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방귀 안 뀌는데요"

[다다와 함께 읽은 책 37] 후쿠다 이와오가 쓰고 그린 <방귀 만세>

등록 2016.01.25 15:55수정 2016.01.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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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웅~"

때는 육아휴직 당시. 장소는 작은 문화센터 강의실 안. 목격자는 나와 아는 동생, 함께 리본공예를 배우는 언니와 그의 여섯 살 딸 그리고 강사. 사건의 발단은 적막을 깨는 요상한(?) 소리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시선은 모두 여섯 살 꼬마로 향했다. 이미 귀까지 빨개진 아이. 쑥스러워서 엄마 품에 파고 들자, 아이 엄마가 말했다.


"어머, 너가 방귀 뀐 거야?"
"응..."

아이가 무안해 할까봐 주변에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괜찮아.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어딨어. 아줌마도 뀌고 너네 엄마도 뀌어. 괜찮아."

그랬더니 이 꼬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는 말.

"우리 엄마는 방귀 안 뀌는데요."


(이럴 때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특유의 시그널 '매애~' 소리라도 나와주면 얼마나 좋아. ㅋㅋㅋ) 당황한 아이 엄마가 놀라 말을 받았다.

"아냐 얘... 엄마도 방귀 뀌어. 네 앞에서 안 뀌는 거지. 하하. 이제 애 앞에서 방귀도 좀 뀌고 해야겠네요. 쟤가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네."
"그러네요. 하하. 근데, 결혼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 방귀 안 텄어요?"
"네, 전 그게 좀 그렇더라구요."

그때 처음 알았다. 가족들 앞에서 방귀 안 뀌는 엄마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런데 여기 "우리 엄마는 방귀를 한 번도 뀐 적이 없어 걱정이 된다"는 친구가 또 있다. 바로 후쿠다 이와오가 쓰고 그린 <방귀 만세>에 등장하는 1학년 3반 친구다.

온 교실을 울린 방귀 소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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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만세> 겉표지 ⓒ 아이세움

장소는 1학년 3반. 목격자는 32명의 아이들과 선생님. 사건은 '뿌웅' 하는 내 방귀 소리에서 시작됐어. 아, 글쎄 나도 모르게 그만 그만 방귀가 나와 버렸지 뭐야.

"선생님 요코가 방귀를 뀌었어요."

내 짝꿍 테츠오가 말했어. 정말이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어. 선생님은 "방귀는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결국 엎드려 울고 말았어. 너무 창피했거든. 그런데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걸까.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졌어.

"선생님 방귀를 뀌면 안 되는 때가 있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 방귀는 아무나 다 뀌나요? 우리 엄마는 방귀를 한 번도 뀐 적이 없는데, 걱정이 돼요."
"선생님 밀 마스카라스(가면 쓴 수수께기의 레슬링 선수)는 방귀 안 뀌지요?"
"선생님 뱃속 아기도 방귀를 뀌나요?"

선생님은 말했어. "선생님이 키우는 고양이도 방귀를 뀐단다, 살아 있는 생물은 다들 방귀를 뀌는 거야"라고. 방귀 이야기에 친구들은 모두 신나고 함께 웃었어. 어느샌가 나도 고개를 들고 웃고 있었지. 그때였어. '새하얀 조개 껍데기 같은  나비' 한 마리가 교실에 날아든 건. 테츠오가 말했어.

"나비도 방귀 뀐다."

사실 나는 아이들과 방귀 놀이는 잘 하는 편이다. 아이들은 방귀의 '방' 자만 꺼내도 깔깔 대고 웃으니까. 아이들이 별것도 아닌 일로(물론 저들 사이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만큼 대단한 일이지만) 싸울 때면 나는 웃음이 나는 방귀총(?)을 꺼내듣다.

"니네들 자꾸 이렇게 싸우면 엄마가 방귀 뀐다."

성공 확률 99.99999%. 아이들은 그 방귀가 진짠지 가짠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방귀를 뀔 때마다 달라지는 소리에 웃음을 참지 못할 뿐.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진정되기도 어렵다. 신기한 건 주장하건대 내 방귀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 다만 소리가 좀 클 뿐. 우리집 아이들 웃음 소리가 두 배로 커지는 이유다. 방귀 만세!

[<방귀 만세>는요]

그림책 <방귀 만세>는 2001년 4월 아이세움에서 처음 발간했습니다. 온 교실을 울린 방귀 소리 때문에, 아이들과 선생님이 주고 받는 이야기가 시종일관 유쾌합니다. 이야기만 그런 건 아닙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왕 방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방귀에 관한 글짓기를 하자"고 제안 합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요. 요코와 테츠오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지었을까요? 보고나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방귀 만세 (한시적 특가 판매 상품)

후쿠다 이와오 지음, 김난주 옮김,
아이세움, 2001


#방귀 만세 #후쿠다 이와오 #다다의 그림책 #그림책 #아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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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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