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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50%와 90%의 차이오렌지주스라고 다 같은 오렌지 주스가 아니다. 오렌지가 50% 함유된 주스와 오렌지가 100% 함유된 주스의 맛은 천지 차이다. 요즘 우리는 거의 모두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감수하고도 눈이 번쩍 뜨이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들이지 않은가? 우리의 미각도 여실히 아는 것이다. 50%와 100%의 차이를.
이 사회엔 우리 세대가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숨겨진 50%가 있다. 바로 우리 청년 세대의 투표율이다(지난 10년, 2번의 총선과 2번의 대선 동안 2030 청년세대의 투표율은 줄곧 50% 이하였다).
우리의 투표율이 50%이건 90%이건 어느 정당은 이기고 어느 정당은 질 것이다. 맞다. 지금껏 그래 오지 않았나. 그러나 중요한 건 누가 이기든 지는 것은 우리가 아니며, 누가 지든 이기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당은 실체가 아니다. 그 안의 사람들이 실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지역구에 출마한 실체의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히 잘 모른다. 후보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인 자신보다 정당을 더 앞세운다. 그래서 다시 '도돌이표'다. 정당의 실체는 후보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후보자에 대해 잘 모른다(선거철에만 반짝 한 달 현수막으로 나타나는 그들을 어떻게 알겠나!).
따라서 명백히 말하면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정당들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정당들에 대한 생각은 그저 오래된,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언론이 말해주는 이미지일 뿐이다. 환영 같은 정당의 이미지에 투표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자신들의 정당에는 좋은 이미지 상대편의 정당에는 나쁜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쓴다. 그들의 선거 전략은 늘 항상 같다. 현실적인 한계를 바꾸려는 노력 대신 현실적인 한계를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것이다.
정당의 이미지와 후보자 개인의 인지도가 결합하면 자신이 당선될 거라고 믿기에 (실로 그렇기도 했다) 선거철엔 TV에선 정당들의 이미지 전략이, 거리에선 정당의 띠를 둘러맨 후보자들의 '악수 전략'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당선된 후보자의 수가 많은 정당은 자신들의 전략이 성공했다며 승리를 외치는 것과 동시에 이 승리는 국민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며 국민의 대표가 될 준비를 한다. 우리의 대표성은 국민들이 보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부터 자신들의 말과 행위는 국민들의 말과 행위와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국민이란 이름을 그들 자신 정당성의 증거로 사용한다.
정작 우리는 우리가 뽑은 실체의 후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그 정체를!) 선거 이후 그들이 자신들이 막강한 위치에 있다고 믿기 시작한 다음에야 알기 시작한다. 뒤늦게 당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뽑았다고 얘기하려 해도 그들은 이미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당선된 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자책하며 다음 선거를 기다리지만 문제는 똑같이 반복된다. 새로운 후보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재선을 노리는 후보자도 그동안 뭘 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다시 정당의 이미지 만들기에 총력을 다 한다. 몇몇 그럴싸해 보이는 쇼윈도 인물들을 내세워서. 이게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는 선거 현실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어느 정당도 예외인 당은 없다는 것이다.
이 선거현실은 지금 존재하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가담하는 선거형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선거 때엔 모두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일한다고 말하지만 당선 후엔 모두가 자신을 위해 일한다. 그들이 일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다시 당선되기 위해서다. 모두가 국민이란 이름을 들먹이지만 누구도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자신을 다시 뽑아줄 것 같은 사람만이 국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시 모순적이게도(혹은 가장 합당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50% 투표율이 못한 일을 90% 투표율은 해낼 수 있다. 50%는 무시해도 좋을 숫자였다면 90%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선되기 위해 혹은 재선되기 위해 우리의 표를 필요로 한다면 그때부턴 그들의 눈에 우리가 국민으로 보이기 시작할거다.
총선 다음은 대선이다. 대선 다음은 지방선거다. 2030 청년세대 투표율 90%는 정치인들의 2017 대선공략과 2018 정당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짜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투표시위가 성공하면 대선 후보가 달라질 희망이 있다. 대선 후보가 달라지면 정권 자체가 달라질 희망이 있다. 정권 자체가 달라지면 사회 전반이 달라질 희망이 있다. 90%라는 투표율은 그래서 모든 희망의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