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상징, 오줌싸개 동상고작 60cm에 불과한 작은 기념물인 이곳엔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훗날 누군가 지어낸 사뭇 황당한 스토리가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불러모으는 벨기에의 대표 관광지다.
서부원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던 그랑 플라스를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 마실다니듯 찾고 또 찾았다. 야경에 반한 다음 날, 이른 아침에도 찾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도 광장을 거닐었다. 그때마다 건축물들은 햇빛과 구름에 따라 다른 자태를 뽐냈는데, 언제든 광장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중세와 현대가 수백 년의 간극을 두고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브뤼셀을 떠나기 싫도록 붙잡는 진한 벨기에산 향수 같다고나 할까.
벨기에 최고의 관광 도시라는 브뤼헤에서도 중세의 향기에 덮여 시간이 멈춰버렸다. 기차역을 나서 작은 운하 하나만 건너면 타임머신을 탄 듯 순간 중세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된다. 운하엔 조각배가 군데군데 떠 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할지언정 마차가 길을 돌아다닌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흔적이 전혀 없는 수백 년 전 중세 도시의 모습 그대로다.
새 것이란 이따금 울퉁불퉁한 길 위를 데면데면하게 지나가는 소형 자동차와 오래된 건물 바깥벽에 삐죽 내민 채 걸려있는 간판들이 고작이다. 그중에서도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낡은 건물에 달려있는 노랗고 빨간 맥도날드 간판은 상투 튼 어르신이 요란한 귀걸이를 차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브뤼헤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까지 쉬엄쉬엄 걸어가는 30분 동안 당최 지루할 틈이 없다.
대문을 열고 중세의 기사가 말을 타고 나올 것 같은 집들마다 창문엔 커튼을 걷고 작은 화분과 장신구들로 예쁘게 진열해놓았다. 처음엔 기념품 가게인 줄 알았더니 주민들이 사는 집이었다. 간판만 없다면 일반 가정집과 가게를 거의 구분할 수 없다. 창가의 소담한 꽃과 인형들은 이곳을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말없이 건네는 브뤼헤 주민들의 환영 인사처럼 느껴졌다.
브뤼헤는 최고의 관광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여행자들에게 '무심'했다. 만들지도, 치장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았다. 브뤼헤에서 만난 호객꾼은 단 한 사람, 마르크트 광장 구석의 푸드 트럭에서 감자튀김을 팔고 있는 한 젊은 상인이 유일했다.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의 마부조차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며 다른 마부와 담소를 나눌 뿐, 여행자들을 부르진 않았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톨릭 베긴회 수도원은 일부 개방은 돼 있지만 적막강산처럼 고요할 뿐이다. 이름난 곳이니 안팎에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거나, 가이드를 두고 하다못해 입장료라도 받을 법 하건만 그냥 조용히 둘러보다 가라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뜨내기 여행자들의 호기심 때문에 그들의 소중한 일상이 방해 받을 수 없다는 듯이.
마르크트 광장에 우뚝 선 종루에 올라 한참동안 브뤼헤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변변한 언덕 하나 없는 벌판에 세워진 도시라 시야가 거침없다. 쾌청한 하늘 덕에 저 멀리 북해도 아스라이 보인다. 저 바다를 건너면 영국 땅일 것이다. 발아래로 오래된 중세 도시의 풍광을 사방으로 감상하려니, 과거 남산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풍경이 겹쳐졌다.
남산타워의 높이를 이길 양 솟구치는 마천루들의 경쟁을, 하나같은 모양의 사각 콘크리트 빌딩들이 시야에서 초록의 산을 가리고 선 풍경을 멋지다며 구경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성당을 제외하곤 4~5층짜리 건물조차 보기 드물게 도시 전체가 납작 엎드렸다. 언뜻 보면 모두 사람들 키만 하다. 두 도시의 사뭇 다른 경관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차이 아닐까 싶다.
중세의 향기가 현재의 삶에서도 그대로 배어나는 그들에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건 그들을 순간 당황스럽게 만드는 우문일 뿐이었다. 이제 벨기에를 떠나 룩셈부르크로 향한다. 기차를 갈아타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족히 대여섯 시간은 걸릴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어떤 표정으로 우리 가족을 맞아줄까. 도착하면 밤일 텐데 도시 국가의 야경은 어떨지, 그들의 '저녁이 있는 삶'은 또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