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순례 2일차, 화순에서 결의다지기도보순례 2일차,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화순군청 앞에서 결의를 다졌다. 백남기 농민이 일어나 고향 보성의 밀밭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 사회 정의는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권말선
너릿재공원에 도착할 즈음 보니 비닐 장화는 바닥에 긁혀 조금씩 찢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발에 물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역 농민께서 너릿재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빗소리 때문에 전달이 약해 잘 들리지 않았다.
후에 검색해 보니 '1946년 8.15 광복 1주년 광주 기념식'에 참가하여 재를 넘어가던 화순 탄광 노동자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곳이다. 1980년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에는 화순과 광주를 오가던 시민군들이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사망한 역사적으로 가슴 아픈 사건을 겪은 곳이다.
그러고 보니 너릿재를 지나며 우리가 맞은 비는 아마도 해방과 민주를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영령들의 눈물인가 싶었다. 70년 넘도록 해방을 맞지 못해 아직도 고난의 길을 걷는 후대들이 안타까워 흘리는 눈물이리라.
광주에 도착해서도 비는 그치지 않고 거세졌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며 내렸다. 광주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5.18'이라는 이름에서 광주의 아픔이 다시 밀려왔다. 광주! 이를 꽉 물며 울음을 삼키지 않고는 떠올릴 수 없는 이름 중 하나.
민중항쟁의 피맺힌 절규와 함성. 오늘날에는 세월호 광장, 고공 농성장, 길거리 천막농성, 송전탑 투쟁, 강정 투쟁, 미군기지 투쟁 등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해방 후 친일잔재를 청산 못해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여!'라던 어느 어르신 말씀이 귀에 울린다.
유인물을 나눠드리고 피켓을 들기도 하며 터미널 일대에서 선전전을 시작했다. 전교조 선생님 한 분과 대형피켓을 들기로 했다. 그런데 화장실이 급해 선생님께만 맡기고 뛰어갔다. 화장실에서 한참 후 나왔더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상황실에 연락을 취해 차량에 타기로 하고 기다렸다. 한 학생이 몸자보를 입은 나에게 다가와 함께 걷고 싶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과 연락이 되어 5.18교육관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걸으며 선생님 이야기와 집회에 참석했던 이야기 등도 잠깐 나누었다. 누구라도 이야기 나누었으면 아마도 '친절하고 의식이 있는 참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대주교님도 도보행진단을 응원해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