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가는 기차
김윤주
기차는 2층으로 되어 있다. 낯설고 재미있다. 해리포터를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데려다 준 기차처럼 이 기차는 그 옛날 루이 14세가 천하를 호령하던 17세기 한복판으로 우리를 실어다 주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가 적당히 자리를 잡는다.
흑인 부부와 어린아이 둘, 무슬림 부부, 은발의 노신사가 입구 쪽 좌석을 차지하고 있고,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여학생들 셋이 나란히 앉아 연신 종알거리고 있다. <비포 선셋>의 셀린느 같은 금발 아가씨 하나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내 옆 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배낭을 내려놓으며 잠시 눈인사를 나누고 각자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평화로운 파리 교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낮은 건물과 주택의 붉은 지붕들이 철로 너머로 펼쳐져 있다. 파리가 북적이고 흥분이 가득한 축제의 덩어리라면 5분만 벗어나도 이렇게 교외에는 어쩌면 축제로 지친, 어쩌면 일상에 충실한 보통 사람들의 익숙한 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철로와 나란히 선 살구색 담장들 위에는 알록달록한 그라피티(graffiti)가 잔뜩 채워져 있다. 기차가 속력을 내고 달리기 시작하면 그림의 선과 색은 점점 뭉개지고 희미해지며 뒤로 뒤로 사라져간다. 그러고 보니 파리의 메트로에서도 이런 풍경을 만나곤 했다. 지하철이 지나는 터널 그 좁은 공간의 철로 옆 벽면이 온통 그라피티로 채워져 있었다. 이 정도면 페인트 스프레이로 마구 흩뿌린 낙서 수준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도 이런 그라피티를 자주 목격했는데 그때는 주로 추상화 같은 그림이 대부분이었던 것에 비해 지금 이곳 파리에서는 문자들을 입체적으로 변형한 도안이 더 많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미대 디자인학과로 유학 온 파리 출신 여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 친구 전공이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였다. 글자의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이 나라 젊은이들의 공통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