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소녀인 나, 처음으로 수요집회에 갔습니다

어른들은 제가 어려서 뭘 모른다고 하지만... 정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등록 2016.02.23 16:30수정 2016.02.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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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소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소녀입니다.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라고 부릅니다. 지하철을 타고 소녀를 만나러 가는 길, 가슴이 떨립니다. 한편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만나러 가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열여섯 소녀입니다. 당시 일본이 강제로 끌고 간 어린 소녀들과 비슷한 나이입니다. 책에서 봤습니다. 일본이 어린 소녀를 강제로 데리고 가서 폭행했다고. 뉴스에서 봤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막연히 아픈 역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저로서는 견디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양손 가득 간식을 샀습니다. 친구들도 기꺼이 용돈을 내놓았습니다. 이날은 제1218번째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마음이 담긴 간식 소녀상을 지키는 언니,오빠께 간식을 드리려고 사가고 있다. ⓒ 서지원


소녀상을 보니 이유는 모르겠는데, 마음이 먹먹합니다. 겨울옷을 입은 소녀상도 왠지 모르게 추워 보입니다. 소녀상의 가슴에 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소녀의 말에 눈물이 쏟아집니다. 친구들도 고개를 숙이고 훌쩍이고 소녀상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눈물을 닦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 여러분 정부를 믿지 마세요. 왜 학생들이 이렇게 고생해야 하느냐? 이럴 필요 없다. 학생들이 여기(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서 잠자면 나도 밤에 못 잔다."

이용순할머니 이용순할머니께서 집회 마무리 말씀을 하고 계신다. ⓒ 서지원


울분에 찬 목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피해자가 이렇게 살아서 증언하고 증거도 명백한데,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나라는 할머니는 빼놓고 사과가 아닌 돈 준다는 내용만 담은 문서에 합의했을까요?

어른들은 제가 어려서 뭘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어린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합의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국민이, 피해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합의를 한 게 잘못 아닌가요? 어린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녀상을 지키는 언니오빠에게 주려고 사간 간식은 이날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언니오빠들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수줍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양손 가득했던 비닐봉투가 텅 비자 괜스레 기분이 좋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핫팩을 나누어주는 사람,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 캔 커피와 빵을 나누어주는 사람... 저와 같은 마음으로 소녀상을 찾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빵과 커피 집회가 끝날때쯤 받은 빵과 커피이다. ⓒ 서지원


한입 먹은 떡 받은 떡을 친구와 나눠먹고 있다. ⓒ 서지원


소녀를 만나고 돌아온 밤, 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를 떠올렸습니다, 온종일 서 있었더니 다리가 아픕니다. 지갑은 텅텅 비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편안하고 뿌듯합니다. 가슴에 행복한 기운이 한가득입니다. 그리고 소녀를 돕고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이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끝으로 소녀상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씁니다.

"늦게 가서 미안해. 너와 같이 아픈 역사로 만들어지는 동상이 없길 바라. 그러기 위해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지. 누군가는 왜 그런 곳에 가느냐고 하겠지만 난 작은 사람들의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추운 겨울 소녀상을 지키는 언니오빠들도 그런 마음이겠지. 나도 앞으로 더 행동하는 사람이 될게. 안녕, 또 만나러 갈게."

소녀상 소녀상이다. ⓒ 서지원


##위안부수요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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