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방조제
추광규
"민주당에 '뉴노멀추진단'이 있다. 제가 단장을 겸하고 있다. 총선 및 대선을 겨냥한 정책단인데. 다섯 가지의 정책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저성장 시대의 대안으로 저비용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민간시장에서는 가격이 파괴되고 있다. 서민들은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공공부분에서는 간접세나 공공요금 등을 부당하게 올리고 있다.
담뱃세는 부당하게 올렸던 것이고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유류값은 제대로 인하를 안 하고 있다. 지하철 요금 인상, 쓰레기 봉투값 인상 등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잡아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일단 깎아 줘야 된다. 공공요금 인하 등을 통한 저비용 사회를 만드는 게 첫째 정책이다.
두 번째로는 새만금 신경제수도 건설로 새로운 성장전략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서 근본적으로는 성장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만금 신경제수도가 필요하다. 사실상 하드웨어가 마무리된 새만금은 서해안 시대를 여는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내수경제로의 전환, 40년 된 영남 중공업 벨트시대의 종언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이 새만금에서 새로운 실험의 장을 열어야만 한다.
구체적인 안으로 행정적으로는 규제를 완전히 제로화 하자. 이것을 추진하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대통령 직속으로 전담비서를 두는 한편 재원조달을 위해서는 특별회계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새만금 부지 개발은 땅을 매각하는 방식인데 이는 투기의 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바꿔서 임대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새만금에 준 사회주의 수준의 주거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완벽한 공공보육 공공주택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만금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세 번째는 저비용 상생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먼저 국회의원의 세비를 중산층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이와 함께 보좌관들의 숫자를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북유럽처럼 보좌관 제도를 없애야 할 것이다. 특히 비례대표 보좌관은 지역구보다 더 줄여야 한다. 전문가라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다음번에 지역으로 가려고 보좌관을 지역구에 배치한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국회 내에서 싸움을 줄일 수 있는 제도를 현실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내 본회의장에 배치되는 자리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당별로 구분해서 좌석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패싸움 대형이다. 의총은 자기들끼리 하고 지역구 별로 앉으면 된다. 스웨덴이 그렇게 한다.
재보궐 선거를 없애야 한다. 1등 당선자가 문제가 될 경우 차점 낙선자가 승계 받으면 된다. 나아가 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 DJP때 실험을 했다. 개혁적 지도자라는 김대중과 보수적인 김종필이 2년 반 동안 연정을 통해 국정을 안정되게 운영했다.
이를 통해 IMF라는 국난을 현명하게 극복했을 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 민노총 전교조 합법화, 복지관련 입법 등을 실현해 냈다. 대통령제나 내각제등 정치체제에 상관없이 한두 번의 연정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저비용 상생정치의 실현이다.
네 번째로는 '광주 신문화 수도'인데 이 부분은 다듬고 있다. 다섯 번째로는 한일협정 개정이다. 위안부 문제가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1965년 한일협정의 한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동북아 체제 전략과 연관되어 있는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 자체가 불안정하면서 파생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그것 자체를 이제는 정상적으로 그리고 대등하게 개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청구권 문제 식민지 보상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야 할 때가 왔다. 이는 올바른 한일관계는 물론 대미관계 대중관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 이는 정치경제 성장전략 외교에 있어 새로운 표준으로 국가적인 뉴노멀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본다."
- 김 의장이 지금도 비판을 받고 있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지난 2002년 대선국면에서의 '후단협' 문제인 것 같다. 이와 관련 얘기를 해 달라."2002년 후보단일화와 관련해 당시 저는 새천년민주당 탈당 성명서에서 명료하게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저는 탈당 후 단일화를 이뤄낸 후 약속대로 복당했다. 그러나 그 과정과 절차에서 많은 분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정치공학적으로만 매몰되어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목표에만 빠졌던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반성한다.
지금도 제 스스로 그때의 문제점은 승리지상주의였다는 것을 깊게 성찰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때의 후보단일화가 없었더라면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저는 당내 보수그룹인 후단협에 참여한 적이 없다. 2002년 서울시장 낙선 후 정치 자체를 떠나 있던 중 후보단일화를 한다고 해도 이회창 후보에게 질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회창 후보에게 넘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후보단일화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결국은 후보단일화를 이뤄냈다.
그 이후에 (정몽준 후보의) 지지철회 파동이 있었다. 그 파동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그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유세차 단상에 노무현 정몽준 두 사람만 올라가기로 한 합의가 깨지면서 이에 반발하면서 일어난 일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었다'고 회고 했다.
이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은 저에 대해 '후보단일화를 통해 정권 창출을 할 수 있었지만 이에 앞장섰던 김민석 자신으로서는 개인적으로는 어려워졌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같은 평가와는 별개로 저는 지금도 그때의 승리지상주의 정치공학에 빠졌던 것을 깊게 반성한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승리에만 매몰되는 정치공학적 정치에는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김민석이 미워도 민주당은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