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비룡소
티에리 르냉님이 글을 쓰고, 한지선님이 그림을 넣은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비룡소,2005)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 어릴 적을 더듬으니, 사내는 사내대로 로봇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보여주기를 즐겼고, 가시내는 가시내대로 인형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선보이기를 즐겼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에 부잣집 아이는 거의 없었기에 '자랑'할 동무는 거의 없었고, 자랑하려고 뭔가를 가져왔다가는 주먹힘이 센 아이한테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떤 장난감이든 집에서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니까 장난감을 가져오지 말라는 얘기는 옳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쉬는 때라든지, 낮밥을 먹는 때에 장난감으로도 놀고 싶습니다. '하지 마'나 '갖고 오지 마'라 말하지만 말고, '한번 가져와서 다 같이 놀아 볼까?'라 말하면서 장난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즐거운가를 '가르칠' 수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디에고가 히죽거린다. 축구공이 방금 바비 인형 캠핑카를 짓이겨 놓았다. 부서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저놈의 물건, 아마 200프랑은 나갈 것이다. (9쪽)"선생님, 쟤가 그랬어요!" 상드라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잡아먹을 듯이 말했다.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증거가 없이 남을 몰아세우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교육 과정에 그런 게 있었다. (15쪽)어린이문학 <바비 클럽>을 보면 여러 아이가 나옵니다. 맨 먼저, 이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 아이가 나옵니다. 다음으로, 학교에서 권력을 흔드는 어머니를 둔 부잣집 가시내 아이가 나옵니다. 부잣집 아이를 둘러싼 '바비 클럽'이 되는 가시내 아이들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아랍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가시내 아이가 나와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버이 권력'에 맞추어 똑같이 움직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무서운 모습이에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고스란히 가르치거나 물려준 셈이거든요. 사회를 주름잡는 권력이나 이름값이 있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동무들 앞에서 똑같이 권력이나 이름값을 휘두르려고 해요.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서 '교육 과정에 나온 대로 하는 어설픈 중립'을 지킵니다.
모든 말썽과 실마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까요? 어른인 교사는 팔짱을 끼기만 해야 할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이녁이 거느리거나 휘두르는 권력을 아이들이 똑같이 따라하는 모습이 즐거울까요?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없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높은 어버이를 둔 아이'한테 억눌리거나 짓눌려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