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왔는데 맥주 파는 데가 없다고?

인도 식민 침략의 유적들과 다종교가 어우러진 코친 포트

등록 2016.01.25 15:41수정 2016.01.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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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경남 통영 지역의 초중고 교사들을 중심으로 16명 사람들이 지난 1월 3일부터 19일까지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남인도와 스리랑카로 역사, 문화, 자연 탐방 연수를 다녀왔다.

이번 연수는 중등에서 사회과 과목을 가르치다가 명예퇴직을 해 통영에 거주하고 있는 전직교사인 최두열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연수를 총괄 기획을 하고, 참여 희망자들을 모아 진행되었다. 연수 대상 지역은 남인도에서는 코친, 알래피, 트리벤드럼, 첸나이, 퐁두체리 등의 도시에서 가까운 유명 관광지 등을 중심으로 하였다.


맨 처음으로 찾은 곳은 남인도 깨랄라주에 속해 있는 코친 포트였다. 코친은 '코치'라고 불리기도 하며 15세기 말부터 서유럽 열강들이 인도로 진출할 때 아라비아해를 통하여 제일 먼저 접근해 온 지역으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등 이 지역을 지배했던 서양 여러나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다.

코친은 옛 왕국의 이름이기도 한데, 에르나쿨람, 바탄체리, 코친 요새, 윌링돈 섬, 비핀 섬, 군두 섬 등을 포함하는 섬과 도시군을 일컫는다. 대도시권에는 에르나쿨람과 마탄체리가 포함된다고 한다. 고츠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여러 하천과 아라비아 해의 바닷물이 밀물 때는 밀려들어 가장 안전하고 좋은 항구의 입지적 조건을 갖고 있어서 옛날부터 전략요충지가 되었다고 한다.

15세기말 포르투갈의 항해가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이 1500년 이곳에 인도 최초의 유럽인 거주지를 세웠고, 1502년에는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가 최초의 포르투갈 해외상사를 세우면서 이곳은 발전을 하게 된다. 그후 1663년 네덜란드에 정복될 때까지 포르투갈의 통치를 받았으며, 이 항구를 통해 각종 향신료와 마약·코이어·코코넛·코프라 등이 선적되었다고 한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빨래공장

우리 일행은 툭툭이(삼륜 오토바이) 5대를 빌려타고 시내 여행에 나섰다. 툭툭이 기사들이 맨 먼저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빨래방이었다. 이곳 코친에서는 옛날부터 각 가정이나 숙박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빨랫감들을 이곳 빨래방에 맡기면 세탁물들을 빨아서 다림질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세탁소와 같은 곳인데, 이곳 빨래방은 한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 영역인 빨래와 다림질 등을 하는 것이다. 거의 빨래공장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그 옛날 서양 사람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면서 빨래를 이와 같이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가 성업했던 것이다.

옛날 세탁기가 없던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빨래를 하기 위해 냇가로 가서 빨랫감에 세제를 묻히고 방망이로 빨랫감을 두들겨서 떼를 빼었는데, 이곳에서는 빨랫감을 세제에 담가서 건져낸 다음 그 빨랫감들을 돌이나 세멘트 구조물에 두들겨서 떼를 빼고 있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참 특이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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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물을 두들겨서 빨래를 하고 있다 세제에 담근 세탁물을 두들기고 쥐어짜 헹궈내면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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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 다림질 코코넛 열매 껍질이나 나무로 만든 숯을 이용하여 숯불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 김광철


그렇게 하여 넓은 공터에 빨래줄들을 수없이 묶어놓고 거기에 빨래를 널어 말린 다음 다리미질을 한다. 다리미는 우리나라에서 1960~1970년대 이전 숯불다리미를 사용했던 것과 같이 코코넛 나무나 열매 껍질 등을 이용하여 만든 숯을 다리미 안에 넣어서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을 하는 분들은 다 늙스구레한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리미질을 하는 한 노인한테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더니 75세라고 한다. 그 후에 인도의 다른 여러 곳을 여행을 하면서 보았지만 이곳 코친에서와 같은 형태의 빨래공장을 운영하는 곳은 보질 못했다. 이게 다 제국주의자들이 이곳 인도인들에게 이런 허드렛일을 시켰다는 생각을 하니 일제 식민지를 거친 우리로서는 씁쓰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세탁기가 발달하여 가정에서도 빨래를 손쉽게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관습은 하루 아침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양한 종교 시설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코친

이곳 코친은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진출했던 곳이라 종교도 다양하다. 역시 제일 흔한 곳은 힌두교사원들이고 카톨릭성당, 이슬람사원 등도 더러 있지만 불교의 한 종파인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 곳을 방문하였다. 이곳 코친의 힌두교 사원은 교인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다고 하여 내부 견학은 하질 못했고, 자이나교 사원에 가서는 신발과 모자를 벗고 내부 견학을 할 수 있었다.

