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투표율 90%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

[2016년 우리가 투표 해야 하는 이유 ②] 선거 끝나면 '관람객'? 이제는 그만

등록 2016.02.17 15:13수정 2016.02.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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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다. 어떤 후보를 뽑든 어떤 정당을 뽑든 상관없다. 청년세대 투표율이 90%를 넘으면, 누가 이기든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 그들을 일하게 하라. 우리가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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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선거라는 보드게임

체스게임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역할이 있는 말들이 있다. 말에게는 이미 정해진 행동범위인 게임의 룰이 내재한다. 체스게임의 룰은 체스의 말들이 지닌 규칙이다. 체스는 잡고 잡히는 자체의 규칙에서 이미 공생과 상생이 불가능한 게임이다. 이기기 위해 상대의 말을 제거하는 게임, 킹을 잡기 위해 같은 편인 룩과 폰을 희생시키는 잔인한 게임, 그게 바로 체스게임의 룰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양측 진영으로 나뉘어 체스게임을 두고 있다. 그들은 모두 체스판 위의 말들로 자기들끼리 킹과 퀸을 나누고, 자신들끼리 룩과 비숍을 정하고, 서로가 나이트와 폰이 되겠다고 자신이 속한 정당의 눈치를 본다. 그들은 단지 상대진영을 이기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그들에게 선거는 단지 몇십 년간 이어져 온 체스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입장권일 뿐이다. 체스의 말이 되고자 기꺼이 자신의 몸에 체스의 룰을 기입하는 사람들, 그게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유권자)의 환심을 사서 체스판에 입장하고 나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들은 상대진영을 견제하면서 자신의 진영에서 더 높은 말이 되는데 정신을 쏟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그들만의 게임판인 체스판 위에 올려주는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그저 게임을 지켜봐야 하는 관람객이 된다.

정치권은 매일 새로운 판을 짠다느니 판을 갈아엎어야 한다느니 말하지만 그 판은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 체스판을 다시 짠다는 얘기다. 체스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게임을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게임의 참가자들은 게임의 판을 바꿀 수 없다. 게임의 판을 바꿈과 동시에 자신들도 게임종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의 판은 모순적이게도 (그러나 가장 합당하게도) 게임을 지켜볼 뿐인 관람객만이 바꿀 수 있다.

같은 보드게임이지만 바둑은 다르다. 바둑은 집을 더 많이 짓는 게임이다. 바둑의 돌은 그저 돌일 뿐이다. 차이도 차별도 없는 흑과 백 각 180여 개의 돌들이 영토싸움을 벌인다. 바둑의 돌은 체스의 말과 달리 내재하는 역할이 없기 때문에, 바둑돌로 오목을 둘 수도 심지어는 알까기를 할 수도 있다.


게임의 판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게임의 룰과 새로운 게임의 말과 새로운 게임의 판을 선택하는 일이다. 체스게임을 바둑게임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은 체스판을 바둑판으로 바꾸는 것, 한 가지뿐이다. 체스의 말들은 바둑판 위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바둑게임이 시작되면 체스의 말은 기껏해야 진열장 위 장식품밖엔 되지 못한다. 게임에 참여하고 싶은 기존의 체스 말들은 자신을 깎아서라도 바둑돌로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들은 게임판 위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바둑돌들이 단지 전략만을 가지고 경쟁하는 바둑게임, 16개의 말이 아닌 360개의 돌이 올라가 서로 연결되어 촘촘히 자신들의 집을 짓는 바둑게임, 그 게임을 보고 싶지 않나.


그렇다면 이제 체스를 그만두고 바둑을 시작하자. 체스게임을 바둑게임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투표는 개인의 권리지만 투표율은 집단의 권력으로 현시된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 우리는 아무나 찍어도 상관없다. 당선된 그들이 우리를 위해 일하게 만들면 그뿐이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4년간의 비정규직이고 선거는 다시 돌아오고 그들은 주기적으로 우리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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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50%와 90%의 차이

오렌지주스라고 다 같은 오렌지 주스가 아니다. 오렌지가 50% 함유된 주스와 오렌지가 100% 함유된 주스의 맛은 천지 차이다. 요즘 우리는 거의 모두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감수하고도 눈이 번쩍 뜨이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들이지 않은가? 우리의 미각도 여실히 아는 것이다. 50%와 100%의 차이를.

