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표지.
김영사
'역사의 진로를 결정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19쪽)약 250만년 전에 출현한 원시 인류는 지구에서 그다지 특출한 존재가 아니었다. 모든 생명이 자연선택의 법칙에 지배를 받듯이 원시 인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구 위 거대한 먹이사슬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인류는 250만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진화했다.
'남쪽의 유인원'이라는 뜻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2백만년 전 고향을 떠나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정착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종들이 태어났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발달한 '네안데르탈인', '똑바로 선 사람'이란 뜻의 '호모 에렉투스', 동아프리카의 '호모 루돌펜시스' 등 다른 인간 종들도 동시대에 존재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인간 종이 아니었다. 25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 지구상에는 다양한 인간 종들이 살고 있었다. 인간은 단일종으로 진화해오지 않았다.
많은 인간 종들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게 살아 남았고 현 인류의 계보를 이어왔다. 생물학적으로 별반 특출하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살아남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하라리 교수는 그 해답을 사피엔스의 첫 번째 혁명인 '인지혁명'에서 찾는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그들만의 고유의 언어를 창조한 사피엔스는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개미나 벌도 협업의 능력이 있지만 친밀하게 지내는 소수 개체에 국한되는데 반해,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도 유연한 협력이 가능했다. 자연적으로 결속 가능한 최소 단위인 150여 명의 수준을 넘어 수백, 수천명의 협력이 가능해졌다.
사피엔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보유했고 전설, 신화, 신, 종교와 같은 '허구의 세계'를 상상해냈다. 저자는 사피엔스가 수십만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와 수억명 이상이 거주하는 제국을 건설한 배경에는 '허구의 등장'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며 "원시인들이 유령과 정령을 믿음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듯이 현대의 사회제도들도 그런 기반위에서 작동한다"고(62쪽) 본다.
원시 인류의 행동패턴이 수십만년간 고정되어 있던 반면, 사피엔스가 짧은 기간 안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형태들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허구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중략)...인지혁명 이후에는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 (66쪽)인지혁명의 결과 기술과 조직의 능력을 획득한 그들은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그들이 상륙하는 곳 마다 동물들의 대량 멸종이 있었고 사피엔스는 지구 생명들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되었다. 인지혁명 덕분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에 불과했던 사피엔스는 단숨에 먹이사슬의 최정점으로 뛰어올랐고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사피엔스의 '농업혁명'은 진정한 진보였나?지구 생명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피엔스라는 '정복자'의 등장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종들이 고통과 멸종의 길을 걸어야 했다. 저자는 '농업혁명'을 과연 진보로 볼 것인지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그가 보기에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 중의 하나다. 한쪽에서는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번영과 진보의 길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공생을 포기하고 탐욕과 소외의 길로 달려간 전환점이었다고 비판한다.
대략 1만년 전부터 사피엔스는 몇몇 동물종과 식물종을 기르기 시작했고, 농업으로 본격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 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고 한다. 농업혁명은 수렵채집에만 의존하던 식량 사정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식량의 총량이 늘어났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생산한 식량은 저장공간을 필요로 했고 사피엔스는 수렵채집을 하며 떠돌던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부들은 수렵채집인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더 열악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지 못했고, 모든 정착지에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그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을 빼앗았고 그것을 토대 왕궁과 사원을 짓고 도시를 건설했으며 정치를 하고 예술작품을 만들고 전쟁을 벌였다. 농업혁명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이자 불평등의 시발점이었다.
농업혁명은 사피엔스를 제외한 동물들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왔다.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동물들을 사육하면서 가축화 된 동물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축 사육은 현대에 이르러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으로 발전했다.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사육된 닭, 돼지, 젖소 등은 몸짓 하나 가누기 힘든 우리에 갇혀 평생을 보내며 인간을 위한 고기와 젖을 생산하는데 일생을 바치고 살육된다. 지구상에서 수백억 마리의 동물이 산업적 착취체제 하에 희생되었다.
저자는 "진화적 성공과 개채의 고통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라며 "우리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이야기를 조사할 때는 순수한 진화적 관점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147쪽) 지적한다.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1의 물결 다음에는 농부들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2의 물결이 왔고, 이 사실은 오늘날 산업활동이 일으키고 있는 멸종의 제3의 물결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았다는 급진적 환경보호운동가의 말은 믿지 마라. 산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만일 좀 더 많은 사람이 멸종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에 대해 안다면, 스스로가 책임 있는 제 3의 물결에 대해서 덜 초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종을 절멸시켰는지 안다면, 아직 살아남은 종들을 보호하려는 의욕이 좀 더 생길 것이다. (117쪽)저자는 농업혁명이 사피엔스에게 안락한 새 시대를 선물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오늘날 풍요와 안전이 농업혁명의 기초 위에서 건설된 것이라고 해서 개선과 진보로 가정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그것은 수천년의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수많은 생명을 멸종시키고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만든 농업혁명은 '덫'이었다는 것이다.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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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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