견학을 하는 도중에 독실한 불교 신자인 한 여선생님이 자이나교의 예배 방법을 잘 몰라서 어느 불상 앞에서 108배를 한다고 절을 하고 있는데, 안내자인 여자분이 마구 화를 내면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단지 자이나교도 불교의 한 종파라는 판단에 따라 순수한 마음으로 108배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게 이 종교의 예법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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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친의 한 힌두교 사원이 설립한 학교 낡은 칠판에 침침한 교실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1960~1970년대 분위기를 연상케 하였다. ⓒ 김광철


그리고 자이나교 사원 이웃에는 힌두교 사원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겉모습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옆 건물이 이곳 힌두교 사원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라고 하여 잠시 문지방 너머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인데 수학공부를 하고 있다가 우리 일행을 보니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교복을 말끔하게 입은  20여 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이 우리네 초등학교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나라 1960~1970년대의 초등학교 분위기를 잠시 느낄 수 있었다. 낡은 칠판에 수학 문제 풀이가 잔뜩 쓰여 있고, 아이들이 교과서를 가지고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은 이곳 인도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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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잡는 중국식 어망 바닷가에 사진과 같이 어망을 설치하여 그물을 들어올려 물고기를 잡는 시설들인데, 우리 일행은 어망을 끌어올리는 체험을 해 보았다. ⓒ 김광철


오후에는 그 옛날 중국인들이 와서 이곳 코친 포트 일대에서 바닷가에 어망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아올렸다는 곳을 찾아 어망을 끌어올리는 체험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건져올린 물고기는 우리나라의 학꽁치와 비슷한 물고기 한 마리였다. 우리 일행은 '애걔걔' 하면서 웃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 이벤트로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이곳 인도항로를 처음 개척했다는 바스코다가마의 유해가 10년 동안 묻혀있었다는 아시아 최초의 성당인 성프란시스코 성당을 찾았다. 유럽의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의 성당들과 비교하여 소박하고, 아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내 공간도 그리 넓지 않았고, 신도들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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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시스 성당 아시아 최초의 성당으로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코다가마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 김광철


그래도 힌두교가 인도 전역을 지배하는데, 인도인들이 성당이라든가 무슬림 사원, 교회 등 다른 나라의 종교들도 크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여유로움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일행 중, 통영에서 온 정대화 선생이 힌두교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 같아 이런 전통은 어떻게 하여 연유하냐고 물었다.

"원래 힌두교는 시바신을 믿는데, 시바신이라는 것은 특정한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도 예수도 다 시바신과 같은 반열에 놓고 바라보고 이민족의 종교라고 하여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는다."

중세의 종교 전쟁이라든가, 요즘 중동지역에서 종교갈등으로 인한 전쟁과 테러 등을 떠올랐다. 힌두교는 유일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자신이 믿는 대상을 다양하게 정하여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특정 종교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힌두교가 12억이 넘는 인도인들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중국의 경극과 비슷한 '카타깔리' 공연

해질녁에는 코친의 유명한 공연 '카타깔리'를 보러갔다. 이번 여행을 기획, 주관하는 최두열 선생님께서 이미 한국에서부터 '카타깔리' 공연 신청을 하여 표를 끊어 두었기 때문에 우리 일행들은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카타깔리는 경극의 일종으로 가수의 노래와 전통 타악기 반주에 의하여 등장하는 배우들이 손짓과 몸짓, 표정 연기 등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전부 남자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분장을 통하여 여자역으로 등장하여 연기를 한다. 공연은 '카치카가 여주인공인 말라니를 유혹하여 욕보이려 하자 말라니는 도망쳐 나와 궁중의 비마에게 알리고, 비마는 카차카를 무도회장으로 유인하여 죽인다'는 내용이다.

우리 나라의 고전 문학이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것처럼 '카타깔리'도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공연이 특이한 점은 1시간 정도 걸리는 분장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공연에 앞서서 손짓, 몸짓, 표정 등이 무엇을 표현하는지를 미리 관객들에게 보여주어 극의 흐름을 이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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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친의 전통 공연 '카타깔리' 분장하는 과정과 손동작, 몸동장, 표정 등이 의미하는 것을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타악기와 가수의 노래에 따라 공연이 진행되었다. ⓒ 김광철


특히 분장에 사용되는 도료들이 대부분 야자에서 추출했거나 자연에서 얻어졌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자연을 잘 이용하는 이곳 사람들의 자연 적응력에 크게 감탄했다. 등장하는 배우들의 화려한 분장과 세련된 표정 연기는 관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다만 재미있는 광경은 우리나라에서 조각보를 이어 만든 넓은 천을 암막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참 유치한 것 같기도 하였지만 이 또한 고전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익살스러움으로 봐 주고 싶었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인도의 정서나 한국의 정서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와 원리야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큰 차이가 없음을 느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낮에 더위 속에 여러 곳 기행을 하면서 지치고 목이 말라 맥주라도 한 캔 하고 싶어 동네 가게에 들렀더니, 이곳 인도에서는 힌두교적 전통에 의하여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그 어떤 가게에도 주류를 판매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외국 여행을 몇 차례 해 보았지만 이곳과 같이 주류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곳은 보질 못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외국인을 위해서 코친 포트 지역 두어 곳의 호텔에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하여 우리 일행은 물어물어 찾아가 맥주 한 캔씩 하고 오면서 힘들었던 비행기 여행과 첫날의 힘든 여정에 대한 회포를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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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친 포트에서 겨우 찾은 맥주 판매소 일반 가게에서는 주류 판매를 하질 않고, 외국인을 상대하는 호텔 등에서만 판매하고 있었다. ⓒ 김광철


#코친 #힌두교 #서구열강 #빨래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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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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