이 사회엔 우리 세대가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숨겨진 50%가 있다. 바로 우리 청년 세대의 투표율이다(지난 10년, 2번의 총선과 2번의 대선 동안 2030 청년세대의 투표율은 줄곧 50% 이하였다).

우리의 투표율이 50%이건 90%이건 어느 정당은 이기고 어느 정당은 질 것이다. 맞다. 지금껏 그래 오지 않았나. 그러나 중요한 건 누가 이기든 지는 것은 우리가 아니며, 누가 지든 이기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당은 실체가 아니다. 그 안의 사람들이 실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지역구에 출마한 실체의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솔직히 잘 모른다. 후보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인 자신보다 정당을 더 앞세운다. 그래서 다시 '도돌이표'다. 정당의 실체는 후보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후보자에 대해 잘 모른다(선거철에만 반짝 한 달 현수막으로 나타나는 그들을 어떻게 알겠나!).

따라서 명백히 말하면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정당들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정당들에 대한 생각은 그저 오래된,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언론이 말해주는 이미지일 뿐이다. 환영 같은 정당의 이미지에 투표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자신들의 정당에는 좋은 이미지 상대편의 정당에는 나쁜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쓴다. 그들의 선거 전략은 늘 항상 같다. 현실적인 한계를 바꾸려는 노력 대신 현실적인 한계를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것이다.

정당의 이미지와 후보자 개인의 인지도가 결합하면 자신이 당선될 거라고 믿기에 (실로 그렇기도 했다) 선거철엔 TV에선 정당들의 이미지 전략이, 거리에선 정당의 띠를 둘러맨 후보자들의 '악수 전략'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당선된 후보자의 수가 많은 정당은 자신들의 전략이 성공했다며 승리를 외치는 것과 동시에 이 승리는 국민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며 국민의 대표가 될 준비를 한다. 우리의 대표성은 국민들이 보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부터 자신들의 말과 행위는 국민들의 말과 행위와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국민이란 이름을 그들 자신 정당성의 증거로 사용한다.

정작 우리는 우리가 뽑은 실체의 후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그 정체를!) 선거 이후 그들이 자신들이 막강한 위치에 있다고 믿기 시작한 다음에야 알기 시작한다. 뒤늦게 당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뽑았다고 얘기하려 해도 그들은 이미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당선된 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자책하며 다음 선거를 기다리지만 문제는 똑같이 반복된다. 새로운 후보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재선을 노리는 후보자도 그동안 뭘 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다시 정당의 이미지 만들기에 총력을 다 한다. 몇몇 그럴싸해 보이는 쇼윈도 인물들을 내세워서. 이게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는 선거 현실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어느 정당도 예외인 당은 없다는 것이다.

이 선거현실은 지금 존재하는 모든 정당이 똑같이 가담하는 선거형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선거 때엔 모두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일한다고 말하지만 당선 후엔 모두가 자신을 위해 일한다. 그들이 일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다시 당선되기 위해서다. 모두가 국민이란 이름을 들먹이지만 누구도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자신을 다시 뽑아줄 것 같은 사람만이 국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시 모순적이게도(혹은 가장 합당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50% 투표율이 못한 일을 90% 투표율은 해낼 수 있다. 50%는 무시해도 좋을 숫자였다면 90%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선되기 위해 혹은 재선되기 위해 우리의 표를 필요로 한다면 그때부턴 그들의 눈에 우리가 국민으로 보이기 시작할거다.

총선 다음은 대선이다. 대선 다음은 지방선거다. 2030 청년세대 투표율 90%는 정치인들의 2017 대선공략과 2018 정당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짜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투표시위가 성공하면 대선 후보가 달라질 희망이 있다. 대선 후보가 달라지면 정권 자체가 달라질 희망이 있다. 정권 자체가 달라지면 사회 전반이 달라질 희망이 있다. 90%라는 투표율은 그래서 모든 희망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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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집단행위의 발명

우리에겐 선거의 작동시스템 자체를 전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아주 쉽고도 제일 어려운 행위가 있다. 집단행위의 발명.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방법. 그래서 이제껏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총투표로서 우리들의 투표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90%는 말도 안 되는 숫자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달성 될 수 없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껏 우리 청년세대는 그 비율의 위상과 위력과 권력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모두가 투표하는 것, 그것은 모두가 투표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총투표는 과거 노동자들의 노동혁명이었던 총파업에 견주되는 집단행동이 될 수 있다. 총투표는 어떤 정당의 후보를 선택해서 하나의 정당을 과반의석으로 만들어 승리하게 한다든지, 하나의 정당의 과반의석을 저지하여 패하게 한다든지의 목적과는 다른 목적으로 제안된 집단행동이다.

