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리 마을 입구에 있는 라 라비아(La Rabia) 다리'공수병'이란 뜻의 이 다리 기둥을 동물들이 세 번 돌면 미치광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박성경
낭창낭창~ 그렇게 걸으며 이 다리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책에서는 론세스바예스에서 이곳 수비리까지 23km를 걷는 데 7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우린 9시간이 걸렸다. 마을이 보이면 구경도 하고 성당이 있으면 요리조리 살펴도 보고, 이 지방 운동인 펠로타 경기장도 구경하고, 산길 어디서라도 힘들면 철퍼덕 앉아서 물도 마시고, 자연도 보고, 공기도 흠뻑 마시다 보니, 책에 적어 놓은 예상 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렸다. 그게 뭐 잘못인가?
잘못은 아닌데, 잘 몰랐던 건 맞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워낙 매스컴을 많이 타다 보니, 엄청 유명해졌고 그만큼 순례자가 많아졌다는 걸 뼈저리게는 몰랐다. 수비리는 그 많은 순례자들을 수용하기에 방이 부족한, 아주 작은 마을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순례자들 중에 거의 꼴등으로 마을에 도착한 우리에게 잘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수비리 입구에서부터 공립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호스텔, 호텔, 사립 알베르게, 심지어 펜션까지... 모든 숙박업소에서 우린 이 말을 들었다.
스페인 말로는 "콤플레또(completo)", 영어로는 "풀(full)", 우리말로 "방 없어"였다.
그래도 공립 알베르게엔 누울 자리가 남아 있었다. 딱 베드 3개가 남았단다. 20여 명이 함께 자는 큰 방에 베드 1개가 남았고, 4명이 한 방에서 자는 작은 방에 베드 2개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4인실에 남은 두 베드는 같은 방에 있는 게 아니라 각기 다른 방에 하나씩 있다고 했다. 이래저래 이산가족이 될 판, 우리는 4인실 각각 다른 방에 겨우 잠자리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