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군 마을단위 복지망의 허브, 무주군 '종합복지관'
정기석
춘천 고탄리, 송암리 등 산골마을에서는 마을복지를 마을에서 스스로 준비하고 있다. 이름하여 '산골마을 119' 사업이라는 농촌 노인 대상 사회적 서비스도 시작했다. 농촌마을 노인들에게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조치와 지속적인 방문 돌봄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사북면사무소, 춘천솔다원권역, 춘천산골마을협동조합,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등 지역 4개 기관이 힘을 모았다.
복지전달체계를 '행정단위'에서 '마을단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구가 이어진다. 전북연구원도 '전라북도 마을복지 전달체계 구축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관 주도의 복지서비스에 의존하는 복지는 한계에 달했다"며 복지체감도 향상을 위해 마을단위로 전달하는 '전북형 마을복지 모델'을 제안한다.
'전북형 마을복지 모델'이란 실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단위에서 복지실현과 관련된 인적, 사회적, 경제적 자원을 재분배하려는 것이다. 수요에 바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북형 마을공동체복지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행정 읍면동 단위의 복지전달체계를 마을단위로 세분화하면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동네주민까지 복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 복지제공 기관을 복지시설로 제한하지 않고 복지의 제공 방식을 다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을의 병원, 보건소, 경로당, 반상회, 주민자치회 등을 복지의 주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적재원이 미처 투입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를 마을의 조직과 자원이 주체적으로, 내생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아울러 공적재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자발적 마을복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가령 나눔마을기업, 마을복지기금 등을 조성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마을복지센터'를 설치하려는 것이다. 결국 마을 자치적인 복지재원 마련, 복지인력관리, 마을복지서비스 제공이라는 복지선순환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제안이다. 시군별로도 마을복지 지원조직을 설치한다. 그래야 복지기관별로 산재된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통합·조정해 복지의 중복과 누수를 예방된다.
이같은 '마을단위 복지'가 노리는 효과는 자명하다. 기존의 복지시설과 행정기구 중심 정책으로는 오늘날의 심각한 양극화와 고령화에 대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한정된 예산으로 공평하고 공정한 유럽식 복지모델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이다. 마을단위에서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결합되는 주민참여형 공동체 복지가 대안이라는 진단이다.
다만, 복지예산의 부족을 이유로 자칫 국가와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민간에 전가하는 식의 정책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당연히 정부의 복지 예산의 확충과 집행 효율 제고부터 우선 노력하는 게 일의 순서다. 그리고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행정과 민간의 긴밀한 거버넌스를 통한 충분한 토론과 연구가 필수적이다.
'박현채'로 마을공동체를 다시 읽자박현채(1934~1995)는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진보적 경제학자이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 하에서 '민족경제론'으로 한국 국민경제의 독자적 가능성을 제시하며 사회변혁운동에 앞장 선 실천적 경제이론가로서 평가된다.
박현채는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한국농업문제연구회' 간사를 지냈다(1959~1964). 아마도 이때 농지개혁의 실패와 잉여농산물 도입, 한국경제와 농업 등에 관해 집중 연구하며 새로운 관점과 이론을 정립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특히 실천적으로 전근대적 생산양식을 극복하기 위해 협업농업의 양성을 강조했다. 또 농업문제뿐 아니라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문제, 원조경제의 본질,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국민경제의 독자적인 존재 가능성까지 고민했다.
그의 민족경제론은 산업화 과정들의 문제들을 규명하고 체계적 대안을 마련하려는 한국적 정치경제학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산업간·계급간·지역간의 불균형한 발전과 국민경제의 왜곡이 파행적 산업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일관되게 지적하고, 이것이 곧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제구조의 연장임을 역설했다.
민족경제론에서 민족경제란 자주적, 민주적, 민족적인 국민경제를 지향한다. 민족경제론은 1960년대 농업국가 한국의 자본주의의 파행적 질주에 맞서 민족적 자주성과 민주적 의사 결정성, 민중적 삶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이론에서의 인간복권, 특히 광범한 직접 생산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경제발전, 민주주의적 집회와 절차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는 경제계획에 의한 국민경제의 운용을 내세웠다.
박현채가 남긴 <한국농업의 구상> <한국경제와 농업> <한국경제구조론> <민족경제와 민중운동> 등을 읽으면 "왜 이 나라 농업, 농촌, 마을공동체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알 수 있다.
1960년대 만해도 한국은 농업국가였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지금은 100명 가운데 5명 정도가 농민이다. 그래서 당시 농업은 곧 국가경제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민주공화당은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의 운영기조부터 정했다. 농업국가로서 명운이 달린 중요한 과업이었다.
그 결과가, 1966년 민주공화당 정책연구실에서 작성한 농업기본법안이다. 그만큼 공을 들인 법안이라 그런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구호나 표현 말고는 큰 변화는 없는 듯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양보도 인정사정도 없는 '살농정책'의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당시 민주공화당은 한국농업의 생산력 정체와 빈곤의 원인이 농업 경영의 영세성에 있다고 봤다. 진단은 비교적 정확했다. 그러나 내놓은 처방이 문제였다. 박현채 식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과소경영 청산을 위해 농업을 자본 제적 경영을 통한 확대재생산의 경제단위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또 '사회적으로 타당한 이윤이 실현되는 형태의 농업경영으로 농업을 자본주의화 시키는 것으로 개념되어지는 중농정책을 시행하도록" 정부에게 의무를 지웠다.
지금 우리 농촌의 문제, 마을공동체의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발화되었다는 의심이 든다. 박현채는 문제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간 한국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분업체계와 긴밀한 관련을 가짐으로써 유지되어 왔다. 그것은 식량문제의 경우 값싼 미국잉여농산물의 도입으로 저농산물 가격정책을 견지하고, 저노임을 기초로 한 가공수출의 증대로 수입재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 기축을 이루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은 만성적인 식량 및 원자재 수입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마을이나 공동체 관련 활동과 사업이 유행처럼 활발한 요즘, 한 켠에서는 "마을이나 공동체는 다 옳은 것인지?", "모두를 위한 마을이 과연 있는 것인지", "우리가 과연 마을을 잘 할 자신이나 자격이 있는 것인지", "결국 국가나 정부가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자조하고 고민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마을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해, 더 철저히 공부하고 훈련하자는 자기반성의 죽비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마을만 보고 생각해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을만 공부해서는 마을을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마을을 둘러싼 농업의 경제와 농민의 생활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의 근현대사와 국제 정치, 그리고 공동체 사회의 이면까지 더 들여다봐야 한다. '박현채'를 다시 꺼내 읽어볼 필요가 있다. 마을공동체로 가는 길이 그 책 속에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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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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