목표는 단하나 이제껏 집계되지 않아서 고려되지도 않았던 50% 투표하지 못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청년세대 투표율이 90% 이상이 되면 이제껏 집계되지 않았던 우리 세대 50%의 숫자들로 인해 우리는 선거결과의 당락을 결정하는 유효인구가 된다.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는 세대, 우리가 누굴 뽑든 우리가 뽑은 사람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면 누가됐든 선출직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들이라면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정당, 모든 후보자, 모든 정치인에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그게 총투표의 목적이고 우리의 유일한 목표가 된다.

집단행위의 발명이 필요한 지금, 정치인들이 언론과 결탁하여 만들어낸 이슈 프레임에 놀아나지 말자.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3의 당이든 국민의 대리인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뽑은 그들이 마땅히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선거 후에도 유효한, 아니 선거후에 더 강력해질 우리들의 힘을 증명해야 한다.

청년 세대의 정치 세력화가 청년들끼리 신당을 창당한다든가 청년 정치인을 배출하는 것뿐이라고 누가 그랬나.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청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청년을 대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나이로만 정해지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정치인이라고 해서 예외일수 있을 것 같은가? 그들 역시 청년의 타이틀을 걸고 선출직 공무원이 되는 순간 체스의 말이 될 뿐이다. 한 두 사람의 정치인이 바꿀 수 있는 게임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자에 대한 환상과 영웅심리로 자신을 예외의 일인이라고 말하는 모든 정치인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권 일반에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청년의 정치 세력화는 또 다시 우리들의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참여로 우리 전체가 하나 되는 목소리를 갖게 만드는 데에 있다. 1986년 프랑스에서는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 총파업이 있었다(지금까지도 역사에 길이남아 대한민국청년들은 뭐하냐고 비교와 비판의 근거가 되는 사건이다).

우리의 총투표는 총파업이라는 행위를 뒤집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행위이다. 모두가 투표하지 않는 청년세대 투표파업을 제안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이미 50%가 '투표 파업' 중이기 때문이다. 50% 투표 파업의 결과는 처참하게도 사회에 대한 청년 세대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우리를 스스로 약자로 만들었다.

또한 청년 세대 전체의 투표율 없이도 선거제도를 유지시킬 다른 세대의 투표율이 존재한다. 그래서 투표 총파업은 우리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총투표는 사회의 어떤 비난도 받지 않을 긍정적 행위임과 동시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집단행위이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에서는 찍고 싶은 사람이 없어도 연필 굴리듯 아무 번호나 찍고 잘못된 선택인 것 같아 불안해도 투표는 잘한 투표와 잘못한 투표라는 구분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 편히 투표에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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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You do, We do

우리가 지금까지 투표라는 행위에 임했던 자세는 '나 하나 투표 한다고 사회가 바뀌겠어?' 혹은, '나 하나 투표 안한다고 사회가 바뀌겠어?' 정도 였다. 우리는 한 번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불렸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이기주의와 '나 하나 안 한다고'라는 소극주의는 하늘과 땅만큼 먼 개념이다. 우리에겐 뼛속 깊이 새겨진 이기심이 아니라, 너무 오래 경험한 주눅듦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너무 소심해졌고, 너무 주눅 들어 있었고, 너무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당당히 어깨를 펴고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콧대 높게 '나 하나라도 빠지면 이 지리멸렬한 사회는 결코 변할 리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게 사실이니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아주 어려운 일이다. 집단행위는 그 주체가 '모두'여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처음부터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성공했을 때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집단행위를 계획했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다. 내가 할 것이기 때문에 너도 할 것이라는 믿음. 네가 하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하리란 다짐. '네가 하면 우리도 한다'라는 패기와 의리. 그렇게 나 너 우리가 모두 함께 할거라는 상호간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는 모두를 위한 하나의 행위를, 하나를 위한 모두의 행위를 현실에 발현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청년 세대가 모두 함께 안에서부터 하나로 묶인 결속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우리들의 투표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 아래 대한민국 5천60만 인구 중 28%에 해당하는 1천4백만 명 청년의 연대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합쳐 1천 4백만이다.
그러므로 전국의 2030 청년들이여 단결하라.
잊지 말아야할 이 땅의 19세여 함께하자.
우리, 이번엔 정말로 다 같이 투표해야만 한다.
청년이여, 투표로 시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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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실전투표전략 [총선편]

