음을 후벼파며 문둥이의 위태로움을 표현한다.
7장 '처절한 밤(문둥북춤)'에서는 문둥이의 슬픔과 반면의 호탕한 기개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문둥이가 북채를 쥐려 하지만 짧게 문드러진 손가락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다. 어깨를 떨며 고개를 떨구어 흐느낀다. 굿거리 장단으로 느린 호흡이 현악기나 오케스트라에게는 힘들 수도 있는데,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한 호흡으로 문둥이가 북채를 잡기까지를 절묘하게 잘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