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김윤주
헤밍웨이가 서점을 처음 발견한 날 그랬던 것처럼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빼곡히 책들이 가득하다. 바닥에 쌓아 올린 책들도 천장에 닿을 지경이다. 선반에는 오래된 책들이 꽂혀져 있다. 통로와 기둥 사이로 작은 공간들이 있고 벽에는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다. 눈에 익은 작가들 모습이다. 책장과 선반 사이를 조심조심 움직여야 한다.
좁은 계단을 올라간다. 푹신한 소파가 곳곳에 놓여 있고 사람들은 제집처럼 몸을 뉘인 채 책을 읽고 있다. 책 더미 사이로 오래된 타자기가 놓여 있고, 저쪽엔 낡은 피아노도 보인다. 물건과 공간의 용도가 무의미하다. 다만 책 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다.
안쪽 구석진 공간에 작은 탁자가 놓여 있다.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으니 네모난 작은 창으로 젖은 파리가 들어온다. 창밖으로 센강이 흐르고 구석진 다락방 창문가엔 낡은 나무 책상이 놓여 있으니, 이곳에선 절로 글자들이 춤을 추며 문장이 되고 단락을 이뤄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겠다 잠시 생각했다.
청바지에 까만 재킷을 걸친 늘씬한 여자가 두리번거리던 나의 눈과 마주쳤다. 의자들을 둘러 세우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길래 물었더니, 오늘밤 글쓰기 워크숍이 있을 예정이란다. 모임의 리더인 모양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을 묻어둔 채 그곳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오며 보니 한쪽 구석에 알록달록한 메모와 편지들이 잔뜩 붙어 있다. 나도 그곳에 앉아 노란색 포스트잇에 짧은 편지를 써 붙여 두고 나왔다. 손에는 나를 이곳으로 이끈 헤밍웨이의 바로 그 책 'A Moveable Feast'(국내 번역서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들려 있었다. 13.5유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오래된 책방이다. 우리에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10년 만에 해후하는 애잔한 첫 장면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온 실비아 비치(Sylvia Beach, 1887~1962)는 이 서점의 첫 주인이다. 1919년에 처음 문을 열고 1921년 오데옹 거리(Rue de l'Odéon) 12번지로 옮겼는데 마침 그때는 젊은 헤밍웨이가 파리에 막 도착한 시기였다.
구하기 어려운 영어로 된 수많은 책, 따뜻한 스프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이곳은 고국을 떠나온 가난한 젊은 작가들의 포근한 아지트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금지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is)>를 1922년 출간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문을 닫고 지친 실비아도 은퇴해 버려 서점은 역사 속 이야기로 남는가 싶었다.
그런데 10년 후 미국의 방랑 시인 조지 휘트먼이 오데옹 거리에서 멀지 않은 이곳, 노트르담 성당 근처 센 강변 뷔셰리 거리(Rue de la Bûcherie) 37번지에 비슷한 서점을 다시 연다. '미스트랄(le Mistral)'이었던 서점의 이름을 1964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바꾸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다.
2011년 그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그의 딸 실비아 휘트먼이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전히 열댓 개의 침대를 두고 누구라도 머물며 글을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에세이 한 편, 매일 책 한 권씩 읽기, 서점 일 돕기 따위가 자격 조건이라니 꿈같은 이야기다. 이미 4만 명이나 머물다 갔다면 더 이상 몽상가의 꿈도 아니다.
이쯤 되면 이곳은 그저 오래된 책방이 아니다. 조지 휘트먼이 말한 대로 '서점으로 가장한 사회주의자들의 낙원'이고, '세 글자로 된 한 편의 소설(a novel in three word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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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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