아무나 찍어도 된다는데 여전히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대. 추첨하듯, 제비뽑듯, 사다리 타듯 투표하는 꿀 팁을 알려주겠다.

물론 신념에 따라 투표해도 된다. 지지하는 후보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찍으면 된다. 내가 전하는 팁은 뽑고 싶은 후보자가 없는데도 우리들의 시위에 함께 하기 위해 투표하러간 50% 미투표율의 청년들에게 전하는 방법인거다. 선택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말이다.

1. 그냥 일단 무조건 선거날은 투표소에 가는 거다. 이유도 변명도 귀찮음도 무기력도 이번엔 안 된다. 일단 가는 거다. 추리닝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동네 편의점에 가듯 투표소에 가자.

2. 투표소에 도착했다면 '마인드컨트롤'을 시작하자. 추첨하기, 제비뽑기, 사다리 타기가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공정한 제도였는지를 떠올려라. 유일하게 우리들을 차별 없이 대했던 평등법의 레전드다. 300인의 정치인이 우리를 차별하더라도 관대한 우리는 후보자들을 차별하지 말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추첨하듯 제비뽑듯 사다리 타듯 시원하게 한번 찍어보자.

3. 막상 투표용지를 받았더니 다시 결정 장애가 발동했다면 클래식한 방법은 언제나 옳다는 걸 기억하자. 우리에겐 '코카콜라, 어느 것을 고를까요, 딩동댕 척척박사님'이 있다. 노래가 끝나는 곳이 우리가 찍을 번호다. 응용하자면, 굳이 위에서부터 시작할 필요 없다. 밑에서부터 시작해도 되고 중간에서부터 시작해도 된다. 단 투표소안에서 소리 내서 노래하기보다는 경건하게 마음속으로 부르길 추천한다.

3. 너무 오래전이라 클래식한 방법을 모두 잊어버렸다면 그대의 영감을 한번 믿어보라. 눈감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번호를 찍어보자. 눈을 감으면 신기하게도 숫자를 닮은 형상이 보일 것이다. 날카롭게 캐치해서 그대로 찍어보자. 그건 마법의 숫자다. 단, 눈 감고 찍진 말자. 잘못해서 눈금에 도장이라도 찍히면 기권표가 된다. 꼭! 눈 뜨고 네모 안에 도장을 찍도록 하자.

4. 소거법으로 선택의 폭을 좁혀라. 예를 들면 투표용지를 받자마자 1번은 보여도 안 보이는 숫자려니 처음부터 빼놓고 시작하기, 5번이상은 5지선다문제에서 보기를 벗어남으로 지우고 시작하기 등으로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자(그냥 예를 든 거다. 정말이다).

5. 그렇게 장하게도 추첨식 투표를 시전 했는가? 우리들의 시위에 가담했는가? 그렇다면 위대한 행동으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난 자신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 휴일을 만끽하자. 선거날은 휴일이다. 근데 만약 우리 회사는 휴일이 아니라면? 바로 그러한 불합리함을 수정하기 위해 우리가 투표하는 것이다. 정치인을 일하게 하라, 저런 불합리함을 변화시키도록. 그래서 이번선거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해야만 한다(선거일을 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회사의 청년들을 위해 출근전후 투표하는 꿀 팁을 준비하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 마지막 정치인들에게 당부 : 우리 이번에 눈감고 투표할지 모른다. 공천 제대로 해놔야 할거다. 누가 되든 능력 있는 분들로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박신수진 | (http://blog.naver.com/sijanbi) 개인 블로그 개제
#총선 #투표 #선거 #청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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